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가족 잘 챙겨주면 회사 충성도 쑥쑥

가족 잘 챙겨주면 회사 충성도 쑥쑥

“나는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하다가 퇴근하면서 부장에게 ‘결혼하고 오겠습니다’고 인사하고 진짜 토요일 오전에 결혼하고 오후에 다시 출근했어요. 일을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우리 때는 그랬다니까….” 국내 굴지의 그룹에서 사장을 역임한 사람이 몇 번이나 들려준 이야기다. 지금 달라진 풍속도는 어떨까?

케이디파워의 직원 자녀들이 지난 2월 인도네시아 발리 포상여행 중 보트를 탈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런 일은 30~40년 전에는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몇몇 사람은 ‘남자가 성공하려면 가정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통계학적으로 검증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정을 버려가면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을 중시하는 세태가 정착되면서 경영자의 과제도 하나 더 늘고 있다. 지금까지 경영이 고객만족, 주주만족, 직원만족, 협력업체만족으로 확장됐다면 이제는 그 만족의 범위가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변화를 눈치채고 직원 가족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이를 통해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이루도록 함으로써 직원들이 회사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도록 만들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 위한 제도적 뒷받침

GS칼텍스는 외부고객만큼 소중한 내부고객을 만족시킬 때 비로소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조직경쟁력이 강해진다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족친화 정책을 펼쳐 임직원은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챙기고 있다. 2007년부터 시행한 구성원 상담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은 국내 기업에서 좀처럼 사례를 찾기 어려운 가족 경영정책이다.

GS칼텍스는 직원뿐 아니라 직원의 가족까지 자신의 고민을 상담할 수 있도록 회사가 외부 전문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상담 주제는 업무·삶·가족 세 가지 영역으로 회사업무 관련 사항과 임직원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자녀 인성 상담, 자녀 진로 탐색, 재정상담 등 가정문제까지 포함한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상담내용은 물론 상담자의 숫자도 회사가 전혀 체크하지 않고 있다. 직원이나 직원 가족이 상담 신청을 회사가 아니라 외부 컨설팅 업체에 직접 하면 컨설턴트나 전문가가 가정이나 제3의 장소에서 고민을 상담해 준다. 회사 관계자는 “기업에서 임직원 가족의 건강검진을 해주듯 심리적인 문제도 상담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잘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GS칼텍스는 이 외에도 매년 여름방학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임직원의 중학생 자녀 60여 명을 대상으로 2박3일간 본사 및 여수공장 견학, 영어마을 체험, 공연 관람 기회를 주고 있으며, 여수공장 임직원의 초등학교 자녀들을 위해서는 수영강좌, 원어민 영어교실, 1박2일 어린이캠프 등 매년 조사를 통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여수공장 신입사원의 부모들을 공장으로 초청해 자녀들의 삶터를 보여주고 회사의 복리후생제도를 소개한다. 또 임직원들의 부인을 대상으로 한 피부관리, 생활요리, 다이어트 요가 등 다양한 인기 생활강좌 프로그램 또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구글 코리아는 혁신적인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직원들이 실제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이룰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다.

특히 직원 자녀들을 배려한 제도들이 돋보인다. 구글 직원들은 평균 수주에서 몇 달간 진행되는 제품 및 서비스 개발 프로젝트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미국 본사나 다른 국가로 날아가 근무하는 일을 흔히 경험하게 되는데, 이 경우 자녀를 둔 직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 교육이다.

이러한 직원들의 마음을 파악한 구글은 본사 및 미국 전 지역 지사로 출장을 가는 직원에게 자녀가 해당 지사 근처의 학교에서 출장기간 동안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역 학교와 연계해준다. 출장 또는 파견 기간 동안 소홀해지기 쉬운 아이 교육까지 회사가 발벗고 나서서 챙겨주는 제도다.

출산이라는 경사를 맞은 직원들을 챙기는 것에서도 구글은 업계 최고 수준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출산을 축하하는 의미로 산모의 식사에 불편함이 없도록 50만원까지 식사배달을 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자녀 출산으로 아버지가 된 경우에는 2주간의 유급 출산휴가 기회도 준다.

또 구글 기업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식사’ 및 ‘놀이’ 면에서도 혜택이 가득하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구글은 전 직원에게 일류 요리사가 제공하는 영양가 높은 고품질의 식사와 음료수, 신선한 과일, 땅콩 등 다양한 무료 간식이 제공된다. 직원들은 언제든지 부모님이나 자녀들을 회사로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식사 후 탁구나 위(Wii), 푸스볼(테이블 사커) 등을 즐길 수 있다.



금요일은 ‘패밀리 데이’…일찍 퇴근 종용


한국MSD 남성 직원이 ‘한국MSD 직원 사랑 탈모 건강 클리닉’을 통해 두피 상태 및 탈모 진행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
기업의 전문성을 살려 직원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제약 기업 머크의 한국 법인인 한국MSD는 제약 기업이라는 특성을 살려 직원들의 여름철 건강 관리를 위해 ‘직원 사랑 피부 및 탈모 건강 클리닉’을 개최한다.

이번 클리닉은 최근 들어 직원들이 피부 건강과 탈모에 관심이 높아진 것을 반영해 기획한 직원 건강 복지 프로그램이다. 탈모 건강 클리닉에는 한국MSD 직원뿐만 아니라 임직원 가족까지도 검진 대상에 포함시켰다.

