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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스몰 M&A 붐

대기업 스몰 M&A 붐

간간이 이어졌던 국내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이 올 하반기 들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주요 그룹사의 주요 트랜드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체하기 쉬운 대형 매물보다는 알짜 중고형 기업을 인수하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현황과 배경을 알아봤다.

올해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은 금융위기의 한파만큼 썰렁했다. 대형 매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내 주요 그룹사의 불참 속에 흥행은 저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업결합 심사 건수는 188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건 넘게 줄었다. 거래된 매물도 싼 게 많았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올 9월 30일까지 국내에서 이뤄진 M&A 거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지만, 거래액 규모는 40%가량 줄었다.

무엇보다 올 M&A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대기업의 계열사 간 합병, 사업부분 분리·통합, 외부 중소형 기업 인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스몰 M&A’를 주도한 것이다. 특히 그룹 내 인수합병(inner M&A)은 올해 내내 경제계의 뜨거운 이슈였다.



하반기 들면서 내부 합병 가속도삼성, 현대·기아차, SK, LG, 포스코를 포함해 국내 주요 그룹사 중 계열사 간 합병을 발표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올 초 KT와 KTF,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넷, 신세계와 신세계마트의 합병으로 물꼬가 트인 계열사 간 합병이 재계의 트랜드로 자리를 잡은 분위기다.

특히 하반기 들어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삼성그룹이 최근 분위기를 주도하는 점도 이채롭다. 지난달 발표된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의 합병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내년 1월 합병회사로 공식 출범한다. 시스템통합(SI) 업체인 SDS가 통신·네트워크 업체인 네트웍스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SDS는 이를 통해 매출 3조7000억원 규모로 재탄생하게 된다. 회사 측이 밝힌 합병의 배경은 ‘시너지 효과 극대화’다. “IT 서비스와 통신 산업의 융합 추세에 맞춰 양사가 통합되므로 일괄 서비스가 가능하고, 양사가 보유한 글로벌 파트너를 활용해 추가적인 해외 고객 확보와 사업 기회 창출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재무적 효과도 기대된다. 두 회사는 안정적인 현금수익을 창출해 왔고, 특히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매출 비중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양사 합병을 통해 현금 흐름을 더욱 안정시키고 유동성 또한 증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양사 모두 오너 일가의 지분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배구조 강화 차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30일에는 삼성테크윈이 삼성전자의 CCTV 부문 자산과 부채, 인력을 1850억원에 인수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삼성은 올 초부터 전자, 테크윈, 에스원으로 분리됐던 CCTV 사업의 통합을 검토해 왔다. 관련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지틸이미징의 카메라 사업 통합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 28일 공시를 통해 “합병을 포함한 구체적 협력 방안에 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삼성정밀화학, 삼성석유화학, 삼성토탈 등 화학계열 회사 통합설이 돌고 있고, 에버랜드와 신라호텔 외식사업부분 통합도 거론되고 있다. LG그룹의 통신계열사 통합도 하반기를 후끈 달궜다.

애초 LG텔레콤은 LG데이콤·LG파워콤을 먼저 합병하고 LG텔레콤이 이를 흡수하는 방식을 고려해왔지만, 지난 15일 전격적으로 일괄 합병을 발표했다. “통신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유·무선 결합을 준비해야 한다고 판단해 3사의 일괄 통합을 결정했다”는 것이 정일재 LGT 사장의 설명이다.

