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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새 위기 경고음 부동산 거품 끄지 않으면 또 수렁

가계부채, 새 위기 경고음 부동산 거품 끄지 않으면 또 수렁

충격의 리먼 사태 1년, 그리고 회복 모드 전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달콤한 9월은 아직 아니지만 1년 전처럼 공포의 9월도 아니다.

대한민국호(號)는 거친 불황 파도를 뚫고 나름 쾌속 질주 중이다. OECD 국가는 물론 브라질·러시아·인도 등 이머징 마켓보다 회복 속도가 빠를 정도다. 각종 경제지표는 벌써 리먼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 9월 수준으로 회복됐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올 2분기 2.3% 성장했다. 1분기(0.1%)에 이은 2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이다. 지난해 4분기 GDP 성장률이 -5.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금융시장의 안정 속도는 더욱 빠르다. 코스피지수는 9월 4일 현재 1609.90.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지수 1478을 껑충 뛰어넘었다.

이젠 ‘1700 고지’ 탈환도 멀지 않아 보인다. 금융시장이 V자형 회복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환시장에서도 청신호를 보낸다. 올 1분기 평균 1418원에 달했던 원-달러 환율은 2분기 평균 1286원으로 132원 떨어졌다. 올 연말엔 1100원대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한때 2000억 달러 붕괴 조짐까지 보였던 외환보유액도 어느새 제자리를 찾았다. 8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455억 달러. 금융위기 직전(2432억 달러)보다 23억 달러 많은 액수다.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역시 낮아지는 추세. 지난해 10월 6.99%포인트까지 치솟았던 이 프리미엄은 최근 1.20%포인트로 하락했다.

CDS 프리미엄은 국가부도 보험료로, 일종의 가중금리라고 생각하면 쉽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거나 부도 가능성이 커지면 이 프리미엄은 높아진다. CDS 프리미엄이 낮아졌다는 것은 한국 신용도가 호전됐다는 의미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한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상향 조정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렇다. 정부는 올 2월 -2%로 내렸던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높여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4%에서 -1.8%로 끌어 올렸다. 한국 경제의 회복 능력이 높게 평가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럼 우리 경제는 칠흑 같은 불황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일까?

답은 ‘아직’이다. 한국 경제 주변에서 시시각각 흘러 나오는 청신호 속엔 여전히 경고음이 숨어 있다. 경제지표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실제로 위험 요소가 적지 않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보자. 2008년 경제성장률은 3.3%였다. 올해는 기껏해야 -1.5%(정부 전망치)다.

수출실적은 또 어떤가? 관세청 자료를 분석해 보면 올 들어 7월까지 한국 경제가 올린 수출액은 1974억 달러. 월 평균 282억 달러로, 올해 3384억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할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이는 2007년(3714억 달러), 2008년(4220억 달러)보다 각각 9%, 24% 적은 액수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6년(3254억 달러) 수준이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금융위기 직후 추락폭이 워낙 컸기 때문에 지금의 상승세가 가파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착시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 냉정한 주장도 나온다. 이번 회복세의 진짜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유례없이 빠른 회복세를 정책 효과 때문으로 본다. 헬리콥터를 동원해 돈을 뿌린 게 효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1년 기승전결

▎글로벌 금융위기 1년 기승전결



각종 경제지표, 리먼 사태 수준 회복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 효과로 1분기 GDP 성장률이 1~1.5%포인트 올랐다. 반대로 이 정책이 없었다면 전기비 -0.6%를 기록했을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정부의 힘을 뺀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 “재정정책으로 경기 침체를 벗어나고 있지만 민간은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민간소비를 촉진하는 투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7월 기업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비 18% 감소하는 등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고용시장도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꽁꽁 얼어붙고 있다. 리먼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8월 76만4000여 명이었던 실업자 수는 올 7월 92만8000여 명으로 21%가량 늘어났다.

신규 취업자 수는 3월 -19만5000여 명, 4월 -18만8000여 명, 5월 -21만9000여 명으로 매달 감소했다. 희망근로사업이 본격 실시되면서 6월 신규 취업자 수가 깜짝 증가세(4000여 명)를 보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마저도 약효가 떨어졌는지 7월 다시 마이너스(-7만6000여 명)로 돌아섰다.

이러다간 투자부진, 고용·소득 감소, 소비둔화로 이어지는 경제구조가 굳어질까 우려된다. 이상동 센터장은 “신규 취업자 수는 경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이 숫자가 감소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가 아직 불황 터널 속에 있고, 시장이 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까지 확장 재정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면 이제는 민간 부문이 힘을 내야 한다”며 “시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를 마비시키는 거품이 형성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 글로벌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간이 살아야 한다.

시장이 자생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이 생산 부문에 유입돼야 한다. 그래야만 투자가 촉진되고 소비가 살아난다. 반대로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에 돈이 들어가면 거품이 생기고, 이는 곧 붕괴로 이어진다. 버클리대학 하이만 민스키 전 교수의 ‘거품-붕괴 이론’이 바로 이것이다.



‘미스터 둠’의 경고 귀담아들어야한국 경제가 꼭 그런 상황이다. 시중 유동자금이 부동산·주식에 쏠리면서 자산 버블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전례 없는 불황에도 주택담보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41조4000여억원에 이른다.

7월보다 무려 4조2000억원 증가한 액수다. 문제는 요즘처럼 물가가 상승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한다는 점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수록 돈은 회전이 빠른 부문에 쏠린다. 새사연 여경훈 연구원은 “경기 침체기를 벗어나 물가가 서서히 오를 때 투자자의 위험성향은 높아지게 마련”이라며 “기업이 실현한 이윤이 형편없이 낮음에도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 연구원은 특히 “이런 위험성향을 고수할 경우, 가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며 “자칫 가계부채 증가율이 기업 이윤 증가율을 훌쩍 넘어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거품이 가계부채를 늘리고, 결국 이것이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우려는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 한편에선 벌써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면서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8월 말 현재 가계대출액은 337조원. 가계대출 평균 금리 5.58%를 적용하면 이자 부담은 18조8046억원에 달한다. 가계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초저금리에 혹해 빚을 내 가계를 꾸린 대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금리가 꿈틀댄다. 기준금리는 아직 연 2%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연 6%를 넘어섰다. 가계발 금융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강석훈 교수는 “금융위기 이후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올라갈 경우, 가계 이자 부담은 가파른 속도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5.58%인 가계대출금리가 0.10%포인트만 올라도 가계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는 19조원을 넘어선다.

18조8046억원보다 3000여만원 많은 부담액이다. 그는 “금리가 인상되는 순간, 일부 가계는 빈곤의 늪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며 “그러면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느려질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라는 소리다.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최근 글로벌 경제가 더블딥(경기 상승 후 재하강) 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대표적 비관론자라며 이 주장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우리 경제는 외풍에 유독 허약한 체질 아닌가? 이참에 뜯어고쳐야 한다.

내수시장을 키우고, 구조조정을 통해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내수가 살고, 해외 경쟁력이 생긴다. 미분양 아파트를 양산한 건설사들이 지금처럼 버젓이 살아 있어선 곤란하다. 그것도 정부 지원으로 말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건설·조선 같은 부문의 부실은 이참에 반드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흙으로 얼기설기 만든 집은 폭풍우에 약하다. 악천후를 만날 때마다 보수해야 한다. 땜질식 처방은 언제나 더 큰 화를 초래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1년을 보낸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한국 경제의 리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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