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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Serenade] 나이의 ‘무게’

[Seoul Serenade] 나이의 ‘무게’

한국인의 ‘나이’는 이방인 눈에는 꽤 흥미롭게 비친다. 예를 들자면 12월에 태어난 아기라도 해가 바뀌면 곧장 두 살이 된다. 토끼띠(75년생)인 내 동료는 결코 양띠(79년생)인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식당에서 돈을 누가 내고, 직장에서 승진을 누가 하며, 파티가 끝난 뒤 누가 남아서 뒷정리를 해야 할지도 나이로 가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장자와 대화할 때는 특별한 어휘와 문법을 따라야 한다. 서양인도 부모를 존경하고, 기차나 버스에서도 나이 든 분이나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만큼 나이에 대한 뿌리 깊은 존경심을 표하진 않는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는 사회다 보니 한국인들이 마땅히 나이 먹는 일을 기뻐할 줄 알았다.

아뿔싸! 나이에 주어지는 높은 가치와 그에 수반되는 문화적 보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나이 먹는 걸 상당히 두려워하는 듯하다. 그들이 죽는 것만큼이나 나이 먹는 걸 싫어한다면 과장일까?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어쩐지 나도 나이 먹는 데 훨씬 더 민감한 듯하다. 아줌마가 돼가는 징조는 익히 알 터이니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어쨌든 나는 여전히 싱글이고 영원히 이런 식으로 살아가길 바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행여 돈 많고, 핸섬한 싱글 남성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쯤에서 다른 페이지로 넘겨줬으면 한다. 방심한 사이 내게도 주름살이 생기고 말았다. 특히 앞 이마 전체를 가로지른 주름이 자꾸만 눈에 띈다.

이전에는 내가 열정적으로 수다를 떨거나, 나의 모험담과 일화를 다른 이에게 생생히 들려줄 때만 나타났던 그 주름이다. 좋은 비유가 있다. 어느 날 길 잃은 새끼 고양이에게 남은 샌드위치를 먹이고, 이튿날엔 우유 한 사발을 주곤 했는데 어느덧 거대한 몸집으로 자라 고양이가 아예 집에 죽치고 사는 경우처럼 말이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처럼 조그맣던 그 주름살이 이젠 엄청나게 골이 깊어 내 이마에 ‘안착’해버렸다. 만일 내가 미국에서 살았더라면 이 주름살에 이렇게 집착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산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노화 현상이 쉬 ‘용납’되지 않는 듯하다.

나는 매주 또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떤다. 값싼 레드와인을 마시며 가십거리와 예뻐지는 방법을 주고받는다. 이런 관계가 깊은 사이로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아이스크림의 절반을 먹어 치우면서 내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는 친구를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한국인 여자친구들은 나의 고민과 고통스러운 현실을 똑 부러지게(또 간혹 거칠게) 지적해주기도 한다. 대개 서양에선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모른 척한다. 6개월 동안 못 만났던 한국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면서 포옹을 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미셸! 네 셔츠 마음에 들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입었던 그 셔츠 맞지?”

내가 10분 늦게 허둥지둥 회의실로 달려갈 때 이런 말도 해준다. “안녕, 미셸! 네 얼굴 왜 그렇게 빨개?” 그중 최악은 이런 말이다.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몸을 숙일 때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미셸! 너도 흰머리가 생겼구나. 내가 뽑아줄게(앗!)” 웃을 때 생기는 조그만 주름은 그렇다손 치고… 이젠 흰머리라니! 나도 늙어간다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픔이 밀려왔다.

내 흰머리를 무자비하게(?) 뽑아준 그 친구는 점잖게 문제 해결 방법도 알려줬다. “흰머리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해.” 그 말에 숨을 죽였다. “검은콩을 먹어 보라구!”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검은콩이라니? 검은콩을 먹는다고 머리카락이 검어지겠어? 그럼, 빨강 머리를 원하면 딸기를 먹어야겠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는 표시를 없앨 방법도 실제로 아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느냐고? 검은콩으로 만든 차를 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마셨다. 그 후 흰 머리카락이 한 올도 생기지 않았다! 이제 남은 고민은 ‘주름살을 어찌 처리할까’인데…어디 주름살 없앨 방법 아는 분은 없수? 가급적 많은 양의 초컬릿 섭취가 포함된 ‘처방’이면 더 좋겠는데!

[필자인 미셸 판스워스는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7년째 살며 외국 기업들의 한국 내 사업을 돕는 컨설팅 업체인 IRC에서 컨설턴트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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