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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왜?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왜?

침체의 터널이 길고 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한국 간판기업들의 2분기 실적은 좋았다. LG전자와 화학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삼성전자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우려했던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실적도 좋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날이 온 것일까? 숫자의 이면에는 웃을 수만은 없는 사실이 있다.

지난 7월 22일 LG전자가 2분기 실적을 발표하자 증권시장과 언론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LG전자는 사상 최대의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분기별 실적에서는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이틀 뒤 삼성전자도 실적발표를 통해 지난 1분기 1500억원이란 실망스런 영업이익을 1조600억원이라는 의미 있는 숫자로 바꿔놓았다.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본거지인 미국과 유럽의 수요감소에도 불구하고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슷한 6500여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씻어줬다.

이외에도 LG화학 등 화학업체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체도 준수한 실적을 발표했다.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한국 기업들이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 기업들이 더 이상 시장의 변화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장을 선도하고 개척해 나간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두 기업의 경쟁을 통해 신제품 개발이 빨라지고 마케팅력이 강화되면서 한국 휴대전화가 세계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덕분에 두 회사의 휴대전화 부문 실적은 불황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A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의 지난 2분기 점유율이 사상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삼성전자는 19.2%였으며 LG전자는 10.9%로 조사됐다.



전사적 원가절감 노력이 성과 가시화 견인차

반면 글로벌 경쟁업체들의 점유율은 전기 대비, 전년 동기 대비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1위 업체인 노키아의 2분기 점유율은 37.8%로, 전분기 대비 0.3%포인트 하락했다. 이처럼 한국의 간판기업들은 불황에도 꾸준히 제품개발에 투자하고, 제품력을 높이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불황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사상 최악의 자동차 수요감소에도 불구하고 실직 시 자동차를 되사주는 ‘현대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나 미국의 현대차 구매자에게 1년간 유류비를 지원해주는 ‘가스록’ 프로그램 등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수요 감소를 최소화하고 있다.

덕분에 현대차의 올 상반기 미국시장 점유율은 사상 처음으로 5%를 돌파하는 등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원일 알리안츠GI자산운용 대표는 “지난 5년 동안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기업이 투자를 많이 안 해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좋다. 현대·기아차가 유럽, 미국 등지에서 싸게 해 주는 마케팅으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금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 위기 속에서의 기회요인을 잘 포착한 면도 있다. 올 상반기 석유화학 업체의 성적이 모두 좋았던 이유다. 중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접한 한국의 석유화학업체들이 올 1분기부터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환율효과에 정부 일사불란한 지원 가세


달러에 대한 원·엔의 가치변동
LG화학이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기록했고, 호남석유화학도 사상 최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바라보고 있다.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경기부양책을 잘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

이번 실적의 다른 요인으로는 강력한 원가절감, 비용절감이 꼽힌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어본 우리 기업들은 이번 위기에 재빨리 비용절감, 임금삭감, 원가절감 등의 노력을 전사적으로 펼쳤다.

LG전자는 올 들어 3조원에 달하는 비용절감을 추진해 왔고, 삼성전자 역시 판매관리비와 인건비에서 1조원 이상 감축했다. 철강업체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분기 대비 40% 이상 호전된 영업이익을 기록한 현대제철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지만 지속적인 해외시장 개척과 조업방법 개선을 통한 에너지 절감 및 회수율 향상 등 전사적 원가절감 노력으로 시장 기대치를 상회하는 경영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들이 이번 불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조기에 실적 개선이라는 성과를 얻어냈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깜짝 실적(Earning Surprise)을 좀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환율효과다. 지난 2분기 원-달러 평균환율은 달러당 1287.32원이었고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97.37엔이었다.

미국 금융위기 전인 2008년 8월 원-달러 환율 1043.79원, 엔-달러 환율 109.29엔과 비교하면 원화는 달러에 대해 24% 하락했지만 엔화는 11% 상승했다. 쉽게 말해 한국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될 때 같은 일본 제품에 비해 35%가량 가격경쟁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환율 변화로 일본은 가격을 11% 올려 받아야 지난해 8월의 수익성을 맞출 수 있게 되고, 한국은 24%까지 가격을 내려도 지난해 8월에 받던 원화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환율 효과에 대해서는 대기업들도 다 인정하고 있다. LG전자의 2분기 실적도 가전이나 에어컨 분야는 달러화 기준으로는 전분기 대비 매출이 감소했으나 환율효과로 성장하거나 현상유지를 했다.

