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상업화 출구 뚫었다
줄기세포 상업화 출구 뚫었다
알앤엘바이오 연구팀은 세포 배양기술에서 앞서 간다. |
“집을 폭파하겠다는 전화도 받았다.”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를 만드는 알앤엘바이오의 라정찬(47) 대표는 한때 전화 공포증에 시달렸다. 2005년 말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문조작 파동의 여파로 이 회사의 주가도 바닥을 기었다. 성난 투자자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나중엔 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의지가 꺾였다.
일부 투자가는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황 박사 논문조작 파동으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확산되면서 알앤엘바이오마저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이 회사가 2000년 11월 알앤엘생명과학이란 상호로 출발해 코스피에 상장한 때는 2005년 7월.
그후 4개월 만에 줄기세포 산업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황우석 파동에 휩쓸렸으니 회사가 입었을 피해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황 박사는 인간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했지만, 알앤엘바이오는 성체줄기세포 관련 기술이 전공이다. 창업 이후 성체줄기세포 연구의 권위자인 강경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연구에 참여한 이래 이 회사는 줄곧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몰두했다.
특히 2005년 12월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으로부터 선급기술료 1억원 등에 성체줄기세포 관련 원천기술을 도입하면서 회사 사업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줄기세포란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는 세포를 말한다. 가령 무릎을 다쳤을 경우 새살이 돋으면서 아무는데 이때 새로운 피부세포를 만드는 ‘공장’이 줄기세포다.
여러 종류의 줄기세포 가운데 지방이나 태반, 제대혈(탯줄혈액), 골수 등에서 추출하는 줄기세포가 바로 성체줄기세포다.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만 추출하기에 생명윤리 논란을 불러왔다. 알앤엘바이오는 특히 지방(脂肪)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으로 주목 받는다.
권재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줄기세포 분야에 거품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알앤엘바이오의 경우 임상시험 건수가 증가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자가 지방줄기세포’를 이용한 버거씨병(손발에 심한 염증이 생기는 폐색성혈전혈관염), 퇴행성 관절염, 척수 손상 등 3개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KFDA)으로부터 승인 받아 진행 중이다.(자가 지방줄기세포 치료란 자신의 몸에서 떼낸 지방에서 세포를 분리·배양해 다시 본인에게 시술한다. )
현재 버거씨병은 서울성모병원(옛 강남성모병원), 퇴행성관절염은 서울대 보라매병원, 척수 손상은 안양샘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알앤엘바이오의 조성률 이사는 “버거씨병의 경우 거의 완료단계여서 이르면 올 연말까지 마무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바이오 신약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도 주요 치료제가 임상단계에 있을 뿐 시판된 제품은 없어 얼마 전만 해도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6년 69억원, 2007년 101억원 적자를 기록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처음으로 2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엔 18억원의 흑자를 냈다.
2007년까지는 동물 소독사업 등 생물안전사업이 전체 매출의 96%를 차지하는 등 주력분야인 줄기세포 매출은 미미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중국 옌지에 줄기세포 치료 전문병원인 ‘RNL조양재생의학병원’을 열면서 임상단계의 치료제를 상업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중국은 병원 내에서 자가줄기세포 분리·배양을 통한 줄기세포 치료가 허용된다.
임상과정을 거쳐 식약청의 품목허가를 받아야 시판이 가능한 한국과는 구조가 다르다. 즉 한국에서는 당장 상업화하지 못하는 자가지방줄기세포 치료제를 중국에서는 품목허가를 받지 않고도 환자 투여가 가능하다. 회사가 중국에 병원을 개설한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래 국내외 고객 2000명 정도가 중국 병원에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시술을 받았으며 일본에서도 시술이 이뤄진다”고 라정찬 대표가 주장했다. “중국에서의 치료 성과가 잘 나오면 우리가 미국에 자가지방줄기세포 임상시험을 신청할 때 유리한 승인여건을 마련하게 된다.”
중국 시술이 시작되면서 이 회사가 2006년 발족한 줄기세포은행을 찾는 고객도 늘었다는 설명이다. “알앤엘바이오의 줄기세포 배양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필적할 회사가 많지 않다”고 이 회사 임상개발실의 신일섭 박사는 강조한다. 지방에서 성체줄기세포를 배출하는 과정을 보자. 예컨대 뱃살에서 떼낸 지방 5g에는 줄기세포가 25만 개 정도 들어 있다.
하지만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에 쓰이자면 적어도 10억 개의 줄기세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방을 계속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25만 개를 복제해 10억 개 수준으로 만드는 기술이 바로 배양 기술이다. 나아가 이들 10억 개로 복제된 줄기세포가 변이되거나 분화돼서도 곤란하다.
“성체줄기세포 기술의 핵심인 배양기술을 비롯해 변이 혹은 분화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도 알앤엘바이오가 갖는 경쟁력”이라고 신 박사는 덧붙였다. 미국과 유럽에 지방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연구에서 앞서가는 회사도 있다. 아직 상용화된 제품은 없지만 임상3상 단계에 있어 곧 시판될 치료제를 가진 기업이 몇 곳 있다.
다만 선진기업들은 제품의 상업화에 치중한 나머지 배양기술 개발에 뒤처져 줄기세포가 많이 요구되는 질환엔 취약하다는 게 알앤엘바이오 측의 판단이다. “일찍이 시설투자에 주력해 줄기세포 대량 배양과 보관이 가능한 연구시설(1000평·연구인력 40여 명)을 갖춰 해외기업과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라 대표가 말했다.
다각적 사업모델도 구축했다. 치료제 개발뿐만 아니라 줄기세포를 냉동보관하는 줄기세포은행사업(2006년 4월 줄기세포은행 발족), 줄기세포를 이용한 화장품 사업(2008년 12월 Dr. Jucre 출시)에도 진출했다.
지난해엔 관련기술을 일본(6억엔) 등에 판매하기도 했다. 대우증권 권재현 애널리스트는 “국내외 병원과 연계해 세포 보관사업 등으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 기업으로는 드물게 영업이익을 낸다”고 밝혔다.
알앤엘바이오는 해외 진출로 활로개척에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로 판로를 넓히자면 한국을 비롯한 각국 임상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건의 임상결과는 올 연말부터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에클스턴 전 F1 회장 내놓은 69대 경주차 매물 ‘8866억 원’ 추산
2세계 전기차 업계 한파 매섭다…잇단 공장 폐쇄·직원 감축
3'삼성동 집 경매' 정준하..."24% 지연손해금 상식적으로 말 안 돼"
4‘연구원 3명 사망’ 현대차 울산공장·남양연구소 11시간 압수수색
57조 대어 LG CNS, 상장 예심 통과…“내년 초 상장 목표”
6윤 대통령 “백종원 같은 민간 상권기획자 1000명 육성할 것”
7삼성전자, 반도체 위기론 커지더니…핫 하다는 ETF 시장서도 외면
8롯데 뒤흔든 ‘위기설 지라시’…작성·유포자 잡힐까
9박서진, 병역 면제 논란…우울·수면 장애에 가정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