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로 돌아선 아방가르드 밴드
미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대표하는 소닉 언더그라운드의 서스턴 무어는 1992년 어느 일요일 밤 MTV의 한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다(당시는 MTV가 대학 중퇴생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포르노 쇼 같은 프로보다 뮤직 비디오를 더 많이 방영할 때였다). MTV ‘얼터너티브’ 음악 코너의 초청 진행자로 나선 무어는 이전에 보지 못한 이상한 방향으로 프로를 이끌고 나갔다.
스스로 ‘패배자’라고 외쳤던 싱어송 라이터 벡과 즉흥적으로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가 하면 일본 노이즈 뮤직(전자 악기의 잡음을 도입한 록 음악)의 대표주자 마소나의 뮤직 비디오(VHS 녹화 테이프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를 틀기도 했다. 상업성을 추구하는 MTV가 주류와 거리가 먼 이런 식의 진행을 허용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무어가 이끄는 밴드 소닉 유스의 성공 가능성을 누군가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룹 너바나를 독려해 데이비드 게펜의 대형 음반사와 계약을 맺도록 한 장본인이 바로 소닉 유스였다. 너바나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 그룹의 리더 커트 코베인은 소닉 유스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리며 그들을 칭송했다.
그러자 너바나가 왜 인기를 끄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던 음반업계의 거물들이 소닉 유스를 적극적으로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닉 유스의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고 멤버들을 MTV에 출연시켰다.하지만 이 사업 계획은 실패했다. 기묘한 기타 선율과 복잡한 리듬, 반항적이고 과격한 네오비트 풍의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소닉 유스의 앨범들은 50만 장 판매를 달성한 적이 없다.
30만 장 이상이 팔린 ‘Dirty’(1993)가 그나마 제일 나은 편이었다(이 시기는 사람들이 레코드를 가장 많이 사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소닉 유스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미 의회 도서관에서도 이 그룹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도서관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미국 음악 부문 소장용으로 1988년 발표된 대표적 앨범 ‘Daydream Nation’을 사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닉 유스의 장수 비결은 큰 히트곡을 내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인디 음악 부문에서는 큰 히트곡을 낸 가수나 그룹이 장수한 예가 없다. 왜곡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소닉 유스의 최신 앨범 ‘The Eternal’은 이 그룹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인디 음반사(마타도르 레코드)를 통해 낸 음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은 아니다. 소닉 유스는 게펜 레코드에서 출반한 이전의 세 앨범으로 록 음악계 30년 존속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기 때문에 작품성에서 재탄생을 추구할 필요는 없었다. 인디 음반사를 통한 앨범 발표는 음반 판매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 상업 음악 모델의 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닉 유스가 인디 음반업계로 돌아갔다면 소닉 유스의 손실이라기보다 주류 음반업계의 손실이다. 음반업계에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컴백 음반 판매가 줄어드는 데 신경을 쓰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예술 음악이 주류 음악계를 기피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걱정해야 한다.
이런 현상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현대 작곡가들과 공연 음악가들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가 점점 더 쉬워진다. 실험 음악은 오래전부터 그 음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돼 왔다. 하지만 요즘 아방가르드 예술을 비웃는 주체는 기성 세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곧 개봉될 인디 코미디 영화 ‘언타이틀드(Untitled)’의 언론 홍보 자료에서는 이 작품을 “현대 예술과 아방가르드 음악을 비트는 짓궂은 풍자”로 소개했다(인디 영화계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다니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닌가?). 우리는 스티븐 콜베어가 방송에서 지식인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최근 콜베어는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퓰리처상을 받은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소닉 유스가 그의 작품을 녹음하기도 했다)와 존 존(맥아더상을 받은 아방가르드 재즈 작곡가로 가끔 무어와 함께 즉흥 연주를 한다)을 조롱했다. 그들의 작품에서 가장 귀에 거슬리는 부분을 골라 들려주며 “이야말로 진정한 헤드 뱅어(head-banger:충동적인 정신이상자) 음악”이라고 말했다.
콜베어는 라이히의 한 작품을 두고 “이 곡은 피아노에 머리를 부딪친 사람이 쓴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콜베어가 러시 림보(극우 보수파 라디오 진행자)나 빌 오라일리(폭스 뉴스를 진행하는 우파 정치평론가)를 풍자했을 때와는 달랐다.
그럴 때 시청자들은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웃었겠지만 이번엔 단지 이상한 음악이 우스꽝스럽게 들렸기 때문에 웃었다. 이런 식의 조롱은 ‘진지한 현대 음악은 들어주기 힘든 쓰레기라는 편견’을 더 키워준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소닉 유스는 명성을 위한 명성을 추구한 적은 없지만 대중문화를 재창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펑크 록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관해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처음엔 많은 팬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밴드를 결성했다.” 소닉 유스가 팬들에게 미친 영향도 이와 유사하다. 소닉 유스의 음악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악적 이해의 폭이 몰라보게 넓어진다.
즉흥 재즈 연주와 현대 클래식 음악의 ‘비전통적인 연주 기법’ 등 변칙적인 음악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소닉 유스는 자신들이 가진 영향력을 이용해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홍보해 왔다. ‘The Eternal’ 앨범에 실린 음악 중 두 곡은 시인 그레고리 코르소와 그룹 점스(The Germs)의 싱어 다비 크래시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소닉 유스의 스튜디오나 멤버들의 집에 가면 미술관 연주회 관련 서적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들의 LP와 CD들을 접하게 된다. 또 일본 노이즈 뮤지션의 이름을 딴 애완견(무어와 그의 밴드 동료이자 부인인 킴 고든이 기르는 호주산 셰퍼드 메르츠바우)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소닉 유스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앨범 끝 부분에 가면 대중음악에 두는 약간의 미련이 엿보인다. 대중음악의 가장자리에 존재함으로써 그 문화를 재편하고자 하는 희미한 욕망이다. 그룹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 리 레이날도는 차를 마시면서 최근 자신과 부인이 다른 10여 명의 사람과 함께 달라이 라마와 점심식사를 했을 때의 이야기를 했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땐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레이날도 옆에 앉았던 손님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고 그 대답을 듣더니 “그룹 이름은 알지만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소닉 유스의 멤버들은 종종 이런 양날의 칼 같은 말로 상처를 받곤 한다.
이름은 들어봤다니 칭찬 같기도 하지만 음악은 모른다니 가슴 아픈 일 아닌가? 싱어 겸 기타리스트 고든은 올해로 밴드 결성 28주년을 맞은 소닉 유스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닉 유스는 주류 음악계에서의 활동이 점차 줄어드는 대신 다른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
이 그룹은 최근 안무가 머스 커닝햄의 90회 생일 기념 작품에 참여해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BAM)에서 성황리에 첫 공연을 마쳤다. 또 2주 뒤에는 세 명의 멤버가 전 세계의 노이즈 뮤직 팬들이 모이는 ‘No Fun Fest’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올봄 칠레에서 열린 소닉 유스의 콘서트에는 8000명의 팬이 모였다.
이 그룹이 큰 히트곡을 낸 적은 없지만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Anti-Orgasm’ 등 신곡에서는 남성적인 비브라토 창법이 인상적인 주 멜로디 다음에 추상적인 기타 연주와 변형된 교회 종소리의 조화되지 않는 울림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50대의 멤버들이 이렇게 재미있고 활기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미국인들 중에 이런 좋은 음반에 몇 달러를 기꺼이 쓸 사람이 50만 명도 안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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