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10m 더 뛰면…”
“남보다 10m 더 뛰면…”
조규향 총장은 지금 동아대의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야심 찬 꿈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8월 총장 취임 당시 그는 그 흔한 공약 하나 내걸지 않았다. 대신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기본’과 ‘내실’, 그리고 ‘봉사’를 강조했다. 근본에 충실하지 않고선 동아대의 미래, 더 나아가 우리나라 대학 전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곧 40여 년간 교육 관료 및 대학 CEO로만 일관해 온 그의 외곬 인생의 교육철학이자 소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의 근본은 교육과 연구”라고 주장하는 그는 “교수와 직원, 학생 모두가 근본에 충실하면서 맡은 바 일에 성실히 임하고 남보다 10m만 더 뛴다면 우리 동아의 힘은 굳건히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하기를 잊지 않았다.
대학이 외양(外樣)에 치중하고, 양적 팽창에만 몰두할 때는 지났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오히려 교수와 학생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노력해 학교나 개인 모두 질적 성장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학상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조 총장은 “오늘날 대학교육은 수업중심(teaching oriented)에서 학습중심(learning oriented)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으며, 일과 학습의 공존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단순히 강의 위주가 아닌 학생들의 현장체험과 자기 주도 학습력을 높이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런 능동적 참여는 교수들에게도 적용됨은 물론이다. 이 같은 그의 시도와 실험이 거대한 변화의 폭풍을 일으킬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릴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제 겨우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용하지만 야심 찬 그의 꿈이 풍성한 가을을 기약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임을 굳이 믿고 싶은 건 비단 기자만의 바람일까.
>> 3월 새 학기를 맞아 부민캠퍼스 시대를 열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그는 대뜸 서진론(西進論)을 펴기 시작한다.
“부산이 중앙동에서 시작해 남천동, 해운대, 금정구 등지로 발전해 나갔지만, 이젠 광활한 김해평야를 낀 서쪽으로 눈을 돌려 할 때입니다. 부산 신항만과 거가대교, 그리고 기계·조선공업이 밀집한 창원공단 등 서쪽 지역이 부산 발전 성장동력의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사하구와 서구에 위치한 동아대가 부산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민캠퍼스는 한때 부산의 중심지였던 서구 지역의 옛 영화(?)를 되찾는 데 분명 일조할 것입니다.”
부민캠퍼스 시대 개막으로 부민동을 비롯한 서구 지역 전체가 들떠 있는 건 사실이다. 부산 법조청사가 동래구 거제동으로 옮겨간 뒤 이 지역은 수년간 불모지대로 방치돼 있었다. 이제 7000명의 학생이 상주(常住)하게 됨으로써 상권 부활의 기대는 물론 구덕캠퍼스와 부민캠퍼스가 함께 위치한 서구 지역이 부산의 학문 중심지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 구덕캠퍼스에서 승학캠퍼스 시대를 열었을 때를 동아대 제2의 도약기라고 한다면, 부민캠퍼스는 제3의 도약기를 의미하는 게 아닐지요?
“그렇게 볼 수 있지요. 지금 한창 공사 중입니다만, 경남 진해에 있는 보배캠퍼스에 R&D연구센터만 들어선다면 동아대가 명실공히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고 할 것입니다.”
동아대는 부민캠퍼스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사회과학대학, 경영대학을 유치하고, 승학캠퍼스엔 대학본부, 인문과학대학,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생명자원과학대학, 생활과학대학을, 구덕캠퍼스엔 예술대학과 의대, 의료원을 포진시켜 각각 특성화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높일 계획이란다.
동아대 부민캠퍼스. |
로스쿨을 대학 경영혁신의 바로미터 삼을 것
부민캠퍼스는 여느 대학 캠퍼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입구에서부터 공원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넓은 잔디밭 위에 각종 조경수는 물론 석등과 석상, 해태상 등이 즐비하다. 담장마저 헐었다. 국보 2점, 보물 11점 등 모두 3만여 점을 소장해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국내 대학박물관 중 최고로 꼽히는 동아대박물관은 3월 개학과 함께 일반에 공개돼 지역민과 함께하는 대학으로서의 이미지를 그대로 심어줬다.
>> 말이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로스쿨에 대한 육성방안은 따로 구상하시는 게 있습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로스쿨이 마치 대학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된 듯한 분위기입니다. 저희 대학으로서도 총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이미 장학금도 110억원이나 확보해 놨습니다. 또 부민캠퍼스 내에 국제회관을 신축해 국제회의장과 함께 500명 수용 규모의 기숙사 및 도서관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완공은 2011년이 될 것 같습니다.”
