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깨고 창의시정 날개 단다
철밥통 깨고 창의시정 날개 단다
서울시청 새 청사가 완공될 때(2011년 2월)까지 임시로 사용되는 서소문 별관 제막식 광경. |
오세훈 서울시장은 3년 전 한나라당의 ‘김연아’였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청량제 같은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김연아처럼, 오 시장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휘청거리던 한나라당의 구세주였다. 오 시장의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등장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그해 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후보로 거론되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한나라당의 홍준표·맹형규 의원과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앞서며 부동의 1위를 달렸다. 이에 놀란 한나라당은 판세를 뒤집어줄 ‘새 얼굴’의 출현을 갈망하면서 오 시장을 점 찍었다.
오 시장이 2004년 국회의원으로서 정치 개혁의 좌절을 개탄하며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참신한 이미지를 유권자들이 높이 산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6년 4월 9일 오 시장이 경선 참여를 선언한 순간 한나라당 후보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6개월간 표밭을 갈아온 두 거물급 후보는 경선에서 힘 한번 못 써보고 패하고 말았다.
서울시장 본선에서도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 하락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 등과 맞물려 강금실 전 장관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61.1%라는 역대 최다 득표로 민선 4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오 시장과 김연아 선수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김 선수는 고된 훈련과 끈질긴 도전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오 시장은 얼떨결에 서울시장 자리를 주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방선거 7개월 전인 2005년 11월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수기 회사와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광고계약을 맺었다. 출마할 요량이었다면 사전선거운동 시비에 휘말릴 그런 행보를 보일 리 없었다.
따라서 급작스럽게 경선에 참여한 이후 벼락치기 공부를 했겠지만 준비된 시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방대한 서울시정을 숙지할 시간도, 미래 대안을 곰곰이 생각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취임 직후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에게 창의서울시정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회장이 자문위원장 겸 공동본부장을 맡은 ‘100일 창의서울추진본부’에서 서울시의 비전과 발전의 기본 틀을 만들어 냈다. 그러는 사이 시장은 도대체 어디 가고 코빼기도 안 보이느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오 시장 본인도 뉴스위크 한국판에 “처음 6개월간은 기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전임 이명박 시장이 고려대에 입학하던 1961년 태어났다. 살아온 시대도, 사물을 보는 눈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서울시장이란 자리를 지켜낸 셈이다. 신임시장은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취임 초 “역대 시장들이 잘했기 때문에 서울시는 하드웨어가 잘 갖춰진 듯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다”는 말을 즐겨 썼다. 젊은 시장으로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창의서울 추진본부와 함께 오 시장이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어가면서 마련한 계획은 서울을 세계 10대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만든다는 목표였다.
당시 서울의 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수도 30곳 중 20위권이었다. 서울시가 세계 일류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게 하겠다며 마련한 개념은 ‘컬처노믹스 (Culturenomics: 문화마케팅)’였다. 굴뚝산업이나 제조업보다는 문화 콘텐트를 개발해 경제 산업 부문의 부가가치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2006년 7월 서울시청에 첫 출근한 오 시장을 맞는 시청 직원들. 이때까지만 해도 인사개혁태풍이 불지는 아무도 몰랐다. |
그 연장선상에서 서울시의 핵심전략 산업으로 관광, 디자인·패션, 컨벤션, 금융·유통서비스, IT(정보기술)·BT(생명공학기술)·NT(나노기술) 등 첨단산업의 연구개발(R&D), 디지털 콘텐트 등 6개 분야를 내세웠다. 한강 르네상스, 도시균형발전, 도심 재창조, 맑고 푸른 서울, 시민행복업그레이드 프로젝트 등이 추진되는 배경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세계 도시로 가자면 외국인들도 살기 편한 도시가 돼야 한다. 그래야 외국인 관광객도 오고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도시 경쟁력이 쑥쑥 커간다는 믿음에서다. 서울시는 우선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글로벌 비즈니스존’ ‘글로벌 빌리지존’ ‘글로벌 문화교류존’ 등으로 지정했다.