8월부터 실시될 ‘무료 탈모 검진 클리닉’에서 직원과 직원 가족들은 개인 일정에 맞춰 원하는 시간에 가까운 지정 모발 전문 클리닉에 예약만 하면 무료로 전문 탈모 검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검진을 통해 전문의에게 본인의 두피 상태 및 탈모 진행 정도를 진단 받을 수 있어, 탈모로 인해 고민해 왔던 남성 직원들과 직원 가족들로부터 벌써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한국MSD 대외협력부 박주영 대리는 “최근 남편이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많이 빠져 고민했는데, 제대로 된 탈모 검진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회사에서 제공해줘서 너무 기쁘다”며 “가족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회사의 세심함에 감동 받았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한국MSD는 임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장염 예방, 자궁경부암 등을 예방하는 백신을 직원에게 무료로 접종해주고 있다. 또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 직원들을 위해서는 ‘조기 퇴근제’, 임신, 수유 중인 여성 직원을 위해 ‘엄마의 방’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금요일을 ‘패밀리 데이’로 정해 일찍 퇴근하도록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은 HSBC는 고객과 직원의 자녀를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HSBC 리빙 파이낸스’ 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난 금융·경제 지식을 전하는 이 프로그램은 외국 CEO 및 FP와 PB가 강사로 나선다. 학생들에게 인생목표 및 비전수립을 주문하고 이를 토대로 재무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또 재무계획을 실천하는 첫걸음으로 자신의 용돈을 수입과 지출로 나눠 스스로 분석해 보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저축과 투자, 위험관리, 보험 등을 실생활 속 사례를 통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한다. 지난해 진행된 HSBC 리빙 파이낸스 프로그램에는 HSBC은행 직원의 중학생 자녀 25명이 참가했으며, HSBC의 파이낸셜 플래너가 강사로 나서 자산관리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우리 직원’의 의사결정에 가족이 핵심 변수

수업시간에 배운 경제 개념을 되짚어 보는 영어 퀴즈 시간에는 HSBC은행의 외국인 임직원이 선생님으로 초대되어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또 초등학생 자녀들을 대상으로는 ‘Bring Your Children to Work’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 견학과 퀴즈, 경제교육 등을 진행한다.

이 회사의 정지향 이사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경제교육과 함께 부모님의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줘 직원들의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직원 가족까지 챙기는 경영은 그동안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기업이나 기업문화가 발달한 외국계 기업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견, 중소기업에서도 가족 경영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실행하는 곳이 있다. 교육·출판기업인 교원그룹은 2005년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신바람 일터 만들기’라는 모토로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교원그룹이 2005년 이후 매년 실시하는 ‘孝! 드림투어’는 직원 및 배우자의 부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임직원 부모님에게 효도관광을 보내준다. ‘엄마 아빠가 쏜다’는 행사는 직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나 학원을 방문해 자녀 및 주변 친구들에게 피자 파티를 열어주는 이벤트다. 전력 IT업체인 케이디파워는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직원 가족에 대한 지원은 대기업 못지 않다.

지난 6월 13일에는 ‘창립 20주년 기념’ 행사로 전 직원과 배우자가 뮤지컬 ‘온에어’를 관람했다. 뮤지컬 관람 전에는 3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음식점에 가 식사하면서 서비스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게 한 후 영수증을 제시하면 회사에서 식사비를 제공했다.

케이디파워에는 이런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회사는 매년 설날과 추석 ‘명절맞이 장바구니 행사’를 열고 전 직원과 직원 가족들을 대형 마트로 초청해 가족당 10만원 상당의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함께 영화관람을 한다. 이 행사는 가정 내 제수용품 구매에 부담을 줄여주고, 가족과 함께 문화활동까지 즐길 수 있어 직원들의 애사심을 높여주고 있다.

올여름에는 차장급 이상의 직원 자녀들에게 ‘청소년 피닉스 리더십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인당 80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또 문화활동비 지원제도가 있어 직급별로 최소 월 7만원에서 최대 40만원까지 문화활동비가 지원된다. 영화, 연극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와의 식사 등에도 이 돈을 쓸 수 있다.

여기에는 운동시설이나 놀이시설 이용도 포함된다. 이 회사의 박기주 사장은 “직원뿐 아니라 직원 가족도 이제 회사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경영자에게 직원 가족도 경영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케이디파워는 매년 가족을 포함해 40~50명을 해외 포상 여행을 보내고, 직원의 결혼기념일과 자녀 수능일에도 선물을 보낸다.

가정을 희생하면서 일할 사람이 줄어든 지금, 경영자는 직원 뒤에 숨어 있는 가족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우리 직원’의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이제 사장이 아니라 직원의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틱톡 유행’ 차도에서 춤추고 요가…베트남 ‘골치’

2BBQ, 치킨값 인상 돌연 유예…이유는?

3'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구속심사…콘서트 강행 불투명

4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구속 심사

5"승복 공연 모욕적"…말레이 이어 싱가포르도 ‘뉴진스님’ 반대

6(주)유림테크, 대구국가산단 미래차 부품공장 신설에 1,200억 투자

7포항시 "덴마크에서 해상풍력과 수산업 상생방안 찾는다"

8日 도레이, 구미사업장에 5,000억 투입해 첨단소재 생산시설 확충

95만원권 위조지폐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 18명 검거

실시간 뉴스

1‘틱톡 유행’ 차도에서 춤추고 요가…베트남 ‘골치’

2BBQ, 치킨값 인상 돌연 유예…이유는?

3'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구속심사…콘서트 강행 불투명

4 '음주 뺑소니' 김호중, 24일 구속 심사

5"승복 공연 모욕적"…말레이 이어 싱가포르도 ‘뉴진스님’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