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 기업농 육성에 도전한다”
“20만 기업농 육성에 도전한다”
'사람들이
다들 도시로 이사를 가니까
촌은 쓸쓸하다
그러면 촌은 운다
촌아 울지마’.
|
“우리 농업·농촌의 현주소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으로 국내 최고의 농업경제 전문가로 평가 받는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신설된 청와대 농수산식품비서관을 거쳐 지난 1월 23일 농식품부 제1차관에 임명됐다.
농식품부로서는 흔치 않은 외부 인사 영입이다. 민 차관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그는 “5~10년 후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란에 ‘농부’를 쓸 수 있는 농업·농촌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다. 역대 정부가 숱한 돈과 정책을 쏟아 부었지만, 지난 15년간 농가 인구 중 절반이 ‘탈농(脫農)’을 택했다. 2015년이면 쌀을 포함한 모든 농식품이 완전 개방된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남은 4년이 ‘농업의 생사, 농촌의 미래’를 좌우할 마지막 시기인지 모른다.
>> 여전히 농업은 어렵고, 농민은 줄고, 농촌은 피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농업이 어려워졌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선 시장 개방을 들 수 있겠죠. 정부 예산도 효과적으로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효과를 내는 것에 대한 공무원 인식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또 개방에 무조건 반대하는 농업계도 시대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이래서는 농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죠.”
>> 그러면, 어떻게 경쟁력이 생깁니까?
“장태평 장관의 생각을 요약하면 3MC 전략입니다. 마켓 크리에이션(Market Crea-tion), 메서드 체인지(Method Change), 마인드 체인지(Mind Change)입니다. 수출을 포함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농정 시스템을 개선하고, 공무원과 농업 관계자, 농민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에 배려의 경제가 포함돼야 하죠. 못 따라가는 농어업인을 위한 실질적인 배려가 포함된 ‘3MC+배려’가 정부의 농정 방향입니다.”
민 차관에게 ‘차관 내정 전후, MB의 특별한 당부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을 때 수시로 들었다는 말을 소개했다.
“대통령께서는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어렵다고 무조건 도와주지 않는다며, 진정으로 농업과 농민을 사랑하는 정책을 만들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농업이 진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농정을 펴라는 당부를 자주 했습니다.”
>> 지난 10년을 ‘농업의 안락사 시기’로 표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농가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60세 이상입니다. 과연 젊은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5년, 10년 후 인생 이모작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어디서 이들을 흡수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농업과 농촌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기계화됐고, 농기술도 많이 발전했죠. 또 식품과 농업이 연계되면서 ‘식품’이 매개가 돼, 농민들이 ‘우리도 식품을 만들어볼까?’라는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콩보다는 메주, 메주보다는 된장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농민과 농민, 농민과 어민, 농어민과 식품업자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조금씩 ‘돈 되는 농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멋진 농업’입니다. 돈과 보람과 만족감이 있는 곳, 그래서 젊은이들이 ‘농업’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수 있는 산업으로서의 농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민승규 차관(맨 오른쪽)이 산파 역할을 한 ‘벤처농업대학’은 수많은 스타농민을 배출했다. 自强不息(자강불식)이란 사자성어가 뚜렷하다. |
핵심은 ‘어떻게 시장을 만들 것인가’
>> 예를 든다면?
“‘금수강촌 만들기’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살아 생전 꼭 가고 싶은 101개 마을’ 같은 것을 농촌에 만들자는 거예요. 또 과일에도 과일말을 만드는 겁니다. 왜 꽃에만 꽃말이 있나요? 한우, 돼지고기도 마찬가지죠. 고기 부위에 먹고 싶은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아름다운 농업, 문화가 있는 농업, 가고 싶은 농촌을 만들어가겠다는 겁니다.”
>> 취임사를 통해 ‘연개소문’ 전략을 소개했는데, 부연 설명을 해주시죠.
“연개소문은 네트워크를 표현하는 연(連)과 열려 있는 사고를 뜻하는 개(開), 작지만 강한 농업을 뜻하는 소(小), 이미지 쇄신을 뜻하는 문(紋)을 뜻합니다. 이제 농업은 문화, 예술 분야와 연결돼야 합니다. 식품클러스터 같은 곳에 세계 유명 식품회사는 물론 다양한 사업이 같이 들어와야 합니다. 또 강소농을 키우고, 우리만의 색깔이 있는 농업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서 제가 만든 말입니다.”
>> 현재 우리 농업이 처한 현실을 볼 때, 뜬구름 같은 얘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농업이 세계 1등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농수산업 경쟁력을 봤을 때, 우리가 월드 베스트가 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온리 원’은 될 수 있어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 것이죠. 일화를 하나 얘기하자면, 일본에 있을 때 한 제자와 유명한 라면집에 갔습니다. 오래 기다렸다 먹었는데 화가 날 정도로 맛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점장을 불러 ‘이 집 라면이 제일 맛있는 것 맞느냐’고 물었더니, 점장 왈 ‘제일 좋은 맛은 자신 없지만, 돈을 제일 많이 벌 자신은 있다’고 하더군요. 알고 봤더니, 그 집의 경쟁력은 메뉴판에 있었어요. 메뉴가 무려 1만2000가지예요. 이런 식이죠. 면은 꼬들꼬들한 것, 덜 꼬들한 것, 불린 것, 덜 불린 것 등을 고르고, 국물은 매운 것, 안 매운 것, 심심한 것, 보통 맛, 육우 국물, 멸치 국물 이런 식으로 또 고르고, 파도 흰 파, 파란 파, 굵은 파 이런 식으로 고르니까, 1만2000가지예요.
