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의 虛와 實
프랜차이즈의 虛와 實
#“왜 물품대금을 카드로 지불할 수 없나요?”용인에 사는 박모씨는 지난해 12월에 A치킨 외식업체와 가맹계약을 맺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매달 지불하는 물품대금을 항상 정해진 날짜에 현금으로만 납부하라고 해 매출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달에는 스트레스 받기 일쑤였다.
박씨는 자신은 소비자와 신용카드 거래를 하는데, 가맹본부가 가맹점과의 신용카드 거래를 거절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인테리어 바꿀 때가 아닌 것 같은데…”서울에 사는 정모씨는 2001년부터 B피자업체와 가맹계약을 체결해 가맹점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 2004년 B업체는 가맹사업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서 갑자기 점포 확장을 요구했고, 이에 따른 비용을 모두 정씨가 부담하도록 해 정씨는 예상치 못한 거액의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
가맹본부와 위와 같은 일로 골치를 앓는 사람은 박씨와 정씨뿐이 아니다. 요즘같이 경기침체로 매출이 감소한 가운데 비용은 그대로 나가는 상황에서 가맹본부가 도움은커녕 부담을 안겨줄 때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가맹점 사장은 가맹본부에 끌려다니기 일쑤다. 약관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월 15일 외식업체 18곳에 대해 가맹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약관을 수정·삭제하도록 조치하면서 불공정한 약관의 문제점이 재차 수면으로 떠올랐다. 해당 업체는 한국피자헛, 미스터피자그룹, 디피케이, 썬앳푸드, 에땅, 한국파파존스, 임실치즈축산업협동조합, 리치빔, 피자빙고, 농협목우촌, 교촌에프앤비, 티에스해마로, 멕시카나, 한국일오삼농산, 맛있는생각, 지코바, 정명라인, 훌랄라.
상당수가 2년도 못 가 장사 접어이번 시정조치 주요 불공정조항은 가맹점에만 시설교체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조항, 가맹점 양수인에게 가입비를 다시 부담지우는 조항, 겸업금지 조항, 가맹본부의 영업양도 시 가맹점 동의 간주 조항 등 가맹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정위가 약관에 메스를 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엔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치킨의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약관을 적용하다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BBQ치킨 가맹본부와 가맹점이 맺은 계약서에서 본부의 기준에 따라 시설을 교체할 때 비용을 전액 가맹점이 부담하도록 하는 등 가맹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19개 조항을 적발해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했다.
이 결과 최근 공정위가 20개 업체를 조사한 것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현재 공정위에 등록된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1650여 개에 이른다. 공정위가 이번 시정조치로 부당 가맹계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아직 가맹계약서 다수의 공정성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약관심사과 조홍선 과장은 “피자·치킨업체 프랜차이즈는 국민생활에 밀접하다고 판단해 가장 먼저 조사를 시작했으며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번 공정위 국정감사에서도 프랜차이즈산업 내 불공정행위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국회의원이 많았다.
이런 배경에는 지난해 경기침체로 문을 닫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늘었기 때문이다. 공정위 국정감사에 참여한 권택기 의원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가맹점 중도 포기율이 18.5%로 가맹점 순증가율 16.2%보다 높았다. 이처럼 중도 포기율이 높은 것은 가맹점의 운영수익보다 초기투자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맹점이 매월 165만원을 순수익으로 벌기가 어렵다. 지식경제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가맹점당 평균 초기투자비용(부동산 관련 비용 제외)이 1억2900만원인데, 가맹계약 기간이 평균 2.2년이면, 매달 482만원의 순수익이 있어야 초기투자비용을 건질 수 있다. 한편 가맹점 평균 매출액은 연간 2억5900만원이므로 월평균 매출액이 2158만원이며, 만약 영업이익이 30% 수준이라고 볼 때 수익은 647만원이다.
결국 가맹점은 매월 벌어들이는 647만원 중에서 초기투자비용 482만원을 제하고 165만원을 순수익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는 2008년도 4인가구 기준 최저생계비 128만5848원의 13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맹점은 망해도 가맹본부는 망하지 않았다. 지난해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가맹본부의 평균 존속기간은 6.7년, 가맹점 평균 존속기간 3.6년, 가맹계약 기간 평균 2.2년으로 나타났다.
정 안 되면 조정 테이블로가맹점의 사정이 어려워지니 가맹본부와 가맹점 사이에 분쟁도 늘었다. 2005년 1월 1일부터 2009년 8월 31일까지 공정위의 가맹사업거래 관련 상담현황을 살펴보면 전화상담 건수는 2007년 1339건에서 2008년 4203건으로 213%나 증가했고, 2009년 8월 말 현재 3108건에 달하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해 2월 개설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가맹사업 관련 분쟁의 신속하고 원만한 해결과 실질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하도록 분쟁조정을 전담하고 있다. 이미 불공정한 가맹계약으로 피해를 본 가맹점은 한국공정거래조정원 내의 가맹사업거래분쟁조정협의회에 조정신청 등을 통해 권리구제가 가능하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염규석 분쟁조정실장은 “작년 한 해 291건을 조정했는데, 2007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도 지난해에 비해 일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경기가 나빠지자 계약 해지와 관련해 분쟁이 늘었다”고 말했다.
조정의 효력이 처벌보다 약하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6월 1일부터 상습적인 조정기피 업체를 공정위에 통보해주면 공정위에서 직권조사가 나가기 때문에 본부 입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일지는 모르지만 조정 테이블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정은 조정일 뿐,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맹점 관련 법적 분쟁에서 수년간 가맹점주의 입장을 대변해 온 박경준 변호사는 “불공정한 약관에 사인하지 않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가맹점주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프랜차이즈를 선정할 때 대부분 약관 내용의 공정성보다는 가맹본부의 이미지를 중요시 하며, 해당 사업설명의 대부분을 가맹본부를 통해 전해 듣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에 대한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박 변호사는 “약관은 보통 계약을 체결하는 당일 또는 하루 전에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가맹점주가 시간적으로 해당 약관에 문제점이 없는지 일일이 읽어보기 어렵다. 결국 가맹점주들은 약관을 읽지 않고 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약관 전체가 불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 조항에 불공정할 수 있으므로 이번에 공정위에서 적발한 내용을 참조해 확인해 봐야 한다. 박 변호사는 “그럼에도 프랜차이즈 창업을 원하는 가맹점주들은 불공정성을 느끼고도 사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정위 등에서 불공정한 약관 자체를 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랜차이즈 창업을 꿈꾸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프랜차이즈 전문가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2003년 가맹거래사 자격제도를 만들었다. 가맹거래사는 2008년 2월, 개정된 가맹사업법에 의해 ‘정보공개서’ 작성대행 및 등록과 ‘가맹계약서’ 작성 등의 업무를 보고 있다.
대한가맹거래사협회 박종천 사무국장은 “아직 가맹거래사 자체를 낯설어 하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최미선 가맹거래사는 “약간의 비용으로 큰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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