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음식에 세금 매긴다고?
서민음식에 세금 매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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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당에서 샌드위치나 커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반드시 묻는다. “Sur place?”(이곳에 앉아서 드실래요?) 아니면 “Emporter?”(가져가서 드실래요?)다. 주머니가 가볍다면 후자로 대답하는 게 현명하다.
식당 안 홀에 앉아 먹으면 19.6%의 부가가치세가 붙고, 판매대 밖으로 물러나 서서 먹으면 5.5%의 세율이 적용돼 지갑에서 나가는 돈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세법 용어로 따지면 전자는 음식점 용역거래이고, 후자는 재화 공급(판매거래)이라서 그렇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은 한국처럼 일률적으로 10%인 단일세율이 아니라 거래 형태에 따라 세율이 다른 복수세율 체계다. 우리나라처럼 시간이 있으면 식당 안에 앉아서 먹고, 시간이 부족하면 서서 먹거나 들고 나오면 그만인데 먹는 장소에 따라 세율이 달라 복잡하다고?
유럽 사람들이라고 세제의 간편화가 싫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음식점에서 샌드위치 하나 파는 것도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 형태에 따라 세율을 달리할 정도로 조세 제도를 치밀하게 운용한다. 이런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재무장관들이 3월 10일 서비스업종의 부가세 최저세율을 한시적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고용 효과가 큰 요식업과 숙박업, 이·미용업 등 서비스 업종의 부가세율을 낮추면 판매가격이 떨어지고 소비와 고용이 늘어나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리란 판단에서다. 부가세율 인하는 EU 집행위원회가 마련한 2000억 유로 규모의 경기부양책 중 핵심이다. 가라앉은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부가세율을 낮추기로 한 EU와 달리 한국에선 그 동안 부가세를 매기지 않던 품목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대상은 포장두부다. 가공식품을 포장해 팔 때 부가세를 매기고 있어 포장두부에도 물려야 형평성에 맞는다는 국세청 설명이다. 부가세법을 보면 김치·두부 등 포장하지 않은 단순 가공 식료품과 생산물 본래 성질이 변하지 않는 정도의 1차 가공을 거치는 식품은 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포장 콩나물의 경우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운반의 편리성만 더해지므로 부가세 면세 품목이다. 그러나 포장김치와 통에 넣어 파는 젓갈, 간장과 된장 등 단순가공 식품이라도 거래 단위로 포장해 팔 때는 부가세가 부과된다. 포장으로 유통기한이 늘어나고 상품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두부의 경우 원래 판두부로 판매돼 왔기 때문에 면세 대상이었다. 그런데 포장두부가 만들어져 팔리고 그 비중이 커지면서 과세 여부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논리적으로 보면 맞는 것 같지만 문제는 그 시기와 배경이다. 정부가 부동산보유세나 소득세·법인세 등 가진 자들이 주로 내는 직접세 위주로 감세정책을 펼 때 부족해진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불특정다수가 부담하는 간접세를 올리지 않을까 우려가 많았는데 이게 현실화하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소득이 줄어드는 가운데 물가가 올라 걱정이다. 특히 식료품 값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두 배 이상 뛰었다.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선 경기침체 속 물가가 떨어져 디플레를 걱정하는데, 한국만 원화가치 급락 여파로 물가가 오른다. 이런 판에 가족이 함께 하는 밥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이자 퇴근길 한잔할 때 안주로 흔히 찾는 두부 값마저 세금 때문에 더 오르면 서민 푼돈을 모아 부유층에 퍼 주는 꼴이라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이유로 감세정책을 펴는 한편 30조원 규모의 수퍼 추경예산 편성을 추진 중이다. 정말 형평성이 문제라면 포장김치나 포장된장 등 다른 1차 농수산 가공식품에 붙는 부가세를 낮추거나 면제하는 쪽으로는 왜 생각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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