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밭에 미친 180억짜리‘아이디어 맨’
청보리밭에 미친 180억짜리‘아이디어 맨’
5월도회지 가로수의 신록도 싱그럽지만 널따란 들판의 초록과는 견줄 게 못 된다. 초록도 초록 나름이라고, 해마다 수십 만 인파가 찾는 고창 청보리밭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노령산맥 끝자락인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일대 100만㎡(30만 평)에 펼쳐진 보리밭 풍경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그래 맞다. 컴퓨터를 켜면 모니터 바탕화면에 등장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바로 그 ‘초원’이다. “이곳 보리밭 풍경을 누가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게 그렇게 널리 퍼졌어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코리아 브랜드’입니다. 요즘 강조하는 녹색성장의 대표주자가 될 만하지 않습니까.”
첫 마디부터 예사 공무원 같지 않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가락과 적당히 섞인 사투리가 구성지다. ‘미스터 청보리’로 통하는 김가성(50) 고창군 고창마케팅팀 유통판매촉진담당. 그는 친구들에게 괴짜로 불린다. 개인 e메일 닉네임이 ‘별난생각’이다. 어려서부터 엉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생뚱맞지만, 이를 구체화시키고 실천하는 게 그의 장점이다. 올해로 6번째, 지역 축제의 대명사가 된 청보리밭 축제도 이런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2002년 6월 월드컵 경기를 보던 그는 갑자기 어릴 적 보리밭 사잇길을 걷던 생각, 거기서 친구들과 뒹굴던 생각이 났다.
그냥 선수들과 함께 축구장에 뛰어들고 싶었다. 그때 머리가 번쩍했다.“그래! 우리 고향 보리밭에서 축제를 벌이는 거야.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일대 보리밭은 개인 농장이다. 그는 청보리밭 축제 아이디어를 들고 농장 주인을 찾아갔다.
하지만 소박한 전원 생활을 꿈꾸던 농장 주인은 묵묵부답이었다. 십고초려(十顧草廬) 끝에 허락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군청 내부 결재가 문제였다. 다들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래도 기획안부터 빈틈없이 만들었다. 지구촌의 팜 스테이(farm stay)와 그린 투어리즘(green tourism) 자료를 수집했다. 휴일이면 자기 돈으로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를 답사해 성공담과 실패 사례를 모았다.
하루 보리밥 열 그릇 먹으며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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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마저 “이런다고 월급이 더 나오느냐”며 말렸다. 군청에서 나온 축제 예산은 겨우 3000만 원. 축제 홍보를 위한 ‘뇌물’로 집에서 복분자주를 담갔다.
투박한 페트병에 담아 들고 여행 작가, 방송 작가, PD 등을 찾아가 부탁했다. “축제 첫날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너 땜에 농사 못 짓겠다’며 막 항의하는 거예요. 좁은 길로 도회지에서 차들이 몰려오자 경운기와 트랙터가 못 간다면서 말이죠. 첫날 준비한 보리밥 5000그릇이 동이 났어요. 그날 저녁 펑펑 울었습니다.”
축제 초기 김가성 담당은 손님을 접대하느라 하루에 보리밥을 열 그릇 먹은 적도 있다. 다행히 보리밥이 소화가 잘돼 탈이 없었다. 하도 자주 손님을 모시고 나타나자 식당 주인이 그에게는 특별히 보리밥을 조금 담은 그릇을 갖다 주었다.
“보리 개떡을 만들어 팔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그걸 누가 사 먹겠느냐’며 안 한다는 거예요. 겨우 설득해 만들도록 했는데 인기가 대단해요. 어른은 가난을 추억하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체험을 주는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산 좋고 물 맑은 이곳에 보리가 피고 익는 4~5월에만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니다.
가을에는 메밀을 심는데,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9월의 풍경이 장관이다. 올 봄에는 56만 명이 다녀갔다. 정부는 2004년 고창 일대 684만㎡를 경관농업특구로 지정했다.
“전국에 비슷비슷한 축제가 많잖아요. 그런데 특색이 없는 게 문제예요. 우리 청보리밭 축제는 우선 그림이 되잖아요. 그 다음 스토리가 있어 추억과 향수를 자극합니다.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도 있고. 이렇게 오감을 만족시켜주니까 사람들이 찾는 겁니다. 저 보리밭을 농작물로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두 배 이상 소득은 힘들어요. 그런데 관광자원으로 보니까 몇백 배 수익이 가능하잖아요.”
청보리밭 축제의 기본 개념은 ‘추억과 향수’다. 사람들은 보리밥을 먹으며, 아이들과 함께 보리를 구워 먹으며, 절구통에 보리방아를 찧으며, 원두막에 앉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리밭을 바라보며 향수에 빠져든다. 그런가 하면 관람객 10명 중 한 명꼴로 어릴 적 가난에 맺힌 한 때문에 보리밥에는 절대 손도 대지 않는다고.
