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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중동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나라를 위하여, 민중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순수한 위선이었다. 거대한 위선이었다. …(훗날) 나는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이 좋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이 좋았고,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가 좋았다. 왜 (예전의) 나는 그런 나를 몰랐을까? 왜 나는 그 욕망을 떳떳이 긍정하지 못했을까?”

지난주 박노해 사진전 ‘라 광야’[‘라 (Ra)’는 고대이집트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며, ‘태양의 광야’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향 땅을 말한다]의 출품작을 보면서 나는 사람 박노해부터 생각했다. 카메라를 쥔 지 얼마 안 될 그의 눈썰미와 감각이 남다르고, 그래서 사진의 울림 또한 크다.

단순한 재간 혹은 여기(餘技)와 구분되는 이런 재능은 어디서 비롯될까? 원천은 박노해만의 예술가적 DNA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시집 ‘노동의 새벽’(1984년)에서 보여준 언어운용 능력까지도 몸 안의 유전자이고, 집안내력이다.


소리꾼 아버지가 남긴 예술가 DNA박노해(53)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잃었던 아버지(박정묵)는 여순사건에 연루된 좌익이지만, 멋쟁이 판소리꾼으로 전남 함평 일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어머니도 수녀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꿈을 이룬 이는 가톨릭 신부·수녀가 된 박노해의 형제(친형과 여동생)다.

그렇다면 예술가 체질, 영성(靈性) 지향 기질에 더해진 박노해의 ‘눌러온 미적 취향’이 투사 박노해와 평화운동가 박노해를 추동해 온 에너지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재확인하지만 그는 훗날 펴낸 ‘오늘은 다르게’의 고백처럼 “아름다운 것, 섹시한 것, 신비로운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타입이다.

예전의 자기가 순수한 위선이었다지만, 이념·투쟁의 시대에 쌓았던 내공은 여전하고, 그게 2000년대 문화의 시대에 맞춰 변용됐다. 그 점은 다행스럽다. 시인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권력에 대한 분노에서 생명·평화·나눔을 위한 대안운동으로 전환한 것은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데, ‘나눔문화’ 설립도 올해로 10년이다.

성공적 변신의 중간점검이 지난주까지 3주 동안(1월 7~28일 서울 갤러리M)의 사진전이다. 하루 평균 250명 관람객이 문을 두드렸고, 미술계의 천호균 전 쌈지 대표나 작가 임옥상, 출판계의 이기웅 열화당 대표, 연예인 장사익과 윤도현, 문화계의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 국악인 황병기를 비롯해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동건 법무법인 바른 대표 등도 전시장을 찾았다.

한국무용가 이애주 등이 나서는 바람에 판매도 호조세였다. 이들의 관심이 옛 투사에 대한 사회적 ‘부채감’을 반영한다면, 일반 관람객은 그와 또 다르다. 그들은 사진의 호소력에 직접 반응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종로구 영락교회 맞은편의 작은 전시공간을 찾은 이도 상당수다.

이들은 통상적인 미술애호가가 아닌데, 두세 번 거푸 찾아와 이슬람의 오늘을 보여주는 출품작 앞에서 눈물짓기도 했다. 무엇이 눈물샘을 자극했을까?


3주간의 대박 전시, 그 이유는?우선 그동안 신문·잡지에서 숱하게 보았던 중동 이미지와는 판이하다. “중동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하는 느낌과 함께 동질감·안도감부터 안겨준다. 다큐멘터리 사진 중에서도 저널리즘 사진은 정형화된 포맷과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는 성격 때문에 여운이 없고 맛도 덜한 법인데, 박노해 사진은 다르다.

우선 서정적인 울림이 있다. 아마추어의 작품이 분명한데도 매끈하지 않아서 좋다. 무엇보다 접근한 현장과 소재부터 다르고 앵글도 깊이가 있는데, 그게 포인트다. 작품은 주로 보통사람들의 가정과 일상의 삶을 포착했다. 이게 성공적인 결정적 이유는 국외자 시선을 배제한 점이 아닐까 싶다.

이슬람의 친구 자격으로 찍은 것이다. 전설적인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사진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현장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박노해 사진은 심리적 거리까지 없앤다. 작품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공연’이 그렇다. 검은색 톤의 이 작품은 시리아 쿠르드족의 아이들이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채 스텝을 밟는다.