또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교통방송(TBS)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서울지역 대상으로 영어 전용 FM 라디오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영어 FM 편성·제작을 담당하는 김남일 부장은 “국내 거주 외국인뿐만 아니라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인들도 많이 청취한다”고 말했다. 이런 장치들을 기반으로 매년 1200만 명(서울시 목표)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 모으겠다는 게 오 시장의 복안이다.
서울시청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서울시 정책 현안들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방대한 내용을 훑다 보면 어렴풋이나마 오 시장의 시정 키워드가 머릿속에 맴돈다. 주로 ‘문화’ ‘디자인’ ‘외국인’ ‘친환경’ 등의 개념들이다. 물론 이를 구체화하는 사업은 수없이 많다. 오 시장이 취임 후 추진해 온 사업은 490개가 넘는다.
한 측근 인사는 정책 입안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서울의 주요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누군가가 청계천처럼 시민들에게 쉽게 먹히는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특정 사업에 시정 역량이 집중되는 모양새를 오 시장이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참모들 입장에서는 오 시장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하드웨어형 대형 사업 한두 개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캠프의 수장이 별로 뜻이 없었다는 말이다.
시정 준비는 부족했지만 취임사에서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강조해 온 화두는 ‘창의시정’이었다. 공무원 조직, 철밥통의 대명사이자, 복마전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서울시청에 민간에서나 통용될 법한 ‘창의력’을 불어넣겠다는 포부다. 그는 ‘창의와 열정으로 새로운 서울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생각이 사람을 바꾸고,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지식, 창의성, 상상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나아가 “서울은 새로운 생각으로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세계적인 도시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마디로 공무원들에게 변화를 요청한 셈이다. 3년 전엔 그래도 완곡하게 표현됐다. 하지만 오 시장의 내심은 아주 사나웠던 모양이다.
그는 조직을 일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취임 당시 판단했다고 최근 뉴스위크 한국판과의 인터뷰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당시 청계천 사업, 대중교통 개혁 등이 성공하면서 마치 대단히 일 잘하는 조직인 양 인식됐다. 그러나 내실을 따져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굵직한 프로젝트 한두 개의 승리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일 잘한다고 시민들이 생각하고, 공무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전임 시장의 아이디어 승리요, 새로운 시도의 승리였을 뿐 서울시 공무원 전체 역량이 극대화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공무원들이 주제파악도 못하고 자만에 빠졌다는 비판이다.
오 시장은 그런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더구나 서울시를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10대 도시로 끌어 올리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따라서 다른 어느 나라 도시의 공무원보다 더 높은 업무역량을 갖춰야 했다. 승진제도부터 손을 댔다. 서울시에서 6급에서 초급간부인 5급으로 승진하자면 평균 11년 3개월이 걸렸다.
월간중앙 정치포럼에서 지역산업클러스터 구상을 설명하는 오 시장. |
서울시는 6개월에 한 번 근무평가(근무성적평정)를 했다. 문제는 승진 직전의 3년 동안의 근무평가 결과만 승진심사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미리부터 힘써 일할 이유가 없었다. 6급 승진 이후 7년 동안은 비교적 편한 부서를 돌다가 승진할 즈음 일을 제대로 하는 자리를 찾아 근무평가 성적만 올리면 승진이 보장되는 체계였다고 권영규 서울시 경영기획실장이 전했다.
근무평가에서 연차가 높은 직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줬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였다. 예를 들면 6급으로 10년 이상 재직한 이는 5급 승진이 임박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괄적으로 높은 점수인 ‘수’를 주고, 승진시점이 조금 더 오래 남은 사람, 가령 7년 된 사람은 ‘우’를 줬다.
그리고 6급으로 3∼4년 재직한 사람은 승진이 까마득하다고 해서 ‘양’을 주는 식이다. 결국 연공서열로 평가하다 보니 때가 되면 자기 몫을 다 찾아먹는 방식으로 인사평가가 운용돼 왔다. 직원들 스스로도 평가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됐다.“실질적인 평가를 못하는 인사제도 아래서는 공무원이 열심히 일할 필요성도 경쟁심도 못 느꼈다”고 권 실장은 돌이켰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빨리 승진하는 ‘인사고속도로’를 닦았다. 이를 테면 문제가 된 근무평가제도를 개선하고, 한 달에 한 번(지금은 공무원들의 중압감을 반영해 분기에 한 번으로 완화됐다)평가받는 상시평가제도를 새로 도입해 긴장도를 끌어 올렸다. 여기에 성과포인트를 따로 매겼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이를 실행한 직원들에게는 새로 도입한 ‘성과포인트’를 따로 줬다.