최진희 노래 ‘청보리밭’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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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음면 일대 청보리밭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가 인기다. 가족들이 함께 어울려 연을 날리거나 복분자 와인을 직접 만들어 마신다. 또 보리를 이용해 다이어트 인절미와 쿠키, 추억의 보리 개떡을 만들어 먹고 화석과 공룡도 만들어 본다.
1회 청보리밭 축제 때 작곡가 임종수가 당시 공음면사무소 산업계 직원 김가성을 찾아왔다. “청보리란 말이 너무 아름답다”는 그는 자청해서 노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온 가요가 최진희 노래 ‘청보리밭’(고창 출신 택시기사 홍광범 작사)이다. 고창군은 청보리밭 축제의 성공으로 ‘청정 고창’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었다.
고창 보리는 1㎏에 2500원(인기 상품 청보리사랑 기준, 20㎏ 환산 5만 원)으로 쌀(대개 20㎏들이 한 포대에 4만2000원 선)보다 비싼 데도 없어 못 팔 정도다. 지난해 CJ는 해찬들 재래식 보리된장에 100% 고창 보리를 쓰기로 고창군과 협약을 맺은 뒤 보리 70톤을 사갔다. 청보리밭 축제는 연관 산업을 하나 둘 새끼치고 있다.
고창군과 인근 정읍시, 김제시, 부안군 등 4개 시군과 대학, 연구소, 민간업체들이 연합해 청보리녹색산업클러스터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낙우회와 한우회가 함께 청보리 조사료를, 한우물 영농법인은 보리 새싹에서 차와 즙을 생산한다. 찰보리(대두식품), 찰보리쌀(영농법인 우리농촌, 청맥)에 이어 청보리자장면(취영루), 청보리쿠키(엄지식품)도 선보인다.
“복분자는 우리 고창이 원조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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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주의 특성을 설명한 전단지 1만2000부를 들고서. 서울에서 사업하는 친구에게 직원 세 명만 붙여 달라고 해 넷이서 3000부씩 나눠 지하철에서 승객들에게 나눠줬다.
“같이 간 사람들은 하루에 3000부를 다 돌렸는데, 전 1000부밖에 못 했어요. 학생과 노인들은 빼고, 복분자주를 사 먹을 사람들에만 돌리다 보니. 그것을 본 서울 사는 누나가 ‘공무원도 이런 것 팔라고 하느냐’고 묻더니만 집에 전화를 걸었더래요. ‘가성이 공무원 그만두고 복분자 술 공장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청보리밭 축제를 성공시킨 이듬해인 2005년에 그는 ‘복분자’란 명칭의 독점적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한 상표등록을 특허청에 냈다. ‘산딸기’나 ‘뽕’처럼 ‘복분자’도 영화 제목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그 사용권을 선점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꼭 영화를 찍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복분자 재배가 이웃 정읍과 순창, 전남 무안과 함평 등지로 자꾸 퍼지는 것을 보고 복분자 원조 고창 제품을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신문과 방송에서 기사를 써주더라고요. 큰 홍보 효과를 본 셈이죠.”
그는 2006년 복분자 가루를 섞어 냉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를 소나무식품에서 받아 복분자 가루가 11.6% 들어가는 냉면을 만들어 판다. “흔히 칡냉면에 칡이 5% 들어간다”며 “복분자냉면에는 기능성 원료가 두 배 이상 많다”고 자랑한다. 김가성의 복분자 사랑은 올 4월 복분자 분말과 정제로 이어졌다. 고창웰빙영농조합이 그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한 것이다.
분말은 100% 복분자 원액을 건조 냉동시켜 부순 것으로 요구르트 등에 타 먹으면 좋다. 알약으로 만든 정제는 그냥 씹어 먹으면 된다.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기 위한 상담을 진행 중이다. 김가성 담당은 요즘 고창의 특산물 중 하나인 수박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몰두하고 있다. 수박의 경우 작황이 좋으면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한 채 갈아엎기 일쑤다.
게다가 크기가 큰데다 장기간 보관하기도 어려운 수박에서 생약을 추출하거나 음료수를 만드는 방안을 찾고 있다. 고창을 알리자는 끝없는 열정은 그를 작사가로 데뷔하게 이끌었다.
고창의 특산물인 복분자를 알리는 ‘선연(禪然=선운사의 禪+자연의 然)’ 브랜드의 노랫말을 김 담당이 지었다. 작곡은 김기범 씨가 맡았고, 노래는 김령이 부른다. 김 담당은 ‘고창 복분자 러브 스토리’를 공모해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이야기가 있는 복분자로 마케팅을 하자는 전략이다.