현장 자체가 제3자에게 허락되지 않을 은밀한 성격의 것이다. 경찰 감시를 피해 밤중에 이뤄진 즉석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장롱에 숨겨둔 복장을 꺼내 입으면서 현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것이다.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는 그들과 함께했던 유일한 관객이자 친구가 박노해다.

실제로 그는 지난 10년간 이 지역을 드나들면서 코흘리개가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전시장 입구 ‘시리아 사막 길에서 저녁기도를 바치는 이라크인들’도 오래 기억될 이미지다. 생필품을 사러 가는 길, 차에서 내린 중년 남자 둘은 깔개자리를 만들고 무릎을 꿇고 있다.

하루 다섯 번 기도(샬라) 중 네 번째인 마그립이다. 한데 이들의 이런 모습에서 종교적 경건함과 위엄 그리고 그 지역의 문화적 가치까지 이끌어내는 게 박노해 카메라다.

“어? 이 차 현대차네요? 현대 로고타입이 붙어 있잖아요.”

“맞습니다. 10여 년 전 서울 길거리에서 자주 봤었죠. 이것 좀 보세요. 백미러 주변을 색실로 감싼 장식 말이죠. 참 정감이 있지요?”

“그런데 마그립 때 카메라를 들이대도 되나요? 더구나 외국인이?”

“절대 안 되지요. 제 경우는 이들의 오랜 친구라서 가능했죠.”

이 작품에 코 박을 참에 다가온, 턱수염을 기르고 약간 여윈 듯한 박노해와 나눈 대화다. 전시회 도록의 시로 쓴 ‘작가의 말’도 이렇다. “참혹한 가난과 분쟁지역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과/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다가서지 않는다/아니, 그럴 수 없고 나는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경작하고 노래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마시고/기도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민초들 속으로/혈육처럼 나직이 스며들어간다.”라고….

다시 궁금한 건 이 대목이다. 왜 일부 관람객은 눈물까지 지었을까? 중동-이슬람은 한국인에게 가장 멀고 낯선 곳인데, 무엇이 그들을 울렸을까? 박노해의 주장대로 “미국과 서구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시각이 잘못됐음을 깨우쳤기 때문일까? 그건 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예전부터 이슬람 등 분쟁지역에 한국군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던 박노해의 정치적 주장을 반영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기는 싸움’ ‘돈 되는 싸움’을 찾아서‘라 광야’에 대한 공감이란 우리가 바로 전에 겪어왔던 가난과 분쟁을 이슬람의 오늘을 통해 재확인하는 경험 아닐까? 고통의 동심원을 이루는 중동과 한반도는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며, 감정이입도 어렵지 않은데, 그게 가슴 뭉클했을 것이다. 찍은 이가 박노해라는 점도 무시 못한다.

어쨌거나 이런 감동을 주는 힘이 그의 사진이고, 신난간고(辛難艱苦) 박노해의 오랜 투쟁 이력이 지닌 아우라다. “이번 출품작 37점은 박노해가 10년간 기록해 온 10만여 컷의 일부다. 세계 각국의 사진인데, 그중 중동 현장이 4만여 컷”이라고 나눔문화의 허택 사무국장은 말했다. 그는 ‘라 광야’ 홈페이지(www.ra-wilderness.com)에서 온라인 전시가 계속되지만, 10월에 대규모 사진전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때쯤이면 우리는 글로벌 평화운동가이자, 예술가 기질의 ‘미스터 댄디’ 박노해의 진면목을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게 될 듯하다.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이 아니다. 스스로 언명했던 대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도 않는다. 걱정스러운 점은 그의 가슴에 분노가 여전하고, 과거와의 화해도 충분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90년대 초 감옥을 나서며 스스로 다짐했던 ‘박노해식 운동 3원칙’이 생각난다.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돈이 되는 운동을 하겠다. 그리고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 좋다! 그럼 무엇이 이기는 것이고, 즐거울 수 있을까? 그걸 함께 궁리해야 할 참이다. 실은 사진은 사진으로 평가해야 한다. 다음은 전시회 오픈 때 사진가 강운구가 했던 덕담이다.

“지금 시대는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사진작가들이 자기는 떠나는 줄도 모르면서 사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사진의 기록성·재현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예술한다는 명목으로 예전에 모시던 사진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배반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사진을 떠납니다. 박노해는 똑바른 정통사진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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