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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땀과 노력을 믿습니다

자전거는 땀과 노력을 믿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양재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있는 강방천 회장.

평소 자신을 자전거 레이서로 소개하는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 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은 자전거를 벗삼아 전국을 여행한 얘기를 담은 수필집이다.

최근 김 씨처럼 자전거 매력에 푹 빠져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얘기하는 CEO가 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자열 LS전선 회장. 올해 3월에는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직을 맡았다. 적임자가 맡았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그의 자전거 사랑은 마니아 수준이다.

구 회장은 2002년 자전거로 해발 3000m 이상 알프스산맥을 넘는 트랜스 알프스 대회에 도전한 일화로 유명하다. 7박8일 동안 650km를 달려야 하는 코스에 절벽길이 많아 기권자가 속출했지만 그는 타고난 근성으로 완주했다.

구 회장이 속한 커뮤니티도 유명하다. 그는 KT의 정태수 서비스개발본부장이 1997년에 만든 ‘사이클로’ 멤버다. 현재 구 회장 외에 가수 김창완, 민병윤 계림공영 CEO, 건축가 한만원, 윤상민 이비인후과 원장, 엄익태 성형외과 원장 등 35명이 활동한다.

이방희 삼익가구 사장은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전국 여러 곳을 달리며 카메라로 세상 풍경을 담기 위해서다. 2006년에는 10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찍은 사진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스포츠광인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사이클 마니아다. 모두 철인 3종(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사이클 운동을 한다.

특히 격한 운동을 즐기는 정몽규 회장은 산악자전거(MTB)를 즐겨 탄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99년 변호사 시절부터 자전거를 탔다. 시장 취임 뒤에도 주말이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호반을 돌고 온다. 그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자연의 소중함이 환경 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금융 업계 자전거 마니아로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강 회장은 95년 제도권 펀드매니저를 그만두면서 1억 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정확히 1년 10개월 만에 156억 원을 벌어 지금까지도 증권가에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그는 99년 이 자금을 종자돈으로 에셋플러스 투자자문을 설립했고, 지난해 자산운용사로 전환했다.

현재 운용사 최초로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지명도를 높이고 있다. 5월 14일 오후 6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인근 양재천에 나타난 강 회장의 모습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넥타이를 풀고 검은색 슈트 대신 온몸에 착 달라붙는 스펀덱스 운동복 차림에 빨간색 헬멧과 장갑까지 낀 강 회장은 영락없는 산악자전거 선수였다.

그가 자전거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4년 말 용인에서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이사 오면서부터다. 당시 강 회장은 저녁 식사 후 양재천에 잠시 바람 쐬러 나왔다가 양재천을 따라 잘 조성된 자전거 도로를 보게 됐다. 이 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날에 20만 원대의 생활형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에 점차 자신감이 붙자 MTB에 욕심이 생겼다. MTB는 울퉁불퉁한 길부터 험난한 산 속까지 시원스럽게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때 아내가 미국 수입 브랜드인 산타크루스 MTB를 선물로 사줬다. 아내도 그의 취미 생활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자전거 가격은 약 700만 원. 기자가 자전거 가격에 놀라자 강 회장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므로 비싼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자전거를 평생 취미 생활로 생각하고 있어요. 평생 저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한 투자니 낭비라고 할 수 없죠.”

강 회장이 자전거를 취미 생활로 선택한 이유에는 골프 탓도 있다. “5년 전엔가 골프를 끝낸 후 사우나에 갔는데 나이 드신 분들의 공통점이 눈에 띄더군요. 허벅지는 얇은데 배만 불룩하게 나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늙진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골프 말고 하체 강화에 좋은 운동을 찾던 중 자전거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자전거는 주로 주말에 탄다. 주중에도 저녁 약속이 없으면 자전거를 끌고 양재천으로 나온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집 근처 우면산, 남산, 대모산 등을 자전거로 오른다. 보통 60km 거리로 4~5시간이 걸린다. 한강변을 따라 미사리로 가거나 분당 율동공원 산책길은 강 회장이 좋아하는 코스다.

강 회장이 생각하는 자전거의 매력은 뭘까. 그는 “자전거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소통 도구”라고 말했다. “시속 80km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풍경 감상하기 바쁘죠. 속도 때문에 눈앞에서 바로 사라지기 때문이죠. 반면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 빠르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강, 나무, 산책하는 연인의 모습을 눈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자연을 즐길 여유가 있죠.”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길을 달릴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MTB를 타면서 걸어 다니기에도 벅찬 산길을 오르내리며 짜릿한 스릴을 느끼고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죠.” 강 회장이 자전거를 탈 때 꼭 챙기는 게 헬멧과 배낭이다. 헬멧은 갑자기 펑크가 나거나 사람을 피하다 넘어질 경우 머리를 보호해준다.

배낭 속에는 얼린 고구마와 홍시, 그리고 중급 중국어 회화 책이 있다. “주말에 5~6시간 라이딩을 하면 금방 출출해지죠. 산속을 오르다 보면 고구마와 홍시가 먹기 좋을 만큼 녹아있어요. 출출할 때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웃음)” 중국어 회화 책은 그늘에서 잠시 쉴 때 꺼내 본다.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면서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회사 운영이나 펀드 투자설명회로 바쁘기 때문에 여유롭게 자전거를 탈 때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다. 강 회장은 자전거로 건강은 물론 자기 계발까지 1석2조 효과를 내고 있다. 금융계 CEO답게 자전거를 타면서 투자 기회도 찾았다. 그는 국내 자전거 산업을 효용, 인프라 등 투자 관점에서 살펴봤다.

사업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선 효용가치가 높아야 한다. “실제로 타보니까 자전거 도로가 상상외로 좋더군요. 꽉 막힌 빌딩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는 웰빙 운동이 되겠다 싶었죠. 실제로 점차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었고요.”인프라 측면에서도 기대가 높다. 강 회장은 자전거 산업의 성장 속도가 인터넷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될 때는 군사용이었다가 대학, 각 지역으로 점차 넓혀지면서 전국에 인터넷 망이 깔렸잖아요. 앞으로 시겚?지역별로 조성되는 자전거 도로가 전국으로 연결될 때는 자전거 산업도 폭발적으로 커질 겁니다.”자전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한 강 회장은 2006년 무렵 삼천리자전거에 투자했다.

당시 주가는 2000원대에 불과했다. 5월 15일 종가 기준 삼천리자전거의 주가는 3만4500원에 달한다. 중간에 팔기는 했지만 상당한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강 회장의 자전거 사랑은 경영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난해 8월에는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며 투자자를 만나는 무료 설명회를 개최했다. 2006년에는 30명 전 직원에게 100만 원 상당의 MTB를 선물로 줬다. 자전거만큼 좋은 스포츠가 없다는 게 강 회장의 생각이다. 이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평소 고마운 분이나 지인에게 선물을 할 때는 망설임 없이 자전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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