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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쇼크! ‘경제 패닉’은 없다

이중 쇼크! ‘경제 패닉’은 없다

바야흐로 서거 정국이다. 난데없이 북핵 사태까지 터져 그야말로 이중고다. 끝 모를 불황 터널에서 이제야 탈출구를 찾은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 경제지표는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부 후퇴한 지표도 있지만 큰 폭은 아니다. 유사 사례를 겪으면서 만들어진 내성(耐性)의 힘이다. 하지만 일순간 날아오는 카운터 펀치, 즉 돌발변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혼자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마지막 길은 50만 명 추모객이 함께했다.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 일대는 ‘바보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이 물결쳤다. 침통한 얼굴의 노란색 넥타이 부대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여기선 지역주의 망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꿈을 대신 이루려는 듯,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생애 마지막 당부를 손수 지키려는 듯 말이다. 2009년 5월, 우리는 ‘뜨거운’ 초여름을 보내고 있다. 5월23일 서거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 때문이다. 이른바 ‘서거 정국’은 엄숙하다.

이 정국을 보내는 시민의 의식은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노래 ‘상록수’처럼 성숙해 보인다. 그들에게 이념은 이념, 추모는 추모다. 모 시민단체 관계자가 “영결식이 끝나는 오후 3시 이후 밤샘 집회를 하자”고 권유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오늘은) 정치집회 하는 날이 아니다’고 항의할 정도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화다.



주식·환시장에서 ‘서거 충격’ 찾기 어려워


일러스트:강일구·ilgoo@joongang.co.kr
그러나 서거 정국 아래편에선 보혁갈등이 여전히 활개친다. 양쪽의 입씨름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한편에선 “현 정권이 대통령을 죽였다”고 말하고, 반대편에선 “조문할 가치도 없다”고 맞받아친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사회적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져 소비·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정부 정책이 추진력을 잃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일각에선 ‘1980년 대통령 서거 정국’의 사례를 근거로 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후 초래된 사회적 혼란으로 경제성장률이 -1.5%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1965~8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5%다. 서거 쇼크로 한국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의견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보혁갈등은 도를 넘어선 듯하지만 대통령 서거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센터장은 “우리는 1987년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지만 경제 분야엔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며 “대통령 서거는 분명히 정치·사회적으론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하준경(경제학부) 교수도 “한국 경제는 그동안 좌우·노사 대립 등 숱한 사회 갈등을 겪으면서 강한 내성을 쌓았다”며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 사태만 없다면 웬만한 사회 갈등으로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각에서 1980년 서거 정국을 운운하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며 “당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했던 이유는 집권자 공백으로 인한 사회 불안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오일쇼크였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 관련 지표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주식·환시장에선 이른바 ‘서거 충격’을 찾아볼 수 없다. 5월 28일 현재 코스피지수는 1392.17.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하루 전인 5월 22일(1403.75)보다 불과 11.58포인트 하락했다. 원화가치도 같은 기간 1264.14원에서 1278.89원으로 14.75원 떨어졌을 뿐이다. CJ 김경원 전략총괄 부사장은 “서거 정국에서 주가와 원화가치가 소폭 하락했지만 이는 일시적 쇼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마저도 노 전 대통령 서거에서 기인한 하락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5월 25일 실시된 북한 핵실험의 영향’ ‘자연스러운 조정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종우 센터장은 “정부의 금리인하 정책으로 시중 부동자금이 주식시장에 유입되거나 주변에 머물면서 증시를 이끌어왔다”며 “이에 따라 주가가 부양됐는데, 이제는 벅찰 때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의 기초 체력이 때마침 고갈되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이다. 대외 신인도를 보여주는 지표물 CDS프리미엄도 ‘서거 영향권’ 밖에 있다. 5월 26일 현재 CDS프리미엄은 148bp(1bp=0.01%). 3월 말 328bp보다 무려 180bp 하락했다. 연중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해 10월 27일 699bp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각종 경제 지표로는 연결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갈등과 반목으로 정치·사회가 불안하면 끝 모를 불황터널에서 이제야 비상구를 발견한 한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추도 물결이 엄숙하게 흐르는 서거 정국이 하릴없고 냉혹한 정쟁판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혁갈등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만큼 중요한 문제는 둘째 쇼크 ‘북핵 정국’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5월 23일)와 북한 핵실험(5월 25일)이 미묘하게 연결되면서 한국 경제가 내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부) 교수는 “북핵은 현재로선 쇼크 수준도 안 된다”며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

2002년 2차 북핵 위기, 2006년 핵실험 등 북한발 초특급 악재를 겪으면서 생긴 내성과 그간의 학습효과 덕분에 한국 경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주식시장의 흐름은 이를 잘 보여준다. 5월 28일 한미연합사령부는 대북정보 감시태세(워치콘·Watchcon)를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

워치콘2는 ‘적 도발징후의 현저한 증가로 대비할 필요가 있을 때’ 발령한다. 그럼에도 이날 주가는 전일 대비 30.15포인트 오른 1392.17로 마감했다. 원화가치도 1282.25원에서 1278.25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북핵을 통제 불가능한 사태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 살펴봐야

하지만 북핵 위기에도 끄덕하지 않는 경제 지표가 안전한 미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구체적 타격 또는 서해교전을 능가하는 국지 도발이 감행된다면 대한민국호(號)의 추진동력이 일시에 멈출 수 있다. 가뜩이나 지금은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전격 결정하고, 유엔안보리가 대북제재를 논의하는 시기다.

‘과거처럼 북한의 핵실험을 마냥 상존하고, 때만 되면 사라지는 위기쯤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북핵 불감증도 경계요소라는 것이다.

서거 정국에 북핵 위기까지 터졌지만 한국 경제엔 별다른 영향이 없다. 경제 패닉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사회갈등·북핵 위기에 대한 내성이 쌓였더라도 돌발변수를 살피는 치밀함이 필요할 때다. 제아무리 맷집 좋은 선수도 불시에 날아오는 카운터 펀치를 조심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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