현대차 역시 수출 대수는 큰 폭으로 줄었지만 매출이 상대적으로 작게 줄어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실적이 각국 정부의 강력한 재정정책에 의한 결과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4조 위안(약 718조원)에 달하는 중국의 재정정책이 시작되면서 중국 경제의 하강이 멈춘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 석유화학업체의 업황이 좋은 것은 중국의 특수 덕이다. 대신증권 안상희 연구원은 석유화학 업종의 실적개선과 관련해 “시장환경이 좋다. 특히 중국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유가인상으로 인한 제품 가격인상, 중동 쪽 공급 축소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중국시장의 부양책이 석유화학뿐 아니라 철강, 자동차, 가전 업체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2분기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본격적인 경기회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 등 자동차 업계는 2분기에 수출보다 내수에서 더 큰 성장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지난 2분기에 총 40만3112대의 차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46만5262대)보다 판매 대수가 크게 줄었다.

전체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내수는 오히려 16%가량 늘었고, 수출은 29%가량 줄어든 것이 더 큰 문제다. 개별소비세 인하라는 정부의 지원책이 없었더라면 현대차의 실적은 더욱 나빠졌을 수 있다. 판매량과 매출액이 동시에 줄었지만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6%) 대비 4%포인트나 오른 10%를 기록했다.

내수에서 마진이 큰 점이 작용했다. 숫자로만 보면 어려운 시기에 실적 개선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내용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위상과 동떨어진다.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가 종료된 3분기에 과연 현대차가 2분기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부 기업은 매출 증가가 없는 영업이익만의 증가라는 점도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출 증가폭보다 영업이익 증가폭이 클 경우 질 좋은 성장으로 분류된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경우는 수요급증이나 경영혁신, 제조공정 혁신, 원가절감 등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영업이익 증가는 원화가치 하락과 원자재 값 하락 등이 주도했고, 경비 등 일회성 비용이 감소하는 등 혁신보다는 짜내기식, 혹은 외부환경적 요인에 의한 비용 감소가 주축을 이뤘기 때문이다. 수요 증가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향후 성장 가능성도 떨어진다.



한국 기업 위기대체 능력은 다른 나라 앞서


토러스투자증권의 박중제 연구원은 “기업이익 사이클을 전망하는 데 핵심이슈는 ‘탑라인(매출액)’ 개선이 나타날 수 있는지 여부가 될 것”이라며 “미국 최종 소비자 수요는 여전히 저조한 상황이라 수요 회복이 조만간 이뤄질 것 같지 않아 매출증가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경기회복기에는 이익증가가 먼저 나타나고 매출액 증가는 후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경기침체 후에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 이익 개선이 먼저 일어나고 매출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병남 보스톤컨설팅 대표도 “매출액이 늘어나지 않고 이익이 늘어났더라도 시장 점유율이 함께 늘어났으면 나쁜 성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점유율 상승은 기업 경쟁력 향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논란은 있지만 전자, 화학, 자동차 등은 마케팅력과 각국의 지원책에 힘입어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주동력인 철강과 조선 등 중공업이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바닥을 기고 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철강 수요가 줄고 있고, 지난해 원자재 값이 비쌌던 때 계약한 원료를 이번 2분기까지 쓰면서 수익성도 나빠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3분기부터는 새로 계약한 원료를 쓰고, 철강 수요도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여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신규 수주가 없어 위기감이 고조됐던 조선업은 2분기 실적발표에서 의외로 좋은 실적을 유지했다. 이는 조선업의 특성상 과거 2~3년간 받아놓은 물량을 지금 건조해 매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수주량이 전무하거나 급감한 상황이라 2~3년 후가 걱정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부터 신규 수주가 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수익성이 예전처럼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이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엔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

하반기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 재정여력이 줄어든 각국 정부에서 부양책을 축소하거나 줄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이 10년 전에 비해 더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런 위기에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GM도 파산하고, 소니도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성장 자체를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다. 실제 이상으로 높이 평가 받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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