실적이 우수한 직원은 11년 3개월 걸리는 6급에서 5급 승진 기간을 최대 5년으로 단축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7급에서 6급, 8급에서 7급 승진도 각각 3~4년 만에 가능토록 했다. 경쟁이 붙으면서 연공서열이 점차 발붙일 곳을 잃어갔다. 일례로 100여 개의 동 주민센터를 통폐합해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열어준 한 직원은 성과포인트 등에 힘입어 지난해 6년 5개월 만에 5급을 달았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설 공사장 소음 수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준 전광판을 공사현장에 세워 시민들의 소음 피해를 줄여준 직원도 7년 4개월 만에 7급에서 6급으로 올랐다. 서울시 건축분야 공무원이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기간이 11년 7개월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추월이다. 이런 식으로 2008년 5급 승진자 43명 중 24명이 인사고속도로를 탄 사람이다.
그러나 승진을 아예 포기한 공무원에겐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정말 무능하거나, 내놓고 직무에 태만하거나, 냉소적인 자세로 조직 내 화합을 해치는 이들이 있어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오 시장은 이들을 겨냥해 ‘공무원 3% 퇴출’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2007년 3월 정기인사에 즈음해 부서 책임자들에게 함께 일하기 어려워 다른 부서로 보내기 원하는 직원 3% 명단을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했다.
다른 부서에서 데려가지 않으면 나중에 퇴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 언론은 이를 ‘3% 퇴출’ 정책으로 불렀다.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이자 굴욕적인 조치다. 직무능력을 올리는 강도 높은 재교육 과정을 이수함과 동시에 기초질서확립과 같은 단순업무를 취급하는 ‘현장시정지원단’에 투입됐다.
이런 과정을 6개월 정도 거친 뒤 재심사를 거쳐 복귀 여부를 재심사하는 제도다. 2007년 서울시에서는 모두 102명이 현장시정지원단에 배속됐으며, 끝내 퇴직한 인원이 40명이었다. 서울시 공무원을 대략 1만 명으로 잡으면 0.4%가 퇴출된 셈이다.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2004년부터 3년간 강제 퇴출된 국가공무원은 연평균 239명이어서 비율로 따지면 서울시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이종현 서울시장 공보특보는 “역대 서울시장 중에서 이처럼 정원의 일부를 강제로 퇴출한 예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내부 반발이 없지 않았다. 김경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시청지부장은 “잦은 평가로 윗사람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들이 순치되는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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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민들의 지지가 더 거셌다. 2007년 서울시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 다음과 파란을 통한 인터넷 설문조사(7700여 명이 참여했다)에서 서울시 10대 시정 중 ‘무능 공무원 3% 퇴출’ 정책이 1위로 꼽혔다.
또 한국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시민의 78%가 ‘3% 퇴출제’에 찬성했다. 서울시 시민감사관실이 구의원 의정비를 과도하게 올린 자치구 현장실사에 나서는 등 기능이 대폭 활성화된 것도 오 시장 취임 후 달라진 시정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전국 88개 공공기관 중에서 서울시를 2007년도 인사혁신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벌이는 16개 시·도 청렴도 조사에서 2006년 15위였던 서울은 2008년 1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인사개혁은 오 시장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는 한 계기가 됐다. 그에게는 부드러운 외모나 말씨와 달리 옹골찬 구석이 있다고 이승한 홈플러스그룹 회장은 말했다. “회사 경영 때문에 시정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자 삼고초려로 설득했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거라 했던 서울시 인사개혁도 그 집요함으로 끝내 이뤄냈다.” 한때 오 시장 참모들조차 노조의 완강한 저항에 완급조절을 고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 시장은 당초의 목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 스스로 “타협한 게 별로 없다. 하려는 대로 다했다”고 뉴스위크 한국판에 말했다.
권영규 서울시 경영기획실장은 2007년 당시 행정국장으로 인사개혁 실무작업을 주도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시장의 눈빛만으로도 심중을 헤아릴 줄 안다. 만약 오 시장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면 인사개혁은 물 건너갔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도 오 시장은 아직 이명박 전임 시장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다.