두 번이나 ‘좌천 인사’ 자원
김 담당은 별난 공무원이다. 승진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원한다. 그래서 스스로 ‘좌천 인사’를 두 차례 자원했다. 첫 번째 좌천 인사는 2003년 7월 청보리밭 축제를 하기 위해 공음면사무소 근무를 자원했을 때다. 공무원 김가성의 사업 감각은 탁월하다. 이강수 고창군수가 “민간 기업이라면 사장감인데 공무원 사회라서 계장”이라고 칭찬할 정도다.
청보리밭 축제를 성공시킨 김가성은 2006년 초 선운산유스호스텔 소장으로 부임해 3억80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이익 증가율 48%. 도자기 만들기와 갯벌 체험 등 체험형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 덕분이다.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전국 여행사와 학교를 찾아다니며 마케팅을 펼친 게 효과를 보았다.
이렇게 잘나가던 그는 두 번째 좌천 인사를 자청했다. 50억 원짜리 국책사업 방장산 용추골 종합개발사업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군청 문화관광과 소속 선운산유스호스텔 소장에서 다시 면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용추골 개발사업의 핵심인 전통예절학교는 신림면사무소 산업계장 김가성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고창이 낳은 한학자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위패를 모신 도동사의 맥을 잇고 어린 학생들에게 충곂퓖예 정신을 가르치자며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에 들어가면 남학생은 상투를 틀고 망건과 갓을 쓰며, 여학생은 색동저고리를 차려 입는다. 전통예절 교육을 받는 한편 땅뺏기와 대강살이 등 전통놀이와 용추계곡에서 가재잡이로 하루를 보낸다.
체험관광마을을 추진하면서 그는 이곳 가평마을을 ‘박사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근처 산봉우리 이름도 노적봉에서 문필봉(文筆峰)으로 바꿨다. 브랜드 네이밍(Brand Naming)의 한 방식이다. 그는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생각으로 창의적으로 일하면 공무원만큼 재미나고 의욕 넘치는 직업도 없다고 강조한다.
대신 민원인 자리는 꽃자리보다 훨씬 높고 귀한 ‘황금색’ 방석을 깔고 모시는 자세로 일하라고 주문한다. 그 자신이 시장에서 황금방석을 사다가 민원인용 의자에 올려놓고 일한다. 김 담당이 99년 신림면사무소 병사계에서 근무할 때다. 하루는 손을 못 쓰는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아들이 둘인데 하나는 반신불수로 누워 있고, 집안 살림을 꾸리던 아들은 입대해 살 길이 막막하다는 하소연이었다.
법적으로 어쩌기 힘든 상황이지만 자꾸 눈에 밟혀 일을 할 수 없었다. 사흘에 걸쳐 퇴근한 뒤 집에서 그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장에게 편지를 썼다. 옆에서 보던 부인이 눈시울을 적실 정도로 사연이 눈물겨웠다. 며칠 뒤 면사무소로 그 아들이 찾아와 큰소리로 거수 경례를 했다. “충성! 이병 김OO, OO일자로 제대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청보리밭 축제의 착안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의 뒷얘기와 고창 특산물을 상품화하면서 겪은 사연을 모아 책 <180억 공무원>을 펴냈다. 자신처럼 ‘잘난 게 없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공무원 한 명이 대한민국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법원서도 강의 요청하는 스타 강사
180억 공무원 김가성은 스타 강사다.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부처와 교육청, 법원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별 거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들려면 팍 미치든지, 푹 빠지든지 해야 돼요. 뭐든지 그 속에 젖어 있어야 이뤄져요. 공무원도 스스로 전문성을 쌓으면 인정도 받고 하는 일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그는 누구든지 기업가처럼 수익을 내는 공무원, 세일즈맨처럼 물건을 개발해 파는 공무원, 지역과 담당 부서의 일을 누구보다 진솔하게 알리는 홍보맨 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고창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를 나온 뒤 농사를 짓고 회사를 다니다가 말단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가성 담당.
그도 처음에는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던 보통 공무원이었다. 그러다 우직하게 농사만 짓던 한 농민이 농산물 가격 폭락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생각을 바꿨다. 내 고향 이웃의 소득 증대를 위해 뭔가 찾아보자고. 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전문 대학에서 사무자동화를 공부했다. 남들처럼 화려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아이디어와 추진력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통합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가장 시골적인 것이 국내에서 통합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 에 왜 300만이 넘는 관객이 들었겠어요? 토담 아래 봉숭아와 채송화를 심고, 감나무에 감이 열리는 정감 어린 시골집을 보존하면 사람들이 찾아와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쉬고 놀다 가지 않겠어요.”
USB에 고창의 모든 것과 자신이 하는 일을 담아 갖고 다니는 공무원 김가성. 그의 마케팅 목표는 이제 대~한민국이 아닌 지구촌이다. 그는 오늘도 어떤 방법으로 고창을 세계에 알릴지 고민하며 뛰어 다닌다. 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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