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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

공개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는 ‘타이밍의 중요성’과 관련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진정한 리더는 양보해야 할 때, 타협해야 할 때,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패배 전술을 써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다.”

2008년 GS칼텍스 자회사의 직원이 1000만 명이 넘는 고객의 정보를 빼돌린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수사 브리핑 전 모습.

진정한 리더는 양보뿐 아니라 사과의 타이밍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은 금이다”는 격언이 사과에서는 득(得)보다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특히 다수를 향한 공개적 사과(pu- blic apology)의 타이밍을 고려할 때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은 잊는 것이 오히려 좋다. 자신이 잘못한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며 사과를 늦추는 것은 입지를 더욱 좁히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서 ‘조금 늦은 타이밍의 사과가 때론 좋을 수 있다’는 과학적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자신의 분노와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주고 나서 사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는 주로 친구나 동료 등 ‘개인 간의 사과’(pers-onal apology)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과 타이밍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학계는 ‘사과에 대한 연구’로 주로 개인 간의 사과를 다뤘으며, 공개적 사과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필자가 진행하는 연구는 비즈니스에서 ‘리더의 사과’에 대한 연구다. 이와 같은 공개적 사과는 개인 간의 사과와 공유하는 특징이나 원칙이 많으면서도 구분되는 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다른 점이 ‘타이밍’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공개적 사과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기보다 빨리 하는 것이 낫고, 성급하게 잘잘못을 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과의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외에서 발생한 사례로 공개 사과의 타이밍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사과의 타이밍이 늦은 경우다.

사례1 최근 방송에 복귀한 정지영 아나운서는 2006년에 자신이 혼자 번역한 것으로 알려진 『마시멜로 이야기』가 실은 ‘대리번역’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슈에 휩싸였다. 이 사건으로 정지영씨는 한동안 방송활동을 접어야 했고, 자신이 받은 번역인세 8000여만원을 모두 환원했으며, 지금 이 책은 공역자의 이름이 함께 인쇄돼 판매되고 있다.

당시 한 주요 일간지의 관련 기사 헤드라인이 ‘정지영씨, 오랜 침묵이 사태 키웠다’로 나왔을 정도로 이 사건은 공개사과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정씨와 소속사는 의혹 제기에서부터 공식 입장 발표까지 무려 8일을 허비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사건에서 8일은 매우 긴 시간이다.

8일 동안 그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이 쇄도했고,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일주일이 넘도록 침묵과 소극적인 반응만 보이는 동안 의혹과 소문 그리고 대중의 분노는 커져갔다. 당시 정씨가 나쁜 의도로 입장 표명을 늦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출판사와 입장 정리를 하느라 혹은 겁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추후 스스로 “이미 많이 늦었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사과의 타이밍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사례2 최악의 위기관리 사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은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 해안에서 발생한 엑손발데즈(현 엑손모빌)의 유조선 원유 유출사고다. 기름을 걷어내고 정화하는 데만 25억 달러가 들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한 자료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200만 마리에 이르는 동물이 죽었다고 한다. 사건 자체도 끔찍했지만 굳이 이 사례가 기업의 위기관리 과정상의 최악의 케이스로 20년 넘도록 꼽히는 이유는 타이밍 때문이다. 당시 CEO였던 로런스 롤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6일째 공개 석상에 나타났으며 사고 현장에 간 것은 3주가 지났을 때였다.

게다가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추후 인쇄 광고로 사과했을 때는 이미 때를 놓친 후였다. 여론은 사건뿐 아니라 그 이후 엑손모빌이 보여준 태도에 오랜 세월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다음은 사과의 타이밍이 순수성을 의심하게 하는 경우다.

사례3 우리나라 대표 연극배우인 윤석화씨의 학력위조 사건. 당시 기사를 살펴보자. 2007년 8월 15일 MBC 뉴스데스크는 윤석화씨의 학력 위조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화여대에 윤씨의 학력을 조회했다. 그 결과, 당시에 알려진 윤석화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중퇴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고 보도하기에 이른다.

MBC가 이화여대로부터 공문을 받은 것이 8월 13일이었고, 윤석화씨는 바로 다음 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학력위조를 고백하고 사과했다. 사회적 이슈가 되기 전까지 그리 방문자가 많지 않았던 홈페이지에서 ‘슬쩍’ 사과한 것을 놓고, 한 주요 일간지는 그녀가 MBC의 취재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고 선수를 친 것으로 의심된다고 적었다.

사과의 타이밍과 관련해 그녀의 순수성이 의심받은 이유는 ‘자발적인 사과’라기보다는 언론에 증거가 포착돼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한 사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타’ 내보내면 효과 덜해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만약 여전히 똑같은 타이밍에 사과해야 했다면, 그녀가 언론의 압박에 ‘순수하지 못한’ 타이밍에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점에 대해서도 사과를 했어야 한다. 30여 년 동안 스스로 밝히지 않은 학력위조와 함께 자신의 사과가 언론의 조사가 없었으면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는 점도 사과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홈페이지가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과 만나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과의 타이밍이 빠르고 적절했던 경우다. 사례4 2008년 GS칼텍스 자회사의 직원이 1000만 명이 넘는 고객의 정보를 빼돌린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의혹이 보도된 것이 9월 5일 오전인데 GS칼텍스는 당일 오후 CEO인 나완배 사장이 직접 나서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경위와 대책을 발표했다. 물론 사과도 빼놓지 않았다.

발생한 사건 자체에 대한 GS칼텍스의 책임은 물론 막중하지만 사건 이후 보여준 발 빠른 대응은 언론에서 ‘성의’라고 표현할 정도로 ‘공개 사과의 타이밍’으로 매우 적절했다. 만약 당시 GS칼텍스가 “직원 한 개인의 범죄”라는 이유로 회사 차원에서 리더의 사과를 늦췄다면 여론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이처럼 ‘사과의 시점’을 중심으로 공개적인 사과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빠른 사과가 늦은 사과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첫째,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사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성에 의문이 들며 자칫 성급한 사과로 엉뚱한 보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책임 소재를 가리느라 첫 사과를 늦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경우 먼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책임 여부를 빨리 가려서 추가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셋째, 아무리 적절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발 빠른 사과’라 하더라도 책임 당사자나 리더가 나서지 않고 ‘대타’를 내보내면 사과의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없다.

GS칼텍스 역시 CEO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빠른 타이밍의 효과가 반감됐을 것이다. 리더의 공개사과 타이밍에서 최악의 조건은 무엇일까? 사과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어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순수성을 의심받기 때문이다.

윤석화씨가 학력위조 사건이 불거지기 몇 년 전에 스스로 사과했더라면 상황은 어땠을까? ‘때늦은 사과’였지만, 사과의 타이밍이나 그 효과를 놓고 보면 그나마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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