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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거북이 경제 모델’

눈길 끄는‘거북이 경제 모델’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가 끝난 뒤 거북이가 이렇게 외친다. “내가 이겼다! 더구나 너도 나처럼 등에 집을 짊어졌다면 어떻게 됐겠니?” 적어도 17세기 프랑스 우화작가 장 드 라퐁텐의 해석으로는 그렇다. 세계 경제가 아직은 뚜렷하지 않는 위기의 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면서 유럽인들은 이 거북이처럼 미국인들을 향해 뽐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그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전진한 그들이 이번 마라톤에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다. 물론 미국경제는 이른바 복지국가나 ‘사회주의’로 인한 부담이 적어 항상 출발은 빨랐지만 주저앉는 것도 1등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미국인들은 보호막을 찾기 위해 때로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다.

반면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와 독일인들은 그 등껍질이 장기적인 성공 비결이라고 여긴다. 글로벌 경제의 사나운 폭풍우를 막아주고 사회가 계속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거북이와 토끼의 비유를 인용하는 데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토끼들도 이 대륙 모델을 더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대처 시절 등껍질이 거추장스럽다며 상당 부분 벗겨 버린 영국은 이번 경제위기를 맞아 땅을 치며 후회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이 최근 프랑스 찬가를 썼을 정도다. 월스트리트 저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프랑스와 독일 근로자들이, 심지어 실직자들마저도 여전히 부족함이나 두려움이 없으며 점심 식사를 사 먹고 영화관에 갈 만큼 넉넉한 경제력을 갖춰 품위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경주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 경제의 지붕이자 기둥인 값비싼 보호장치(전 국민 건강보험, 후한 실업수당)에 대한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과의 본질적인 차이는 정부 지출과 부채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수십억 달러였던 지출 규모가 수조 달러로 불어난 요즘 이런 차이는 더더욱 중요하다. “미국인들은 부채를 낭비성 지출로 보는 반면 유럽인들은 투자로 보는 편”이라고 저명한 은행가 펠릭스 로해틴이 말했다.

그는 1970년대 뉴욕시의 파산을 막아줬으며 90년대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정부를 적으로 간주한다.” 미국에서 그 결과는 이번 위기 전부터 뚜렷이 나타났다. 미국 각지에서 정부가 조성한 인프라가 무너져 내렸다.

말 그대로 나라가 붕괴되고 있다”고 로해틴은 최근 저서인 ‘대담한 노력(Bold Endeavors: How Our Government Built America, and Why It Must Rebuild Now)’에서 지적했다. 루이지애나 땅을 사들이고 이리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고 시골에 전기를 넣고 제2차 세계대전 뒤 군인들에게 대학 교육을 제공해준 정부 사업의 정신, 민간 사업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공적 노력이 모두 잊혀진 듯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런 태도, 그리고 그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이나 월스트리트가 어떤 곳인가? ‘사회주의’라는 비난이 난무하면서 고정관념을 바꾸기가 아주 힘들다.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들에겐 유럽인들이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동정하는 척하며 돈을 낭비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려는 사업가들에게 왕창 세금을 매기는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감상주의자들이라는 인식이 지배해 왔다. 여느 커리커처와 마찬가지로 그런 그림은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초점이 빗나갔다. 로해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초점은 ‘투자’다. 유럽인들의 관점대로 정부는 돈을 지출해 유형·무형의 자산을 취득한다. 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회계 원론이나 기업의 기본적인 대차대조표에 가깝다. 국가 차원에서는 고속도로·다리·공군기지·핵원자로 등이 그런 자산에 포함된다.

거기에 엘렉트리시테 드 프랑스 같은 대기업의 정부 지분도 있다. 그 지분은 실제로 일부나 통째로 매각할 수 있다. 값을 따지긴 어렵지만 무형 자산들도 중요하다. 교육수준 높은 국민, 대중의 신뢰를 받으며 일상생활과 상거래 질서를 보장하는 경찰과 법원, 그리고 건강보험, (미국 기준으로는) 후한 실업보험과 복지급여 등이다.

이들은 주식시장이나 경매장에서 가격을 매기지는 못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굳이 기재한다면 선의(善意)라고 분류해야 할까? 경제위기가 오면 이런 요소들이 모두 가동된다. 오늘날 서유럽에서는 대부분 그래 왔다. 따라서 종종 인용되는 예를 들자면 유럽에서 해고되는 사람들은 병이 생기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회질서도 붕괴되지 않는다. 학교는 계속 문을 열고 상거래는 계속된다. 물론 항의 시위는 있지만 세상이 바뀌는 격변의 뚜렷한 기억을 가진 유럽 대륙의 과거 혁명과는 비교가 안 된다.

