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삼바의 나라’ 브라질 주목 중”
“요즘 ‘삼바의 나라’ 브라질 주목 중”
지난 10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자산운용 부문 최우수 기업가상·마스터)을 수상하기 위해서다.
박 회장은 행사장에 마련된 포토 월 앞에서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허용도 태웅 회장,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달수 티엘아이 사장 등 다른 수상자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검은색 턱시도와 나비 넥타이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박 회장은 미소를 띠며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부인 김미경씨와 함께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박 회장 곁을 지켰다.
박 회장은 예전보다 조금 야윈 모습이었다. ‘수익률 반 토막’의 장본인으로 몰린 탓에 체중이 줄었나 했지만, 한 지인은 “1년 전만 해도 마음고생을 했지만 살이 빠진 것은 최근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 사람 관상 제대로 못 보는군”‘축하한다’고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박 회장은 웃으며 악수로 화답했다. ‘지난해 마음고생 좀 하셨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박 회장은 “(지난해 사태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기”라며 “시장은 언제나 요동친다”고 답했다. 변치 않는 자신감이었다.
‘어느 관상학자가 박현주 회장은 인중이 좁아 운이 없다고 했다’는 말에도 “그 사람 관상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라며 여유 있게 받아쳤다. 내년 코스피 지수 2000을 바라보는 지금에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고 비난의 화살이 미래에셋을 향할 때 마음이 편치 않았을 그였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느냐’고 묻자 “특정 매체와 단독 인터뷰는 곤란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장이 혼란스러울 때 누구보다 언론이 주목한 인물이기에 섣불리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과거 한 매체가 기자간담회를 청하자 그는 관계자를 통해 “시장이 비이성적이라 제대로 뜻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며 “때가 되면 밝히겠다”고 전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자 행사장은 점점 붐볐다. 이날 행사에는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 등이 심사위원, 시상자 자격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때 박 회장의 표정이 환해지며 누군가를 반갑게 맞았다. 박 회장과 손을 맞잡은 이는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신 사장과 박 회장은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잠시 말을 주고받았다. 국내를 대표하는 은행·비은행권 CEO의 만남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신 사장은 수상자, 시상자 명단 어디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동안 박현주 1인 체제에 대한 시장의 우려, 수익률의 추락, 펀드 대량 환매 등으로 ‘위험 리스트’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던 미래에셋이 다시 달릴 채비를 하는 모양이다. 최근 박 회장이 직접 푸르덴셜투자증권 인수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알려지는가 하면, 박 회장과 미래에셋의 성공 스토리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교재에 소개된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이익 보이면 올바른지 먼저 생각해회사 측에 따르면 국내 기업가 개인이 사례 연구 대상이 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 신한은행의 합병 전략이 GE·P&G·애플 등과 함께 연구 대상이 된 적은 있다. 여기에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중에서도 가장 영예라는 마스터상을 수상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국내 펀드산업을 개척한 미래에셋은 영광을 누리는 것 못지않게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시장은 늘 박 회장에게 책임을 강조했고 그는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됐다. 평소 어떤 상황이나 소문 앞에서도 담담하다고 알려진 박 회장이지만 내심 억울했던 모양인지 “인정 받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에 앞서 “변함 없이 믿어준 고객과 임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신념을 갖고 걸어온 길을 인정 받은 것에 의미가 있고,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했다. 이어 창업 당시가 떠올랐는지 “회사를 차린 지 6개월 만에 외환위기(IMF)를 맞아 느낀 게 많았다”며 “금융은 숫자가 아닌 원칙과 상식으로 하는 것”이라고 경영철학을 소개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상식의 길을 가겠다”는 그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인사이트펀드를 운용하면서 중국에 80% 이상 투자해 ‘비상식적’이라는 업계의 평을 들었다. 자산운용 부문의 수상자답게 한국의 자산구조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한국의 총 자산 규모가 5000조~6000조라고 하면 그중에 부동산 자산이 75%를 차지합니다. 세계에서 높은 수준입니다. 합리적인 자산 구성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국민연금 만기수급자가 최초로 1만50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은퇴자에게 편안함과 행복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회장은 과거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고령화, 양극화, 세계화로 치닫는 한국 자본주의 시장에서 미래에셋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10년 동안 고민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내일 신지애 선수(골프)가 3관왕을 한 기념으로 점심을 사기로 했다”며 “이 상이 젊은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으면 한다.
꿈과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3명의 멘토를 꼽았는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의 멘토이고 창업할 수 있게 영감을 준 멘토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라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내게 어떻게 사업할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다. 회사를 차리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고 힘줘 말했다. 이머징 마켓에 대한 언급 역시 빠지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고 카네기가 철을 생산하면서 미국이 세계시장을 이끌었습니다. 그 시장에 일본이 뛰어들었고 한국이 동참하게 됐지요. 이제 기회는 이머징 마켓에 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금융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미래에셋이 해보이겠습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자신감 넘치는 말투가 ‘금융권의 삼성전자’라는 미래에셋의 닉네임을 떠올리게 했다. 좌중을 한번 둘러본 박 회장은 빠른 성장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려는 듯 “미래에셋은 빨리 성장하고 많은 이익을 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니다.
가치와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익이 보이면 올바른지 먼저 생각한다. 큰 기업이 아닌 건강하고 강한 기업으로 세계시장에 나서겠다”며 수상 소감을 마쳤다.
옆 자리에 앉은 어윤대 심사위원장(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의 축하 인사를 받는 박 회장에게 슬그머니 내년 시장 전망을 물었다. 박 회장은 잠시 망설이다 “지금 (전망을) 정리하는 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그의 한 측근은 최근 박 회장이 중국에 쏟은 것 이상으로 브라질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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