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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뒷골목 이야기

인도의 뒷골목 이야기

날카로운 재치가 돋보이는 아라빈드 아디가(34)의 신작 ‘암살(Between the Assassinations)’의 가상도시 인도 키투르는 셔우드 앤더슨의 20세기 고전소설 ‘와인스버그, 오하이오’처럼 세상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로 가득하다. 인물들은 중첩되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싸우고 사랑하며 좌충우돌한다.

인도 작가 아라빈드 아디가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처녀작 ‘화이트 타이거(The White Tiger)’로 2008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맨 부커상(Man Booker Prizer)을 받았다. 신작 ‘암살’에선 처녀작을 관통했던 거침없고 적나라한 문체가 더욱 강렬해졌다.

키투르의 모델이 됐던 인도 망갈로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컬럼비아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아디가는 아웃사이더의 날카로운 눈을 가진 인사이더로서 부패와 연고주의·불평등·무관심 등 인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한편 성공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전작 ‘화이트 타이거’가 계급제도 밑바닥에 위치한 약삭빠른 운전사의 부패와 폭력을 통한 현대판 신분상승을 다루었다면, ‘암살’은 그 앞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화 인터뷰에서 아디가는 책의 시대적 배경을 “구시대가 종말을 고했어야 했던” 1984년 인디라 간디 암살부터 인도 경제가 꽃피기 시작한 1991년,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가 암살당할 때까지라고 설명했다. ‘화이트 타이거’의 화자 발람 할와이가 처세에 능했던 반면, ‘암살’ 속 인물들은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막연히 상황은 개선된다고 생각만 할 뿐, 어떻게 행동할지를 모른다. “‘화이트 타이거’의 등장인물은 불법을 자행해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그러나 ‘암살’에서는 규칙 위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아디가가 말했다. 한 이야기에서는 눈이 멀어가는 여공을 바라보며 괴로워하지만 끝내 옷 공장을 닫지 못하는 무슬림 공장주가 등장한다.

“누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겠는가? 칼을 들고 부두를 어슬렁거리거나 자동차 밀수나 할 텐데. 어차피 여공들은 다른 데 가서도 같은 일을 할게 뻔하다”고 등장인물은 되뇐다. 다른 이야기 ‘우산의 거리’에선 절망에 빠진 가구 배달원이 돈을 훔치거나 지역 정치인의 환심을 사서 뼈 빠지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하지만 이를 실행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같은 시기에 쓰였지만 ‘암살’은 ‘화이트 타이거’만큼 문학적 무게와 완성도를 갖추지는 못했다. 한 사람과 진지하게 주고받는 깊은 대화보다는 칵테일 파티에서 사람들과 잠깐씩 나누는 흥미로운 잡담에 가깝다. 그러나 ‘암살’은 종교(이슬람교·힌두교·기독교)와 빈부격차·세대·카스트를 뛰어넘는 다양한 인물의 시각을 통해 인도의 모습을 훨씬 다채롭고 섬세하게 포착한다.

도시 지도와 기본 정보를 알려주는 통계, 키투르를 상세하게 설명해 마치 키투르 도보 여행을 위한 안내책자 같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다양한 카스트 계급에 개방된 자신의 예수회 학교를 폭파하고 아이스크림을 배 터지게 먹는 소년, 마약중독자 아버지에게 헤로인을 사주려고 구걸하는 어린 소녀, 저녁식사에 초대된 손님 딸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불임 여성 등, 가슴 아프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뒤범벅이 된 복잡한 인도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저널리스트인 아디가는 인도 현대소설과 담화에서 다양한 시각이 실종됐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중산층의 부상 이면에서 아직도 많은 인도인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인다. “창조적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국 행위는 조국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아디가는 말했다.

‘화이트 타이거’는 출판 당시 인도에서 신랄한 혹평을 받았다. 아디가가 2006년 인도 출판사에 보낸 ‘암살’ 원고에는 ‘우산의 거리’와 버스 차장으로 취직한 이주 노동자 이야기 ‘시장과 광장’이 빠져 있다.

주인공의 카스트 계급이 낮아서 논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암살’이 인도에서 출간된 이유는 그가 부커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디가가 보여주는 인도의 모습이 인도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계속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인도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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