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덤속 까뮈가 운다
▎카뮈는 팡테옹 입성을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다.
작가 알베르 카뮈는 1960년 46세의 나이로 프랑스 빌블레뱅 지방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프로방스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루르마랭에 묻혔다.
카뮈는 1957년 받은 노벨상의 상금으로 그곳에 집 한 채를 구입했었다. 카뮈가 루르마랭에 끌리게 된 이유는 그곳의 풍경이 자신의 고국인 알제리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삼나무 아래 고요하게 자리잡은 그의 무덤가엔 여름이면 강렬한 태양이 내리 쬐고 매미가 울어댄다. ‘이방인’과 ‘반항적 인간’의 작가인 카뮈의 영원한 안식처로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곳이 또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근 프랑스에선 프랑스의 문화 영웅들, 더 나아가 프랑스 문화를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놓고 매우 프랑스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올해로 사망 50주년을 맞은 카뮈가 쟁점의 중심이다.
지난해 11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카뮈의 유해를 프랑스 위인들이 안치된 파리 시내의 국립묘지 ‘팡테옹’으로 옮기자고 제안하면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제안의 대상인 카뮈가 아니라 제안자가 사르코지였다는 점이다(카뮈가 팡테옹에 묻힐 자격이 있다는 사실엔 모두가 동의한다).
사르코지는 자신이 주창한 ‘국가 정체성 대토론’을 활성화하려고 카뮈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많은 프랑스인이 이 토론을 극우파의 표를 노린 사르코지의 계략으로 간주한다. 이민 장관 겸 국가정체성 장관인 에릭 베송이 이끄는 이 토론은 곧 인종차별적이고 반(反)무슬림적인 색채를 띄게 됐다.
좌파 인도주의자였던 카뮈가 개탄했을 법한 토론이다. 정치 전략의 대가인 사르코지는 다른 사람의 명성이나 인기를 이용하려 든다는 평판을 듣는다. 그는 곧잘 반대 진영의 인물을 기용한다. 사회주의자인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장관으로 영입한 일이 좋은 예다. 사르코지는 최근 자신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레지스탕스의 영웅인 카뮈를 인기 회복의 도구로 선택했다.
새 ‘알베르 카뮈 사전’의 편집인인 자니브 게랭은 “우리는 사르코지의 행동을 ‘무덤 침입’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큰 홍보효과를 노린 전략이다. ‘쿠슈네르를 내 편으로 만들었으니 이번엔 카뮈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이다.” 카뮈 묘의 팡테옹 이장 제안은 또 반지성적이라는 사르코지의 평판을 잠재우려는 계략으로 보인다.
사르코지는 17세기 불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마담 드 라파예트의 소설 ‘클레브 공작 부인’을 경멸하는 발언으로 지식인들의 비난을 샀다. 팡테옹 학자 장 클로드 보네는 “사르코지는 자신이 프랑스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학계 전체에 충격을 줬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뮈 자신이 팡테옹 이장을 싫어할 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루르마랭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했다. 원래 교회였던 팡테옹은 프랑스 혁명 당시 신이나 왕보다 위인들을 높이 기리는 묘지로 탈바꿈했다. 이곳의 분위기는 차갑고 엄숙하다. 최근 프랑스 신문의 한 사설에서는 팡테옹을 지하 주차장에 비유했다.
게다가 카뮈는 생전에도 국가에서 주는 명예를 거부했다. 그는 엘리제궁 초대를 거절했고 프랑스 정치인들을 “이상과 위엄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프랑스의 다른 지도자들은 위인들의 묘를 팡테옹으로 이장하자는 제안으로 이미지를 제고했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1964년 레지스탕스 지도자 장 물랭의 팡테옹 이장으로 자신의 영웅적인 과거를 상기시켰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96년 드골 시절의 문화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의 묘를 팡테옹으로 옮겨 드골파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시라크는 또 2002년엔 19세기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묘를 팡테옹으로 이장했다. (이 밖에 팡테옹에 안치된 작가는 프랑수아 볼테르·장 자크 루소·빅토르 위고·에밀 졸라뿐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마르셀 프루스트는 팡테옹에 묻히지 못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14년 재임 기간 동안 7명의 위인을 팡테옹에 모셨다. 그중에는 과학자 마리 퀴리도 포함됐는데 그녀는 (남편 덕이 아닌) 자신의 업적과 명성으로 팡테옹에 입성한 유일한 여성이다.
게랭은 “만일 드골이나 퐁피두, 미테랑 같은 지적인 인물들이 카뮈의 팡테옹 이장을 제안했다면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르코지가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부조리의 작가로 불리는 카뮈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부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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