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 원’ 10년… 지금은 Mother 경영
‘독종 원’ 10년… 지금은 Mother 경영
“얼굴들 좋아졌네. 경원, 승진, 인규, 정은, 세원, 정완, 혜준 전부 멋있어졌어. 코리안리 물이 좋은가 봐.”
“대학생들 사이에 취업뽀개기란 사이트가 유명해요. 어떤 학생이 산업은행과 코리안리의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했는데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어요. 거기에 ‘김태희랑 사귈래, 한가인이랑 사귈래 묻는 거와 같은 질문’이란 댓글이 붙었더라고요. 워크숍 때 스키장에서 사장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취업을 준비하면서 코리안리가 신이 내린 직장이란 제목의 기사를 봤어요. 꼭 입사하고 싶어 무릎이 까지도록 축구를 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일도 많고 야근도 자주 합니다.”
“그러면 여자 친구가 싫어하겠네.”
“그래서 주말마다 만나 달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멘토 박종원 사장의 직원 사랑은 유별나다. 신입사원들과 함께 난타 공연과 뮤지컬 <드림걸즈> 를 관람했다. 직원들과 자주 식사를 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박 사장은 200여 명 직원 개개인의 이름과 얼굴은 물론 사귀는 여자겞꼭?친구에 대해서도 안다.
전직 노조위원장도 퇴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재정경제부 공보관(이사관)을 박차고 나와 대한재보험 사장으로 옮겼을 때 자본금 470억 원의 회사는 결손이 2400억 원이나 됐다. 사실상 망한 회사였다. 부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조조정을 왜 합니까? 비용도 절감해야겠지만 기업문화를 확 바꿔야 합니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경기 탓도 있지만 사람 때문이에요. 육체를 정신이 지배하듯 기업도 구성원의 자세, 즉 기업문화가 지배하는 겁니다. 여기 와보니 다들 현실에 안주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에 푹 빠져 있더라고요. 그러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밖에요.”
박 사장은 악화를 철저하게 도려내기로 작정했다. 98년 7월 부임한 뒤 두 달 만에 직원 320명 중 3분의 1을 정리했다. 근무 평점 60%, 위겲틔?직원의 다면평가를 40% 반영해 퇴출 대상자를 선정했다. 전직 노조위원장이 퇴출 대상에 오르자 노조와의 갈등을 우려한 임원들이 반대했다. 정치권의 압력도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예외를 두면 원칙이 무너진다며 대상자 전원을 예외 없이 정리했다. 모든 과정을 원칙대로 투명하게 처리하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전 사람들이 여기 와서 부장 외에 팀장을 여기저기 만들었더라고요. 이 작은 조직에 부장·팀장이 23명이나 되고 임원도 10명이 넘었어요. 조직이 가분수 형태니 굴러 가겠어요? 임원부터 부장·차장·과장은 50%씩, 대리·직원은 17%씩 전체 임직원의 33%를 구조조정 해 피라미드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흔히 아랫 사람 자르는 게 구조조정인 줄 아는데,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어요.”
해병대 출신인 박 사장은 코리안리 부임 초기 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63년 정부투자기관 대한손해재보험공사로 출범한 코리안리는 78년 민영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독점적 사업권을 누리면서 위기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박 사장은 조직의 무기력증과 무사안일을 도려낸 뒤 야성과 근성을 심었다.
“98년 말 이듬해 업무 계획을 짜는데 제로(0) 성장을 들고 오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경제 상황이 나빠 현상 유지만 해도 잘하는 겁니다’라는 거예요. 화가 나서 ‘언제 열심히 해봤느냐? 해보고 그런 소리 하느냐? 과거에 얼마나 노력했느냐? 밤샘 일을 해 봤느냐?’고 따져 물었지요. 제대로 답변을 못하길래 무조건 10% 올리라고 했더니 모든 부서에서 10% 성장으로 맞춰 갖고 왔더라고요. 그 해 13% 성장했고, 이후 연평균 13%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드림걸즈>
실패를 재활용하자
이런 일도 있었다. 부임한 지 넉 달 만인 98년 11월 직원들과 함께 단합대회 겸 북한산 등반을 하는데 임원과 간부들이 중턱까지만 오르고 막걸리 타령을 벌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박 사장은 이듬해 1월 영하 20도 추위에 임원과 부장급만 소집했다.
“이렇게 추운데 산에 어떻게 갑니까”라고 묻는 이들을 이끌고 경기도 하남 검단산에 올랐는데, 정상 너머 반대편 음식점을 예약해 놓았더니 이탈자 없이 따라왔다. 여세를 몰아 과장급 이상 연봉제 도입, 순환근무제 실시, 제로베이스 신상품 개발, 매주 열리는 열린간부회의에 전 직원 교대로 참석, 실패사례 발표회 등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꿔나갔다.
실패사례 발표회는 ‘실패를 재활용하기 위해’ 매해 한두 차례 여는데, 솔직하고 체계적으로 실패를 분석한 부서에 상을 준다. 박종원식 기업문화 개혁은 직원들과 함께 하는 백두대간 종주로 결승점을 향했다. 2004년부터 직원들을 3개조로 나눠 8월 말~9월 초 2박3일 일정으로 40~50km 산행에 도전한다.
야성과 도전정신, 인내심, 협동심을 기르자는 취지다. 지난해에는 빗속 강행군으로 오대산 43km 종주를 마쳤다. 올해는 백두대간 종주 6년 계획의 마지막 코스로 설악산에 오른다.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자 박 사장 부임 첫해 2800억 원의 적자를 예상했던 것이 37억 원 흑자로 돌아섰다.
