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초심으로 대하면 신뢰를 잃지 않죠”
“늘 초심으로 대하면 신뢰를 잃지 않죠”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상대방이 나를 만났을 때 편안해야 합니다. 만나서 불편하고 더욱이 거북해 하면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어요. 저의 경우도 만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석우(57) 콤텍시스템 부회장은 넓은 인맥의 비결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능력을 꼽았다. 남 부회장은 온화한 인상에 목소리의 톤이 낮으면서 부드러웠다.
그는 상대방이 편안하게 느끼려면 가식이 없고 역지사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처음엔 안 된다고 하다가도 세 번 정도 만나고 나면 대부분 태도가 바뀌더라고 덧붙였다.
“처음 만난 사람도 몇 마디 주고받으면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마력 같은 게 조금 있나 봐요.”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는 시종 여일한 일관성을 첫손에 꼽았다.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하지만, 새삼 돌아갈 것도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늘 초심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고객사는 물론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일관성을 지키면 신뢰를 잃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남 부회장은 27년째 정보통신 전문업체 콤텍시스템을 경영하고 있다.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에서 27년이면 전통 산업에서 200년 이상에 해당한다고 했다. IT업계의 장수 기업이 된 비결로 교육의 힘을 꼽았다. 콤텍은 중소기업 시절에도 교육비로 연간 6억원을 투자했다.
격주휴무제를 하는 동안엔 근무하는 토요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만 했다. 기술·영업에 대한 교육도 하고 교육을 통해 직원들에게 원가와 손익개념도 심어 준다. 심지어 인간관계 맺는 법과 예의범절까지 코치한다. 창립 이래 매월 첫날이면 전 직원 조회를 한다. 이때 회사의 목표도 공유하고, CEO가 자신의 생각을 밝혀 사내 컨센서스로 만들어 간다.
명색이 IT 전문 기업에서 달마다 열리는 오프라인 조회가 과연 필요할까? 남 부회장은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에서 나오고 그래서 사람을 잘 뽑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단언했다.
“IT 분야는 제조업을 제외하면 직원들의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들이 얼마나 잘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고, 얼마나 고민하면서 일을 하느냐에 회사의 실적이 달려 있습니다. 직원들의 역량이 곧 그 회사의 힘이죠.”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유능한 사람을 뽑기 힘든 중소·중견기업의 사정과도 관계가 있다.
탁월하지 않은 인력이 뭉쳐 업계 1위를 하려면 교육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원 채용 면접 때 지원 동기로 “콤텍이 교육을 많이 시키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는 직원을 뽑을 때 항상 직접 면접을 한다. 되도록 첫인상이 좋고 상대방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 용모가 별로더라도 구김살 없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그는 “마흔을 넘기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에 공감한다. 얼굴엔 그 사람의 삶의 역정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편안하지 않은 얼굴은 굴곡진 삶을 증언한다. 최근 “키 작은 남자는 루저(패자)라고 생각한다”는 한 여대생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지만, 갖은 풍상을 겪은 것도 억울한데 그게 얼굴에 드러난다고 불이익까지 당해야 할까?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성격이 모난 사람도 심성이 바뀌면 얼굴이 환해져요. 생각과 심성을 못 바꾼 것은 본인이 책임져야죠. 마흔 넘어 생각을 바꾸기란 말처럼 쉽진 않지만, 어떻든 바꾸고 나면 마음은 물론 얼굴도 편안해집니다.”
그는 CEO도 구성원 입장에서 편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 부회장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유별나다. “사람 욕심이 많아 과거엔 인력이 두 명 필요하면 세 명을 뽑고는 했다”고 말했다. 일 욕심에 탐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뽑고 봤다고 했다. 그 시절 그에게 멘토 격인 CEO가 있었다.
대우정보시스템 유완재 대표로 그보다 12살 위다. 사람을 뽑기 어려워 능력이 좀 떨어져도 열심히 일할 사람을 뽑던 그에게 유 대표는 게을러도 머리 좋은 사람을 쓰라고 권했다.
“그땐 논쟁을 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긍이 갔습니다. 머리도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결국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부지런한 사람을 써야죠. 막상 사람을 써 보니 일을 안 하다가도 한번 시키면 제대로 하는 쪽이 나아요. 무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안됐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매일 야근비·야식비 올리는데 성과가 안 나오는 사람은 정말 딱하죠.”
