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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기대감 무르익지만 수출 급락이 큰 부담

[World Market View] 기대감 무르익지만 수출 급락이 큰 부담

물동량이 줄어 운항을 포기하고 근해에 정박 중인 화물선들.

전 세계 증시가 오랜만에 활기찬 한 주를 보냈다. 코스피지수가 4.1%, 코스닥이 3.8% 올랐고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도 각각 3.5%와 7.8% 상승했다. 중국 상하이 증시(9.6% 상승) 등 다른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암울한 경기상황을 나타내는 지표가 쏟아졌지만 투자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1년 넘게 지속돼온 하락장에 지친 그들은 희망을 갈구하는 듯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경기부양법안과 금융구제방안이 그 씨앗이 됐다. 819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은 하원을 통과한 뒤 상원과 협의를 기다리고 있다. 진통은 있겠지만 상원이 추진하는 부양안(7800억 달러)과 큰 차이가 없어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하는 ‘배드뱅크’(부실자산 정리기구) 논의도 이르면 다음 주 안에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재무부는 이미 조성해놓은 공적자금 중 최대 4000억 달러를 투입해 금융사들의 부실자산을 인수할 계획이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불거지는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새로운 금융구제안의 핵심이 될 배드뱅크를 어떻게 운영할지 아직 뚜렷한 안은 나오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도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조성할 때 이러저러한 대책 중 하나로 배드뱅크와 유사한 안을 내놓았었다. 금융회사 간에 입찰을 부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기관의 부실 자산부터 사주는 역경매다.

하지만 부실자산의 가격을 책정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부실자산의 실체가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금융회사들의 반대에 부닥쳐 유야무야됐다. 오바마식 배드뱅크는 그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부실자산 인수 대책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국유화를 통해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움직임도 다시 등장했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금융회사에 자본을 투여하려던 계획이 은행 국유화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최근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되면서 상환 우선주로 이름을 바꾼 부분 국유화 방안이 제기됐다.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 가운데 적어도 ‘정부의 시장 회복 의지’는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유럽과 일본, 한국도 모든 화력을 집중해 공동 전선을 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필두로 한 이명박 정부 2기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기대가 사라지거나, 혹은 주가가 올라 기대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시점까지 상승 장세가 나타날 것이란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기대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아직은 ‘베어마켓 랠리’(약세장에서의 주가상승)다. 희망의 땅으로 가려면 아직 숱한 지뢰밭을 거쳐가야 한다. 미국의 실업률은 가파르게 치솟고 주택가격 하락과 소비 위축도 꺾이지 않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세계 교역규모가 크게 감소하면서 1월 수출이 3분의 1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완제품 수출과 중국에 대한 부품과 중간재 수출이 큰 폭으로 동반 감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일본·중국 등의 경쟁 상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이점도 수요 급감이라는 충격에 짓눌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올해 한국 경제가 심할 경우 -7%의 역성장을 기록하리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 외국인과 연기금이란 점도 불안요소다. 외국인이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지만 아직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최근 한국의 수출 실적 흐름(단위: 달러, %)
*전년 동월 대비. 자료: 지식경제부

한국 관련 펀드에서 돈이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순매수는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라기보다는 국가 간 투자비중 조절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하락장마다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는 연기금은 바닥을 확인한 뒤 스스로 일어서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욕심은 나지만, 섣부르게 발을 내딛기는 여전히 두려운 흐름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느긋함이다. 바닥이 아니라 무릎에서 사겠다는 자세로 시장 안팎을 두루 살펴야 한다. 기업과 가계의 사정이 나아지진 않더라도, 더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뒤 투자해도 때는 늦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경기부양·금융구제와 함께 추진 중인 모기지 대책이다. 상환조건 완화와 금리·기간 조정 등을 포함한 이 대책이 구체화되면 자산가격 하락과 소비 침체의 연결고리가 끊길 수 있다. 가계가 기력을 되찾으면 기업과 금융의 회생이 빨라지고 비용도 줄어든다.

한국 정부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정책 변수가 금융과 기업에 미칠 영향 못지않게 가계에 줄 영향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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