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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미디어’의 카운터블로

‘형님 미디어’의 카운터블로

첨단기술과 미디어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곳곳에서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행동이 굼뜬 ‘올드 미디어’ 회사와 민첩한 신생 ‘뉴미디어’ 회사가 맞부딪친다. 대개는 뉴미디어 쪽이 이긴다. 콘텐트 업체가 인터넷 사업 진출과 관련한 기술 문제를 공부하는 쪽보다 뉴미디어 업체가 콘텐트 사업을 개발하는 편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음반사들을 따돌리고 지금은 사실상 그들의 사업을 좌지우지한다. 구글은 다른 사람들이 만든 콘텐트 곁에 나란히 광고를 실어 수십 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반면 그 콘텐트 제작자, 신문사, 잡지사 중 일부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구글은 동영상으로도 똑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해 2006년 후반 16억5000만 달러를 주고 유튜브를 인수했다.

유저가 제작한 동영상, 그리고 영화와 TV 드라마의 불법복제판의 공유기반을 조성해 엄청난 회원 수를 확보한 사이트다. 유튜브가 아직 수익은 없지만 구글은 뭔가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애플은 과거 아이튠스 스토어(애플의 온라인 음악 파일 매장)로 음반사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영화사와 TV 스튜디오와도 손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번엔 올드 미디어 쪽이 반격에 나섰다.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몇 달 뒤인 2007년, NBC 유니버설과 뉴스 코프는 합작으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실리콘 밸리 전문가들은 훌루(‘귀중품 보유자’라는 뜻의 중국어에서 유래)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가 쫄딱 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 매체 사람들은 인터넷을 모르는 데다 맞수끼리 손을 잡았으니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유튜브와 달리 훌루는 NBC·폭스 등의 프로그램 같은 양질의 콘텐트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데다 기술도 뛰어났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깔끔하고 단순했으며 검색엔진도 똑똑했다.

출범 후 불과 1년이 지난 최근 훌루가 유튜브를 제치고 우위를 차지했다. “제국이 반격에 나섰다”고 조사업체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아라시 에이멀 애널리스트가 말했다. 월간 방문객 수는 훌루가 유튜브보다 훨씬 적지만(850만 명 대 8950만 명) 수익 측면에선 훌루가 앞질렀다고 에이멀은 추산한다.

지난해 훌루는 미국 내 광고 수익 6500만 달러, 총 이익 1200만 달러를 달성한 반면 유튜브의 미국 내 수익은 1억1400만 달러였지만 총 이익은 전무했다는 분석이다. 올해는 훌루의 미국 내 수익이 1억7500만 달러로 불어나며 유튜브는 그보다 약간 적을 것이라고 에이멀은 예측했다(두 회사 모두 이 통계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에이멀은 독자적으로 수익 예상치를 계산했다).

유튜브는 콘텐트가 많지만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는 UCC(유저 제작 동영상) 속에서 브랜드를 홍보하고 싶어 할 회사는 없다고 에이멀이 말했다. 유튜브의 동영상 중 광고가 붙는 비율은 3~4%에 불과하지만 훌루는 그 비율이 80%에 달한다고 그는 추정했다. 유튜브는 에이멀의 추정치가 너무 낮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통계는 밝히지 않았다.

유튜브는 광고주들이 UCC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요즘 TV 프로그램과 영화 콘텐트를 추가하기 위한 계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마 훌루 창업자들의 가장 현명한 조치는 외부에서 인재를 물색한 일인 듯하다. 전 아마존 사업본부장 제이슨 카일라를 훌루의 최고경영자로,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 출신의 에릭 펭(28)을 개발 책임자로 영입했다.

베이징에서 거주하던 펭은 중국에서 8명으로 팀을 구성해 두 달 만에 훌루의 최초 소프트웨어 코드를 설계했으며 4개월 뒤인 2008년 3월 사이트를 띄웠다. 코드 개발은 아직도 대부분 베이징에서 이뤄지며 훌루가 고용한 30명의 엔지니어가 그 작업을 한다. 나머지는 LA 본사에서 맡는다.

훌루 팀은 시청자의 기호를 고려해 더 효과적인 광고방식을 시도한다. 프로그램 전체에 광고를 분산하거나 도입부에 광고를 모두 몰아 시청자가 그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이 하나다(하지만 어느 쪽이든 광고를 건너뛸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로 자동차 메이커의 광고에서 시청자가 픽업 트럭, 크로스오버 SUV(스포츠다목적차량), 스포츠카 중 택일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시청자는 약간의 재량권을 갖고 광고주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픽업 트럭 광고를 낭비하지 않는다. 훌루는 또 30개 가까운 사이트(마이스페이스·야후·MSN 포함)와 제휴를 통해 그들의 사이트에서 훌루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배급방식을 채택했다. 이용자가 훌루 사이트를 찾아가 프로그램을 시청하도록 하기보다 콘텐트가 이용자를 찾아가게 하는 구상이다.

훌루는 실상 유튜브와 경쟁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실제 경쟁자는 오히려 케이블 TV 회사들일지 모른다. 인터넷에서 돈 한 푼 안 들고 그렇게 많은 양질의 콘텐트를 볼 수 있는데 한 달에 100달러나 주고 케이블 TV를 신청해야 할 이유가 없잖은가?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인터넷에 범람한다.

훌루뿐 아니라 베오, 주스트 같은 신생 사이트가 그 매개체다. 그 밖에도 TV닷컴을 운영하는 CBS, ABC.com에서 TV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ABC 등의 기존 방송사들도 가세했다. 교훈은 뭘까? 남의 집 고양이가 줄을 갖고 노는 모습이 재미있을지는 몰라도 어젯밤의 드라마만큼 충만한 경험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고 보니 올드 미디어 사람들이 아직도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것을 돈으로 연결하는 비법을 아는 모양이다. “쫄딱 망할 회사에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NBC 유니버설 디지털 배급사 사장이자 훌루의 이사인 장-브리악 페렛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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