그 결과 외환위기를 겪으며 공적자금 한 푼 투입 없이 경영을 정상화한 유일한 금융 회사가 코리안리다. 63년 창립 이후 98년까지 36년 동안 누적 당기순이익이 827억 원이었는데, 지금 그 정도의 순익은 1년에 거뜬히 낼 수 있다. 박 사장 부임 이래 연평균 13%대의 고성장으로 아시아 1위, 세계 11위 재보험사로 도약했다.
90년대까진 대한재보험(97년 당시 세계 28위)이 일본 Toa Re(세계 18위)를 벤치마킹했는데, 이젠 Toa Re에서 코리안리를 벤치마킹한다. 2006년 말 세계적 신용평가기관 S&P로부터 A- 등급을 받았다.
“주변에서 더 큰 데 가서 일하라고 합니다. 사실 그런 제의도 여러 차례 받았고요. 그때마다 ‘이 회사 반듯하게 세우는 게 내 사명’이라고 다짐하며 거절했어요. 10년 동안 정성을 다했더니 직원들이 제자 같아요. 지금 어디 다른 큰 데와 바꾸자고 해도 절대 안 바꿉니다.”
박 사장은 4연임이 확정된 2007년 ‘글로벌 코리안리 비전’을 선포했다. 2010년 세계 10위, 2020년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재보험사 진입이 목표다. 이를 위해 해외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단계로 중동·동유럽·남미 시장을 공략하고, 2단계로 유럽·미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짠밥통 문화’
박 사장은 메모 한 장 없이 경영 실적을 정확히 대며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장을 맡은 지 1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안 바뀐 게 많아요. 마치 짠밥통 같습니다. 짠밥통에 이런 저런 잔반을 마구 쓸어 넣으면 처음에는 지저분하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음식 찌꺼기는 가라앉고 위에 말간 물이 뜨는데, 발로 차거나 조금만 충격을 가하면 다시 구정물이 올라옵니다. 회사 조직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만 아직도 부정적이고, 현실에 안주하고, 소극적인 잔재가 저 밑에 도사리고 있어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부정적인 생각이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구성원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이 쌓여 조직과 기업문화를 망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정적 사고 다음으로 “깨부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고정관념이다.
“직원들이랑 금강산에 갔는데 비룡폭포 앞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사가 가장 좋은 배경에 앵글을 맞춰 삼각대를 설치한 뒤 모이라는데, 다른 관광객들도 다들 그 앞에서 찍으려 드는 판에 우리 일행 50명이 모이는 게 가능하겠어요?” 박 사장이 사진사에게 말했다.
“거기 서서 50명에게 모이라고 하지 말고 자네가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게.” 그 결과 다양한 각도의 더 좋은 사진이 더 많이 나왔다. “고정관념은 조직에 썩은 물을 고이게 만들어요. 공직사회가 그렇잖아요. 과거에 그랬다며 그걸 그대로 답습하잖아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은 변화가 없는 것이고 변화가 없는 조직은 결국 사라지고 맙니다.”
회사 축구대회 포지션은 ‘라이트 윙’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박 사장은 신입사원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준다. 코리안리는 매해 12월 용평에서 전 직원 워크숍을 하는데, 낮에는 신나게 스키를 타고 저녁에 워크숍과 함께 여흥을 즐긴다. “부모가 꼭 1등 하라고 말한다고 자식이 1등을 합니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고, 부모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다. 대신 스스로 자긍심을 갖도록 해줘야지요. 그러면 스스로 알아서 잠을 덜 자며 공부하고 성적을 높이는 거지요.”
워크숍 때 박 사장은 신입사원들에게 직접 스키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 또 카메라를 메고 최상급 코스인 레인보우의 출발 지점(해발 1350m)에 올라가 신입사원들에게 차례차례 한 명씩 스키를 메고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도록 한 뒤 사진을 찍어준다. 그러다가 손가락에 동상이 걸린 적도 있다.
사진은 하나하나 큼지막하게 인화해 액자에 넣는다. 그 다음 신입사원들을 한 명씩 불러 차를 마시며 포즈와 표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선물한다.
“사진을 집에 가져가면 책상 앞에 놓고 회사와 사장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합디다. 제 자식이나 직원들이나 똑같이 대합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가치관과 직업관을 가르쳤듯 직원들에게 부모처럼, 때로는 선배로서 이야기합니다. 제가 오픈 마인드로 다가가니까 직원들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 눈치가 얼마나 빠릅니까? CEO들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는 지시형 리더십이 통했지만, 지금은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통합니다.”
박 사장은 “기업경영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다”고 강조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각자 맡은 악기 소리를 조화롭게 내야 좋은 음악이 연주된다고 믿는 그는 힘들어 하는 직원을 보면 사장실로 불러 차를 함께 마시며 위로, 격려와 함께 보완해야 할 점을 말해준다.
“고객과 직원을 대하는 CEO의 가슴이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지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고받으려(Give & Take) 들지 말고 끝없이 주는(Give & Give) ‘마더(Mother)’ 경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매해 개최하는 체육대회는 축구가 하이라이트인데 박종원 선수의 포지션은 라이트 윙. “두세 명이 따라붙어도 제치고 매해 한 골은 넣어요. 그전에는 사장이라고 좀 봐주는 것 같더니 요즘은 그런 것도 없어요.”
필자는 본지 편집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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