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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곳간의 정부 ‘정책 전환시점’이 최대 고비

빈 곳간의 정부 ‘정책 전환시점’이 최대 고비

올 상반기를 넘어서면서 여기저기서 출구전략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확실한 회복을 이룰 때까지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확실한 경기 회복을 이룰 때까지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출구전략 시점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확실한 회복’이란 무엇일까?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문적으로 확실한 회복이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분히 심정적 정의”라고 말했다.

“정부 생각에 위험한 상황은 모두 지났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석했다. “확실한 회복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실업률이 하락하고 고용률이 상승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이 지표를 굉장히 중시하는 것 같다. 실업률이 하락해야 소비가 살아나서 경기회복이 지속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표들이 후행하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고 그때 가서 출구전략을 취하는 것은 늦을 수 있다. 실업률뿐만 아니라 국내소비나 설비투자 등 같은 지표가 확실히 상승한다는 판단이 확실한 회복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3분기 이상 플러스를 실현한다거나 전년도 대비 성장률이 플러스로 전환하거나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될 때 이것을 확실한 회복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김 원장은 “정답은 없고, 정책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맞는 얘기다. 확실한 회복이란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부가 어떤 정책적 판단을 하느냐는 것인데, 상식적이지만 이것이 향후 한국경제의 최대 내부 변수가 될지 모른다. 요즘 분위기로 보면, 정부는 돈을 뿌리는 헬리콥터의 귀환을 늦출 모양이다.

재정건전성 문제로 여러 증세안이 나오고는 있지만, 출구전략과는 또 다른 얘기다. 정부는 지난 3일 4분기에 쓸 예산을 앞당겨 3분기에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확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다음 날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정부의 생각을 요약해 밝혔다.

허 차관은 출구전략 시행 시점과 관련해 “금리 인상은 중앙은행 소관이지만 금리가 됐든 재정이 됐든 모든 수용정책은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경제회복이 완전하게 이뤄진 것을 확실할 수 있을 때만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거시경제 관점에서 우리가 현재 펼치는 재정 확장정책을 민간부문이 활성화될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출구전략 논란이 불거진 후, 최대 관심사인 금리 인상에 대해 정부 당국자가 밝힌 첫 구두개입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만큼 정부는 신중 또 신중이다.



착시 일으키는 경기지표정부의 신중한 태도와 달리 대내외적으로 한국경제는 회복 기대감에 충만해 있다. 우선 밖에서 들리는 소식이 좋다. 여러 외부 변수에도,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렸고, 무디스는 지난 2일 ‘한국경제의 이중침체 가능성은 작다’는 보고서를 냈다. 8월 들어 소비심리가 7년 만에 최고 폭으로 개선됐고, 광공업 생산은 10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벗어났다.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도 증가했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최근에 호전되는 경제지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으냐는 것이다. 2분기 지표가 좋았던 것은 지난 1분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이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제조업생산 (-7.3%), 설비투자(-15%), 수출(-4.2%), 민간소비(-0.8%) 모두 마이너스다.

금융위기 후 한국경제는 정부가 먹여 살리는 중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퍼붓는 것은 궁극적으로 소비를 일으키기 위해서다. 소비가 증가하려면 소득이 늘고,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잘되고 공장이 활발히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신통치 않다. 지난해 말 급증했던 기업 재고율은 올 상반기 급락했다.

물건이 잘 팔려서가 아니라, 생산을 줄이고 재고를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비가 일어나는 만큼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데, 민간 소비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으면서 기업들도 설비투자와 생산확대를 못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까지 회복세를 보이던 설비투자는 지난 7월 다시 곤두박질쳐 전년 동월 대비 19%나 줄었다.

사실 최근 소비심리 확대는 경제전문가들이 재정지출에 따른 악영향으로 가장 우려했던 ‘자산 효과’에 기댄 측면이 크다. 산업으로 가야 할 돈이 증시와 부동산에 몰리면서 자산시장이 급증했고,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미니 버블은 큰 문제다.

시중 유동성이 일부 지역으로 몰리면서 부동산 상승 기대심리가 높아졌고, 이 탓에 가계가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면서까지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주택담보대출은 22조6000억원 증가했다. 더욱이 담보대출의 절반 가까이는 주택구입 목적이 아닌, 생계형·소비형 빚이다.

소득이 늘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 빚이 늘면서 가구당 평균 처분가능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 부동산 거품은 오랫동안 한국경제를 짓누른 요인이었지만, 그렇다고 폭락해서도 안 된다. 가계부채가 700조원을 넘은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이 폭락하면 말 그대로 경제는 끝장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와 올 상반기에 걸쳐 부동산 규제를 잇달아 완화하면서 한국경제의 시한폭탄 중 하나인 가계부채 문제는 경기침체 여파와 맞물려 더 심각해졌다. 지난 7일 정부가 수도권에 대해서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확대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정이다.

소비가 늘지 않고, 수출이 감소하면서 악화된 기업 상황도 걱정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여전히 지뢰밭이다. 최근 중소기업 연체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지원이 끊기는 순간 중소기업발 대량 부실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발 대량 부실사태 우려더욱이 공장 가동률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면서 또 앞으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 설비투자의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기계 수주 실적은 지난 7월 전년 대비 7% 정도 늘었지만, 민간부문만 빼서 보면 33%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세 호경기가 올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제부터가 한국경제의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외부 위협요인은 제외하고 국내를 들여다보면 경기 회복의 청신호를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일부에선 정부가 3분기에 재정을 쏟아 붓는 것을 보고 ‘마지막 베팅’이라고 부른다. 바가지로 물을 퍼부은 펌프에서 지하수(소비와 생산)가 터져 나오지 않자, 마지막 한 바가지를 더 붓겠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하수가 쏟아져 나와주면 좋겠지만, 반대라면 더블딥은 불가피하다. 정부의 곳간도 이미 위험한 상태다. 올해 국가채무는 350조원을 넘어 2002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통합재정수지는 6월 말 기준으로 27조원에 달한다. 여당에서조차 논란이 되는 증세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인 것이다.

이 와중에 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너무 어려운 숙제가 돼버렸다. ‘민간 회복’을 간절히 부르짖는 정부가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경제는 막대한 재정지출에도 기업투자와 고용, 생산이 좀처럼 늘지 않고, 가계와 기업은 과도한 빚을 지고 있으며, 자산시장은 버블 조짐을 보이고, 대규모 공적자금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상황이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아직 모든 게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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