최근 프랑스에서 근로자들이 회사 사무실을 점거하고 간부들을 인질로 잡았던 ‘경영자 납치(boss-nappings)’가 잇따랐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폐쇄될 게 뻔한 외국인 소유 공장으로부터 돈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행동이었다. 한마디로 시스템 파괴가 아니라 시스템 활용이 목적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는 건전지 광고의 북 치는 토끼에 비유된다. 그는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이라는 미국식 공약을 내세워 2007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국정운영 경험과 그에 따른 책임감으로 인해 옛날 유럽 거북이의 지혜를 존중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국가부채를 국가자산과 비교하라고 이야기할 뿐 아니라 번영의 핵심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도 재고하기 시작했다. 2008년 사르코지는 이른바 국가의 실질적인 부(the real wealth of nations)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이끌어 달라고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 조셉 E 스티글리츠에게 요청했다.

“사르코지는 환경, 소음공해, 그 밖의 모든 생활의 질 문제를 두고 국민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과 GDP 극대화를 둘러싼 압력 간에 갈등이 있다고 느꼈다”고 스티글리츠가 말했다. “서로 모순되는 듯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장을 측정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는 모델 말이다.”

가위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회계 프로젝트를 위해 무형자산을 측정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스티글리츠가 말했다. “하지만 구상 자체는 옳다. 아직은 GDP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척도는 없지만 이 문제를 담론화할 생각이다. 각국 정부는 자산을 통합하지 않고 부채만 보는 잘못된 회계방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돈을 빌리는 게 안 빌리는 것보다 낫다거나 정부의 투자가 모두 현명하게 이뤄진다는 말은 아니다. 대규모 차입이 잘못된 프로젝트에 허투루 쓰였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많은 개도국 사례에서 입증됐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서비스와 안정(무형자산)을 제공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저해하고 나아가 압도하기도 한다.

위기 전 프랑스 정부의 부채가 GDP의 66%를 웃돌고 미국도 같은 수준이었을 때 사르코지를 포함한 지도자들은 그것이 프랑스의 경쟁력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여러 경제학자 특히 안톤 브렌더는 ‘세계화에 직면한 프랑스(France Confronted With Globalization)’ 같은 저서에서 부채를 자산과 비교하면 관점이 크게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바로 2007년까지 프랑스의 정부 부채는 단지 유형자산과 비교해도 수십억 유로나 적었다. 한 프랑스 경제학자가 사석에서 한 말마따나 유럽에서도 어린이 한 명이 부담할 부채 규모를 거론하는 논객이 많다. 그러나 현대 서구사회의 일원으로 그 어린이가 물려받게 될 자산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때때로 자신들이 얼마나 유복한지를 잊곤 한다. “프랑스 실업자의 소득이 세계 대다수 근로자보다 훨씬 더 높다”고 브렌더는 저서에서 말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소비의 문제가 대두된다. 유럽의 국민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너무 느긋해 때로는 놀랍도록 무신경해 보이기도 한다.

두어 달 전 글로벌 경제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듯했을 때 노동자 계급이 주 독자층인 대중지 르 파리지앵은 1면에 ‘여름 휴가를 생각할 때’라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달았다. 그러나 그런 사례를 보는 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기 쉽다. 일자리를 잃어도 소비를 계속하는 유럽 시스템에선 경제가 계속 돌아가며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미국 실업률은 8.9%로 프랑스의 8.3%보다 높다. 많은 미국인은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느낀다. 실업보험은 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유럽보다 늦게 발효돼 일찍 종료된다. 코네티컷대의 한 연구팀은 미국과 다른 선진공업국을 비교한 ‘복지지수(generosity index)’를 산정했다. 미국은 실업급여 항목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의료비의 잠재적인 타격 항목에서도 순위가 한참 뒤로 처져 있다.

증권시장에 연동하는 연금 문제도 있다. 주가가 떨어지면 미국의 실업자들은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에 위협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돈을 안 쓰고 저축하려 한다. 따라서 위기가 더 심화될 위험성이 커진다. 현 상황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낭비가 심하다고 오랫동안 유럽인들을 비판하던 미국인들이 지금은 그들이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고 비난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이미 보호 시스템을 갖추고 은행 규제가 광범위하며 저리 신용을 통한 소비지출 촉진에 덜 의존하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에 거액의 자금을 쏟아 붓는 데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이 미국보다 적다. 특히 유럽은 군대에 그렇게 큰돈을 쓰지 않는다. 미국의 방위비 지출액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다.

1년에 5000억 달러를 웃돈다. 여기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한 주에 25억 달러씩 나가는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지출이 몇몇 주와 기업에는 혜택을 주겠지만 일자리를 잃어도 계속 지출할 수 있는 건강한 소비자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뭐냐고? 실생활에서는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북이에게서 몇 가지 교훈을 배운 뒤 계속 전진하는 토끼가 주제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With RANA FOROOHAR in New York City and STEFAN THEIL in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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