그리고는 메뉴판 위에 ‘어떤 것을 선택해도 가격은 똑같습니다’라고 써 있더군요.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아! 경쟁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우리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과 문화와 관광이 접목된 아름다운 농업·농촌, 이야기가 있는 농업, 창의적 발상이 녹아든 농업을 만들면 경쟁력은 저절로 생깁니다.”
쉬운 듯 어려운 얘기였다. 그는 민간 시절 ‘농민 CEO 10만 양병설’ ‘돈 되는 농업’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그는 “스타 농민 10만 명을 키우면, 그들을 따라 하려는 50만~60만 명의 농민이 생긴다”며 “농민들이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벤처농업대학’의 산파 역할을 하며, 수많은 스타농민을 키웠다.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도 벤처농업대학의 일원이었다.
“벤처농업대학에서 가끔 철야워크숍을 합니다. 제가 20시간 연속 수업하고 토론해보자고 제의하면, 300여 명이나 되는 농민은 속으론 자신 없어 하면서도 ‘해봅시다’하는 분위기가 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최선을 다해 힘씀을 쉬지 않는다)’이라는 거였죠.”
>> 지난 1월 29일 ‘농업경쟁력 강화 방안’이 발표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농정 방향’이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경쟁과 효율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있는데, 맞습니까?
“정부의 농정을 한마디로 하면 ‘어떻게 시장을 만들어 갈 것인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미션이자 약속이죠. 다만 오해가 한 가지 있는데, 이번에 발표된 방안은 산업으로서의 농업에 초점을 맞춘 정책입니다. 100% 산업적 측면에서만 본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 그래도 2012년 100억 달러 수출 달성은 너무 희망적이지 않나요(올해 농업 수출액은 50억 달러가 못 된다)? 또 2012년까지 20만 개의 기업형 주업농, 1만 개의 법인형 경영체를 육성한다고 했는데, 현실성이 있습니까?
“농업 생산성은 높아지는데, 그렇다고 한 끼에 밥 두세 그릇을 먹을 수는 없죠. 결국 수출이라는 형태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농가가 아닌 법인 경영체로 전환되고, 공동 경영을 통해 브랜드를 만들어 농기업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90만 전업 농가가 이런 식으로 경쟁력을 높여가면, 충분히 가능한 목표입니다.”
>> 대기업과 해외자본 유입 허용 등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산업논리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대기업과 해외자본이 들어오면 농민이 거대 자본에 종속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은 생산 자체보다는 유통과 판매 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동안 농업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죠. 다른 산업의 자본이 들어올 여건도 안 됐고, 투자도 없었고, 그래서 성공사례도 없죠. 대기업이 들어와 시장 파이를 키우고, 농가와 협력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 일각에선, 정부 예산이나 정책이 효과도 없는데, 차라리 90만 전업농가에 연 1000만원씩 소득 보조 지원을 하는 게 낫다는 푸념도 합니다.
농식품부 정책 “보다 정교하게”
“올해 농식품부 예산이 14조5000억원 정도입니다. 이 예산은 적은 것이 아니에요. 어정쩡하게 1조원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죠. 만약 1조원으로 일본에 하나로마트 같은 것을 세우면 몇 십 개를 세울 수 있습니다. 농림부 예산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정책을 보다 정교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나갈 것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 관련 농림수산식품 분야 정책을 준비 중이시죠?
“2월 말이나 3월 초께 발표할 예정입니다. 모토는 ‘녹색성장은 생활이다’입니다. 농식품부 직원들에게 5년 후 대한민국 생활 패턴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이미지를 그려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환경 보존은 물론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가령 팰릿(톱밥을 압축한 것)이라는 게 있는데, 경유보다 CO2 배출량은 12분의 1이고, 가격은 절반이에요. 팰릿을 농어업 분야 발전 연료로 확대·보급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민승규 차관은 농지소유 제한 완화, 식품관리 일원화 문제 등은 상관(장태평 장관)을 의식한 듯 되도록 말을 아꼈다. 국세청과 오랜 세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주류 산업’ 이관 문제에 대해서는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민속주에서도 성공 사례를 별로 만들지 못했는데, 국세청과 소주·맥주를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며 “성공 사례를 만든 후 협의를 해 나가는 것이 당당하다”고 말했다.
>> 농협개혁법이 24일로 예정된 국회 상정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소위 농촌당 국회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는데,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농협개혁은 농협이 바뀌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농업인의 염원이 담긴 것입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봅니다. 장태평 장관이 정말 열심히 뛰고 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보면서, 의원들도 진정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민 차관의 바람과 달리, 2월 23일 공청회, 24일 상정 및 토론, 25일 법안소위 회부로 예정된 농협법 개정안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다수가 반대 의사를 보이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의원들은 ‘농협 조합장 비상임화’ 조항 등을 문제 삼는다. 이 조항은 농협중앙회장과 일선 조합장의 유착 고리를 끊는다는 점에서 농협개혁법의 핵심 중 하나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은 ‘조합장 비상임화는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훼손한다’ ‘선거로 뽑은 조합장을 왜 비상임화하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민 차관에게 “농림수산위 의원들에 대한 농협 측 로비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봤느냐”고 하자, 그는 “우리도 열심히 로비를 하고 있다”며 웃었다. 쓴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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