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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종착지 아닌 새로운 출발점”

“정상은 종착지 아닌 새로운 출발점”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 업체들이 고장이 잦아 가장 고민하는 부품을 꼽으라면? PCB(Printed Circuit Board: 인쇄회로기판) 부분이다. ㈜고영테크놀러지(이하 고영)는 그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줄여준 검사장비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고영이 생산하는 솔더 페이스트 검사장비(SPI: Solder Paste Inspecter)는 PCB에 부품을 붙이는 솔더의 도포 상태를 3D그래픽으로 검사한다. 이 장비는 2003년부터 수요가 일기 시작해 2008년 기준으로 전 세계 1000억원대 시장이 형성됐다. 2005년 고영은 이 제품으로 검사장비 시장에 진출한 지 2년 만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창업 3년 만에 일궈낸 기적이었다. 그 후로 회사는 연평균 4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고, 지금은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어섰다. PCB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필수 부품으로 이곳의 납땜 상태가 제품 불량률을 결정한다. 고영이 개발한 3D SPI 장비는 SMT공정(표면실장기술: PCB 기판 위에 부품을 장착하는 공정)의 생산 효율을 높임으로써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줬다.

이 장비가 나오기 전엔 솔더 페이스트의 도포 상태를 미리 검사하기가 어려워 부품들을 모두 장착한 후 2D AOI(Automatic Optical Inspector: 자동광학검사) 장비로 불량 여부를 검사했었다. SMT 공정의 불량률이 크게 줄자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고영의 3D 검사장비를 폭발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고영은 이 분야를 집중 공략하면서 3D 검사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이 회사가 단기간에 세계 1위로 발돋움하게 된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기술력이다. 고영은 3D 측정 장치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혀왔던 ‘그림자 효과’를 극복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림자 효과’는 측면에서 빛을 쏘아 형상을 포착할 때 그림자가 진 부분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려운 현상을 지칭한다. 고영은 이 난제를 양방향 프로젝션을 이용해 해결했다. 고영의 이승준 사업부장은 “복수의 프로젝션 장치 이용 방식은 특허기술로 인정받아 이 분야에서 고영의 기술적 우위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의 기술 우위는 2007년 미국의 ‘SMT magazine’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의 신제품상’을 받은 데서도 입증됐다. 이 상은 SMT 산업군 내의 9만8000여 명에 이르는 고객의 평가를 취합해 선정하며 고영의 제품 경쟁력 덕분에 SMT 업계 최강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이 회사의 제품은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하반기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그 결과 글로벌 EMS((Electronics Manufacturing Supplier: 전자제품 전문 생산업체) 상위 8개 업체가 모두 고영의 제품을 사용하게 됐다. “분야별 전자제품 수위 업체들이 대부분 고영의 고객이라고 보면 된다”고 고광일 사장은 말했다. “이들 업체는 보통 검사장비 기술을 자사의 것으로 간주하지만 실제론 고영의 독자 기술로 제작된 3D 장비를 구매해 사용한다.”

고영의 성공에는 특유의 영업 경쟁력도 작용했다. 초창기부터 이들 전자제품 생산업체 가운데 수위 기업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고 사장은 소위 ‘볼링 앨리(Bowling Alley)’ 전략으로 불리는 영업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볼링 선수들은 스트라이크를 치기 위해 헤드 핀 공략에 집중한다.

첨단제품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도 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한 뒤 인접한 세분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고영의 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다른 기업들도 자연히 뒤따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전략이 잘 들어맞았다.”

창업 4년 만인 2006년 고영은 “검사시장”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그 뒤 2위와 격차를 꾸준히 벌려왔다. 전자제품 전문 생산업체 이외에도 통신 장비업체, 통신 단말기업체, 디지털 가전업체, 반도체 제조업체, 자동차 전장업체 등의 초일류 기업들이 고영의 검사장비를 사용한다.

그 덕분에 2004년 4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2005년 100억원을 넘어섰고 2006년 166억원, 2007년 232억원으로 급증했다. 고영은 지난해에도 매출 343억원에 순익 81억2000만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 CFO인 황인준 이사는 “영업 이익률 20% 상회가 고영의 또 다른 강점”이라고 말했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5%다.

고영은 다행히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 에 가입하지 않아 환차손도 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엔지니어가 주도하는 회사다 보니 환 헤지라는 말조차 몰랐다”고 고 사장은 말했다. 결제가 이뤄지면 즉시 환전하는 등 은행 거래를 곧이곧대로 해온 게 행운으로 작용했다는 말이다. 고영은 그동안 3D SPI 장비를 뛰어넘어 새 아이템 개발에 몰두해 왔다.