로스쿨 운용방향에 대한 조 총장의 생각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로스쿨을 동아대 출신 기업인들과 연계해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동아대 선배 기업인들이 로스쿨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학생들은 일찍부터 기업 재무구조를 익히는 등 상부상조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업으로선 전담 변호사를 일찌감치 확보하는 계기가 될 거고요.”
>> 요즘처럼 어려울 때 위기돌파의 해법 같은 건 있습니까?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엉뚱하게도 예의 ‘기본’과 내실 다지기였다.
“원론적인 얘깁니다만, 교수는 가르치는 일에, 학생은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 경영을 맡고 있는 저를 포함한 학교 임원과 관련 교수들은 발전기금 모금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 획득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대학의 본질은 학문탐구와 습득에 있다는 논리가 맞는 것 같지만, 대학을 향한 사회적 요구는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인재 배출 쪽으로 바뀌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수들이 기업체를 직접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함께 해결점을 찾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학생들 역시 이런 기업체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기술까지 습득한다면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이것이 바로 제가 그동안 말해 온 봉사 개념과 상통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내년 의-생명과학과를 새로 출범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학과 대체의학 등을 함께 연구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다. 대학이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 대학 생명공학과는 지난해 9월 중앙일보가 실시한 ‘2008 대학평가-학과평가’에서 교육여건 부문 전국 3위, 교수연구 부문 전국 10위의 우수한 성적을 거둔 바 있다.
또한 교수당 특허실적 부문에서도 전국 3위, 취업률 부문에서도 전국 10위를 각각 차지했다. 동아대의 자랑거리 중 산학협력단을 빼놓을 수 없다. NURI사업, BK21사업은 물론 곽종영 교수의 암분자치료연구센터사업 등 모두 8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중에서도 조 총장이 특히 자랑스러워 하는 사업은 고기능성밸브 기술지원센터와 자원개발특성화대학 사업(이창우 교수)이다.
고기능성밸브사업은 저온에서 밸브를 휘는 기술을 국내 처음 개발했고, 자원개발특성화사업은 향후 5년간 80억원을 들여 국내외 자원개발 전문인력을 글로벌 스탠더드, 즉 국제 기준에 맞게 ‘맞춤형 인재’로 양성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 사업에서 배출될 전문 인력은 자그마치 학부 209명, 석·박사 73명이다.
스타교수들 대거 포진…내실경영에 총력
조 총장은 “이처럼 국제 기준에 맞는 맞춤형 인재 양성이야말로 우리나라 대학들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며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국제 표준 기술 교육 인프라를 구축함은 물론 인력양성 시스템을 글로벌화하고,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극대화해 현장중심 교육 및 수요자 만족 교육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 학교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교수도 많습니다. 이젠 중앙과 지방대학 교수들의 자질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중요한 건 각자 자기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뽑을 땐 우수학생인데 졸업할 땐 열등생이라는 거 아닙니까. 교수나 학생이나 모두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같은 문제는 쉽게 극복되리라 믿습니다.”
동아대가 보유한 글로벌 스타(?)급 교수는 많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정치학과 종신교수인 박성조 교수를 비롯해 국회의장을 지낸 박관용 교수, 대법관 출신 조무제 교수가 있다. 또 국제물리유기화학회 의장이자 노벨화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성대동 화학과 교수, 알츠하이머병 등 난치병 관련 유전자가 밀집한 19번 염색체의 비밀을 풀어낸 임선희 생명과학과 교수도 있다.
스포츠 분야로 화제가 옮겨가자, 그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우리 학교가 배출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4명이나 된다”며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의 양정모를 비롯해 유도의 하형주·조재기, 태권도의 문대성 교수를 손가락을 꼽아가며 거명하기도 했다. “최홍만 선수도 우리 대학 출신이고, 예전엔 복싱 세계 챔피언 박찬희 선수도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밖에 프로야구, 프로축구, 씨름 등의 프로선수 상당수를 배출하는 등 한국 스포츠에 대한 동아대의 기여도는 타 대학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소신의 소유자다. “그간 학교와 총동문회 간에 소원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직접 만나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가자는 생각”이라고 그는 털어놨다.
그는 또 외부인사인 자신의 총장 선임에 대해 교수협의회 등 일부 교수가 반발한 것과 관련해서도 “무한경쟁체제에 직면한 동아대가 살아남기 위해 대승적으로 생각하고 학내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는 방법밖에 없지 않으냐며 원론적 수준의 설득을 벌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4년 뒤 어떤 총장으로 평가 받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내가 4년 뒤 임기를 마치고 총장직에서 물러날 때 듣고 싶은 말은, 무슨 무슨 회관 신축 같은 외형적인 업적보다 기초와 내실을 다져준 덕택에 진짜 실력을 갖춘 대학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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