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붕괴도, 소비 위축도 무섭다”
“가계 붕괴도, 소비 위축도 무섭다”
김영민(38·가명)씨는 연봉 5500만원(세후 4680만원)을 받는 회사원이다. 머지않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7)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5)을 뒀다. 아내 이민진(36·가명)씨도 직장인이다. 흔히 말하는 맞벌이 부부다.
그래서 이 가계의 형편은 남부럽지 않다. 부부의 세후 급여수준은 월 735만원, 연 8820만원에 이른다. 우량 중산층이다. 지출도 적지 않다. 2006년 구입한 배기량 2000cc 중형차엔 월 70만원이 들어간다.
할부금(30만원), 차량 유지비용(4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소비성 지출 또한 많다. 식생활비에 월 110만원을 쓰고, 주거관리비(25만원), 교통통신비(10만원), 가족 용돈(50만원), 부모님 생활비(20만원)를 챙긴다.
경조사 등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월 15만원가량을 쓴다. 여기에 노후를 대비한 각종 보험료가 월 59만원, 카드결제금액은 매달 75만원에 이른다.
맞벌이 부부의 고민 ‘금리 인상’지출 항목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교육비다. 두 자녀 모두 초등학교 입학 전이지만 아내의 교육열이 대단하다. 공교육에 해당하는 영어유치원, 어린이집에 매달 93만원을 낸다. 피아노·수영 강습 등 사교육비도 40만원에 이른다. 이 가정의 총 지출액은 월 572만원이다. 이제 남은 돈은 163만원(735만원-572만원).
모두 저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이 가정의 저축 및 투자액은 90만원뿐이다. 낭비해서가 아니다.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73만원(163만원-90만원)은 이를테면 원리금 상환을 위한 예비비다. 김씨는 2004년 20년 만기로 주택담보대출 7000만원을 받았다.
원리금 계산방식은 원금 균등 분할제. 9월 현재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5.59%로 월 33만원의 이자를 낸다. 원금(29만원)을 합치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만 월 62만원이 나간다. 가계신용대출 2400만원도 받았다. 매월 납부해야 하는 이자는 12만원(가계대출평균금리 5.98%).
월 74만원, 연 888만원이 원리금 상환에 쓰이는 셈이다. 적지 않은 원리금이지만 이 가정은 그래도 흑자재정을 유지한다. 저축과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맞벌이 덕분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요즘 근심이 많아 보인다. 금리 인상 소식 때문이다. CD금리가 실제로 꿈틀댄다.
이 금리는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각종 가계신용대출의 기준으로 통한다. 그래서 CD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도 함께 상승한다. 더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것은 조만간 기준금리가 인상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CD금리를 비롯한 각 대출금리가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그것도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많다.
사례를 보자. 2002년 이후 기준금리(2008년 2월까진 콜금리 목표치)는 총 17번 변동했다. 이 가운데 7번 인상됐는데, 그때마다 CD금리가 크게 움직였고, 대출금리가 영향을 받았다. 실례로 기준금리가 2004년 11월 11일 3.25%에서 2008년 5.25%로 2.0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CD금리·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각각 2.37%포인트, 1.69%포인트 올랐다.
기준금리의 오름세에 따라 각종 대출금리가 변동함을 잘 보여준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당연히 빚을 가진 가계의 이자부담이 커진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부담해야 할 이자가 3조4000억원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과연 그럴까? 금리가 오르면 김씨 부부 가계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 부부의 가계대출을 금리별로 짚어봤다.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계산방식은 원금 균등 분할 상환방식을 따랐다. 금리는 당일 평균 수치를 적용했다.
□ 가정1 2009년 1월 수준으로 오르면…
그래서 금리 인상에 따라 김씨 부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는 큰 차이가 없다. 원리금 상환액은 월 75만원, 연 900만원으로, 현재보다 각각 1만원, 12만원 많을 뿐이다. 김씨 부부로선 흑자재정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 가정2 2007년 서브프라임 직전 수준으로 오르면…하지만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7년 7월 12일 미 서브프라임 직전 수준으로 금리가 올랐을 때를 가정하자. 당시 기준금리는 4.75%, CD금리는 5.06%에 달했다. 대출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각각 6.80%, 6.24%. 기준금리, CD금리 모두 현재보다 2%포인트 이상 높다. 이자부담액은 얼마일까?
김씨 부부는 이 금리가 적용되면 월 79만원, 연 948만원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현재보다 각각 5만원, 연 60만원 많은 이자액이다. 김씨 부부로선 흑자재정이 깨진다. 딸 아이 종이접기 사교육(5만원)을 접거나 경조사비(15만원)를 줄여야 현상유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 금리가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 가정3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으로 오르면…2008년 8월 7일, 글로벌 금융위기가 임박했을 때 기준금리는 5.25%, CD금리는 5.74%였다. 가계대출금리와 주택담보대출은 각각 7.22%, 7.16%에 달했다. 올 4분기 가계대출금리 전망치 6%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지금보다 CD금리는 3.02%포인트,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57%포인트 높다.
그러면 김씨 부부가 상환하는 원리금은 월 85만원, 연 1020만원으로 커진다. 현재보다 월 11만원, 연 132만원 많은 액수다. 김씨 부부로선 매달 붓는 청약저축(15만원)을 해약하거나, 큰아들이 좋아하는 피아노 교육(10만원)을 관둬야 손실을 막을 수 있는 규모다. 연간으로 따지면 김씨 부부의 세후 월 소득의 33%가 원리금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금리가 인상되면 이처럼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 김씨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면 가계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금리를 인상하면 부채가 많은 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원리금 상환부담, 소비위축 초래걱정스러운 부분은 또 있다. 소비가 위축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적자 재정, 가계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은 소비성 지출 항목이다. 김씨 부부처럼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소득이 증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아질수록 민간소비가 위축된다는 견해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늘어나는 가계부채, 문제없나’라는 보고서에서 “미국 소비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가계부채가 원리금 상환부담으로 인해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며 “이는 2000~2007년 평균 3.1%에 달했던 미 소비율이 지난해 4분기 -1.1%로 곤두박질친 이유”라고 분석했다.
금리 인상으로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불황의 끝자락을 통과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로선 치명상을 입는다. 한국경제가 글로벌 경기침체기를 순조롭게 탈출하는 원동력은 정부의 확장 재정정책 덕이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푼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언젠가 풀린 돈을 회수해야 한다.
더 풀 돈도 사실 많지 않다. 정부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곳은 다름 아닌 민간이다. 민간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또 다른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 시행 시기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지는 이유다. 금리 인상으로 증가하는 가계 원리금 또는 이자부담액을 눈여겨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계가 보내는 경고 시그널을 허투루 읽어, 가계부채 뇌관이 터지면….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경고처럼 한국경제는 더블딥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2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
3‘서울의 아침’ 여는 자율주행버스...26일부터 운행
4‘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5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
6KT, 1.6테라 백본망 실증 성공...“국내 통신사 최초”
7'윤여정 자매' 윤여순 前CEO...과거 외계인 취급에도 '리더십' 증명
8‘살 빼는 약’의 반전...5명 중 1명 “효과 없다”
9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