▎지난 10월 16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LG텔레콤과 파워콤, 데이콤 3사 관계자들이 합병인가 신청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LG텔레콤과 파워콤, 데이콤 3사 관계자들이 합병인가 신청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효율성 통해 수익 증대통신 업계에서는 올 초 KT와 KTF 합병 후, LG그룹이 예상보다 빠르게 유·무선 통신 계열사 합병을 선언한 것과 관련,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도 합병이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한다. 이와 관련,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상당기간 검토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간 문제”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앞서 LG는 지난 8월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LG이노텍과 마이크론을 합병한 바 있다. SK그룹도 내부 M&A에 적극적이다. 지난 9월 SK네트웍스는 워커힐호텔을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합병과 관련해 회사 측이 밝힌 공식 입장은 “호텔 시설 개선과 확장, 신규 사업 추진 등 투자 관련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수익성을 증대하기 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SK네트웍스가 그동안 주요 영업 부문을 양도하면서 확보한 자금으로 부진에 빠진 워커힐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내수 소비재 사업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앞서 SK네트웍스는 SK텔레콤에 전용선 임대사업을, SK브로드밴드에 인터넷 전화사업을 매각했다.

포스코는 최근 IT 자회사인 포스데이타와 자동화설비 계열사인 포스콘의 합병을 결정했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통합법인의 매출액은 약 1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합병 배경에 대해 삼성SDS, LG CNS, SK C&C 등 국내 ‘빅3’ 시스템통합 업체에 밀리던 포스데이타가 포스콘과 합병함으로써 향후 지하철 및 경전철, 친환경 미래도시(U-에코시티) 등 대형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아울러 포스데이타의 부채비율이 400%가 넘고,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재무구조 개선 차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은 지난 9월 레저 관련 계열사인 한화리조트, 한화개발, 한화63시티의 통합을 결의했다. 한화리조트와 한화개발을 먼저 합병하고, 12월 중순 한화63시티의 식음사업과 문화사업을 합병회사에 넘기는 방식이다.

이로써 자산 1조4000억원, 매출 6000억원 규모의 대형 레저회사가 출범하게 됐다. “고객정보 확대와 구매력 증대, 마케팅 비용 절감, 신규 투자 등 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한화 측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9월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복되는 업무도 있고 상이한 업무도 있어 통폐합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또 내년 1월 1일 출범을 목포로 계열사인 한화손해보험과 제일화재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양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통합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손보업계 6위로 부상하게 된다.



위기 후 기회가 온다

롯데그룹의 경우, 유화 부문 계열사 합병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롯데대산유화를 흡수한 호남석유화학은 현재 자회사인 케이피케미칼과의 합병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양사가 합병하면 매출 8조원, 현금자산 1조원 규모의 매머드급 석유화학회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합병을 향후 펼쳐질 석유화학 업계의 대형 M&A 시장에 대비한 사전 포석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롯데그룹은 지난 4월 롯데제과의 최대주주인 롯데알미늄과 롯데기공을 합병한 바 있다. 당시 업계에서는 “그룹 지배권 강화 차원”이라는 해석이 분분했다. 이 밖에 지난 9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인 대한통운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2190억원에 인수했다.

웅진그룹은 지난해 5월 웅진코웨이와 웅진쿠첸이 합병됐고, 앞서 2월에는 지주사인 웅진홀딩스가 웅진해피올을 흡수합병했다. 지난 7월 공정위는 상반기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업확장보다는 경영효율화를 위한 합병이 활발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실물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하반기부터 기업결합이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상황이 딱 그렇다. 대기업의 계열사 간 합병 발표가 크게 늘어난 것은 올 3분기 들어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위기 후 전략(post-crisis) 차원이다. 다시 말하면, 금융위기에도 상반기 좋은 실적을 냈던 국내 대기업이 위기 후 따라붙는 산업구조 개편에 앞서 전략적으로 계열사들을 재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개전투 중이던 계열사 중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을 통합해 공격 경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 M&A에 따른 후유증을 앓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각 그룹사가 상대적으로 재무적 부담이 적고, 합병 후 효과 예측도 쉬운 내부 통합을 적극적으로 연구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또한 사업구조 개편과 지배구조 개선을 동시에 노린 포석도 읽힌다. 신사업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대기업이 계열사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사업 재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비한다는 차원이다.

내부 합병과 동시에 부실 계열사를 정리하거나 비핵심 계열사 매각을 통해 재무적으로 안정을 꾀하는 모습도 보인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지주회사 전환이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핵심 계열사를 묶고 쪼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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