바로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 시행과 같이 머리에 딱 떠오르는 치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홈플러스그룹 이 회장은 오 시장을 일러 “공사가 분명하고 일을 추진할 때는 확실하게 매듭짓는 알토란 같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일반 시민들은 서울시장을 가까이서 볼 일이 별로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뤄진 서울시정의 대부분이 당장 시민들이 몸으로 체감하기 힘든 추상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변화가 주를 이룬다. 문화와 디자인, 창의시정이 청계천과 버스전용차로제만큼 서울시민들에게 와 닿진 않는다. 하지만 오 시장은 애초 손에 잡히는 치적에 연연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2005년 8월 김호기 연세대 교수, 강원택 숭실대 교수 등 평소 알고 지내던 학자 7명과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책을 펴냈다. 여러 나라의 실패와 성공사례 분석을 통해 한국이 도약을 이루는 방법론을 담았다. 오 시장은 이 책에서 “정권에는 임기가 있지만 정책에는 임기가 없는 법이다.
4~5년의 임기 중에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평가될 업적을 자신의 이름으로 남기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의미도 없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당대의 오해와 곡해를 참아가면서 10년, 20년 후 또는 사후에나 알아줄 성과를 위해 여론과 맞서는 지도자 없이 진정으로 위대하고 강한 나라는 불가능하다.”
그는 시장 취임 이후에도 “10년 후, 20년 후 서울의 뼈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의 역작으로 남을 야심작들은 호흡이 길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새단장하는 한강프로젝트는 목표연도가 2030년으로 잡혀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파크 조성은 2011년에야 사업이 끝난다.
창경궁~종묘~남산을 녹지로 연결하는 남북녹지축도 대부분 2010년 이후에나 완결을 바라보는 장기사업이다. 그러나 오 시장도 현실 정치인이다. 내년이면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지며, 공천도 받고, 본선 경쟁력도 강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청계천 같은 프로젝트가 절실해지게 마련이다.
서울시의회 이수정 의원(민주노동당)은 “청계천은 누구나 가서 걸으면 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차별이 없다. 디자인이나 패션, 문화 등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강조해 온 오 시장도 고민이 없지는 않은 눈치다. 최근 들어 장기 프로젝트 사업의 연도별 진척상황을 홍보하는 일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1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디자인 서울의 미래와 컬처노믹스 전략을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올 하반기께 가시화할 한강르네상스 1단계 사업(반포권역, 여의도권역, 뚝섬권역, 난지권역)과 서울 광화문광장의 전개 과정도 곁들였다. 올해와 내년 초 달라질 서울의 모습을 입에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조은희 여성가족정책관 영입 이후 부쩍 활발해진 여성 복지사업도 손에 잡히는 시정의 한 축을 이룬다.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유력한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르게 된다.(오 시장의 지인인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오 시장이 동갑내기인 데다 변호사 출신이고 공히 소프트파워형 리더십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취임사에서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라는 책을 인용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라면서 서울시의 나아갈 방향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위대한 서울을 지향하겠다는 말이다. 뒤집어말하면 좋은 서울만 생각했다면 좀 더 쉬운 길을 걸어왔을 거라는 뜻도 담겨있다.
짐 콜린스는 책에서 ‘플라이 휠의 법칙’을 인용했다. 육중한 몸체가 굴대 위에 수평으로 올려져 있는 금속 원판(플라이 휠)은 처음엔 돌려 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그 움직임을 거의 느끼기 힘들 정도지만 계속 밀어가면 어느 새 한 바퀴를 돌고, 또 가속도가 붙으면 그 굴림을 멈추지 못할 지경이 된다.
위대한 회사는 바로 이런 조직개혁의 기반 위에 서 있다고 했다. 오 시장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겼다. “우리의 노력이 잘 알려지지 않아도 초조해 하지 않는다. 나는 한두 가지 사업으로 승부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아마도 어느 순간에는 모든 노력이 양에서 질로 전환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비약을 위한 전환점)가 올 것이다.” 자신의 인사개혁을 비롯한 창의시정이 이 플라이 휠처럼 탄력 받기를 고대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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