한번은 월례 조회 후에 만난 유 대표가 “조회 때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었다.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고 하니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일 잘 못하는 직원은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로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그는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본인이 회사를 그만두든지 사장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고 저의 생각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다른 직원을 규합해 노조를 만들더군요. 저 역시 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겁니다. 한때 내가 바르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왜 직원들이 몰라주고 안 따를까 고민했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죠. 내 입장에선 그게 진실이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반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IMF 체제 당시의 일이다. 해외에서 통신장비를 들여오면서 발생한 환차손으로 콤텍도 경영이 어려워졌다. 그는 회사 일에 전념하기 위해 맡고 있던 업계 단체 몇 곳의 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적이 부진한 몇 명을 정리해고한 후 추가로 90명가량의 명단을 작성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나가면 갈 데도 없는 모진 시절이었다. 그는 임금을 삭감해 고통을 분담하는 길을 택했다. “어렵지만 함께 이 어려운 길을 가자. 가는 데까지 가 보고 정말 못 견디겠으면 그때 다시 결정하자”고 설득했다. 이렇게 IMF 위기를 넘기자 뜻밖에 벤처 붐이 일면서 호황이 들이닥쳤다. 일이 쏟아졌지만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았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어려웠을 때 나 살자고 내보냈다면 사람들이 그 호시절에 우리 회사에 붙어 있었겠어요? 기회가 왔을 때 더 좋은 조건을 좇아 떠났겠죠. 우리 업계에 툭하면 사람 자르는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한때 직원이 450~500명 됐었는데 지금은 150명도 안 됩니다. 그런 회사는 일이 늘어나서 불러도 사람들이 안 갑니다. 있는 사람들조차 기회만 있으면 떠나려고 하죠.”
1994년 3월 서울 종로 일대의 통신이 두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광케이블이 타버린 탓이다. 이 사고로 증권사와 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증권사의 경우 통신이 두절되면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퇴근시간이 지난 시각, 통신회사에 전화가 빗발쳤지만 대부분 퇴근 후였고 전화를 받은 회사들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발뺌했다.
이날 콤텍 직원들은 밤새워 고객사는 말할 것도 없고 거래처가 아닌 은행·증권사까지 장비를 싣고 가 복구 작업을 벌였다.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다. 거래처가 아닌 고객사들이 고마워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활동이 결국 비즈니스 기회로 이어졌다. 나중에 경제적으로도 몇 배의 보상을 받았다.
“저야 퇴근 후였고 전화로 보고받고는 고객들 불편 없도록 잘 처리하라고 지시한 게 다예요. 결국 교육의 효과입니다. 늘 고객 만족을 요구하고, 작은 것 양보하고 큰 것을 얻어내라고 강조했죠. 작은 것에 연연해 실랑이하다 보면 감정만 상하고 큰 것을 놓치게 마련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세를 지면 갚습니다. 더욱이 개인이 신세를 진 것도 아니고, 회삿돈 나가는 일인데요. 이런 경우 언젠가 우리를 찾게 돼 있습니다. 위기는 정말이지 잘만 활용하면 좋은 기회가 됩니다. 필요할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란 말이 있듯이 어려울 때 도와주면 확실한 인맥이 되죠. 그런데 교육이 안 되어 있으면 이런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회사에서 위임을 많이 한다. 위임을 하면 우선 CEO가 편하고 임직원들도 편해진다. 위임 받은 사람으로선 자기 책임하에 소신껏 일할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위임의 조건은 두 가지다. 먼저 위임 받을 사람이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위임하는 사람이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
“위임해 놓고 자꾸 간섭하면 죽도 밥도 안 되죠. 인내심을 갖고 어떻게 깨지고 어느 선까지 문제가 돼도 내가 커버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직원 교육을 확실하게 하다 보니 콤텍에서 밀려난 사람도 다른 회사로 옮기면 행세깨나 한다. 콤텍엔 특유의 기업문화가 있다.
임원에서 말단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적극적이다 못해 악착스럽다. 지속적인 교육과 월례 조회 그리고 부단한 시스템화를 통해 이런 문화가 뿌리내렸다고 그는 말했다. 이렇다 보니 규모는 크지 않지만 콤텍을 벤치마킹하려는 기업이 많다. 남 부회장은 막상 카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중적인 투자를 요구하는 교육도 그렇지만 교육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CEO가 지속적으로 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싱글 골퍼인 그는 골프 예찬론자다. 골프를 즐기기도 하지만 인맥을 쌓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이란다. 길게는 일곱 시간까지, 라운드 파트너와 목욕·식사에 술자리까지 같이하다 보면 자연히 친숙해지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잘 못 치면 그에 맞게 룰을 적용하고, 그러고도 따면 선물을 사서 돌려준다. 서먹서먹하던 사이도 골프 여행을 같이하고 나면 가까워진다. 며칠 동행하다 보면 한 방을 쓰지 않더라도 각별한 유대감이 생긴다. 그의 꿈은 콤텍을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과거 계열사를 십여 개 거느린 적도 있지만 정보통신 분야에서 확고한 위상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남 부회장은 1녀2남을 두고 있다. 맏딸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일한다. 그는 “아이들은 아빠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다가 누구든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했다.
“이 업계가 참 어려워 자식에게 물려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자식이 나중에 한번 같이 해보겠다고 하면 또 모르죠. 아이들을 경계하느라 집사람이 냉장고에 뭘 자꾸 써 붙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고 심지어 고통을 줄 수도 있다’ 같은 말들이죠. 냉장고 문 열 때마다 한 번씩 보고 느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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