회사는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AOI 검사(실장 부품 장착 후 검사) 시장과 반도체 시장을 지목한다. 기존 AOI 시장은 2D 검사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객들의 수요는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기술혁신의 청사진은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지난 4월 초 열린 ‘Nepcon 국내전시회’에서 고영은 세계 최초로 3차원 검사기술을 적용한 AOI 장비를 선보였다.

3D AOI 장비는 부품이 장착된 상태에서 3D로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업계의 반응도 고무적으로 나타났다. 대우증권 박연주 애널리스트는 “3D AOI 장비 시장의 세계 시장 규모가 5000억∼7000억원 정도로 추정돼 향후 고영의 매출은 급신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3D SPI 장비 시장의 전망도 밝다.

박연주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서 생산성 개선 투자가 가속화할 전망이어서 3D SPI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자제품의 경박화, 단소화 경향으로 솔더 페이스트 도포 공정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것도 고영의 미래를 밝게 한다. 더구나 EMS(전자제품 하청제조)업계 의 3D SPI 장비 보급률은 아직 10% 수준에 불과한 만큼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활짝 열려 있다.

3D AOI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이승준 부장은 “고영의 사업 분야가 3D AOI, 반도체 기판, 웨이퍼 범프 검사장비 등 응용시장이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특히 범프 검사장비는 고영이 난반사 등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 향후 전망이 밝다. 더구나 이 장비도 시장 진입 초기 단계여서 현재로서는 성장 가능성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우증권 박연주 애널리스트는 “적용 가능한 시장 규모는 SMT 공정보다 훨씬 크고 진입 장벽도 높아 고영의 향후 사업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1등 고수하려면 치열한 연구개발이 관건”
Q&A 고광일 사장 “반도체 시장 진입으로 성장 기반 다질 터”
창업 2~3년 만에 세계 전자제품 업계의 검사 시장을 석권한 고영의 고광일 사장.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제어계측학을 전공한 뒤 1983년 금성사 중앙연구소에 입사한 이래 LG산전 산업기계연구소, 미래산업 연구소장(전무이사) 등을 거친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로봇틱스 박사과정을 밟았던 그는 1995년 지능형 공업용 로봇시스템을 개발해 장영실상을 받았다.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지만 시장 상황이 어렵다. 어떤 전략을 세웠나?
세계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회사의 성장세를 유지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3차원 인쇄 검사기의 경우 다른 회사들이 넘보지 못할 독보적 위치를 만들어간다. 하이엔드 기술을 확보하면서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선보이는 노력을 계속하려 한다.



반도체 검사 시장 진출이 지속적인 매출 증대의 관건이 될 듯한데.
3차원 WLP(Wafer level package) 공정의 검사장비 시장에 진출을 준비 중이다. 최근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보면, 비메모리 시장뿐 아니라 메모리 시장에도 3차원 웨이퍼 검사장비가 보급되리라 보인다. 그럴 경우 시장의 잠재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존 SPI 시장도 계속 성장하는 단계에 있으며, SPI 시장의 3~5배로 추정되는 AOI 시장에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무기로 진입하게 된다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 거기에다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반도체 시장의 진입까지 이룬다면 고영의 성장기반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고영을 창업하기 전 어려움이 많았다는데 어떻게 극복해 왔나?
내겐 북청 물장수의 피가 흐른다. 내 선친은 함경도 북청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 왔다가 남북 분단으로 실향민이 됐다. 생활 터전을 잃은 선친은 생계수단으로 서울에서 물장사를 했다. 그 근면성과 과묵함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낙담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다.



세계 경기가 동반침체되면서 ‘검사장비 시장’도 영향을 받았을 텐데.
이 분야의 고속 성장은 이미 입증됐다. 더구나 우리의 경쟁우위도 당분간은 위협 받지 못한다. 경기침체는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경기가 둔화될수록 생산성을 개선할 필요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장비 가격도 대당 1억∼2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은 생산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고, 우리는 그런 기업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지속 성장과 1위 수성을 견인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
고영이 현재의 명망과 성과를 고수하려면 치열한 연구개발이 관건이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해 성장동력을 키워가겠다. 기존 시장이든, 새로운 시장이든 고영은 끊임없이 난제에 도전해 왔다. 일단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면, 그 시장에서 반드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1등주의 정신이 고영을 떠받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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