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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생존의 길 작지만 강해지겠다

독자 생존의 길 작지만 강해지겠다

은행 업계에서 이주형(58) 수협 은행장의 혁신 경영이 화제다. 올해 말까지 공적자금 상환을 목표로 정부에 적극적으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임원 연봉을 20% 삭감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신용자회사 분리 후 상장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수협은행에 불편한 점이나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명함에 적힌 제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은행의 주인은 고객입니다. 주인을 섬기는 머슴의 심정으로 최상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지난해 4월 수협은행의 수장이 된 이주형 은행장의 발 빠른 행보가 눈에 띈다. 취임 한 달 후 새벽에 동대문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개인과 기업 우수고객 5000여 명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3억 달러 유로본드 발행을 마무리했다. 올해 초에는 ‘도약 2010, 새로운 출발, 새로운 도전’ 경영혁신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확실한 변화로 수협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것. 이 행장은 1980년 23회 행정고시 합격 후 재무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재정경제부 국장을 거쳐 예금보험공사 부사장을 지냈다.

재경부 차관 출신의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와 고시는 물론 재무부 동기다. 김 대표는 “이 행장은 매사에 명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고 들려줬다. 이 행장이 경영을 맡으면서 수협은행에 혁신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동안 수협은행은 정체된 모습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공적자금 조기 상환을 추진 중이다.

2001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모두 1조1581억원이다. 이 중 현재가치 평가액은 3000억원. 서둘러 빚을 갚으려는 것은 내년에 모든 금융기관에 도입되는 국제회계기준(IFRS) 때문이다. 회계기준이 바뀌면 상환우선주 형태로 들어온 공적자금이 부채로 분류돼 수협의 재무건전성 수치가 나빠진다.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현재 12% 수준에서 -3.5%로 무려 15.5%포인트나 하락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 이 행장은 정부에 공적자금 조기상환을 위해 약 3000억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는 자금지원 대신 IFRS제도 도입을 3년 더 늦췄다.

그는 “기간을 늘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회계기준을 도입하지 않으면 당장 채권 발행이 어렵습니다. 수협은행만 회계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건전성이나 수익성을 따지기 힘들어요.” 이 행장은 “정부의 지원만 바라는 건 아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자구책도 마련했다. 우선 허리띠를 졸라맸다. 행장을 비롯한 임원 연봉 20%를 반납했고, 성과급 지급률도 30% 줄였다. 퇴임공로금도 최고 80%까지 삭감하는 등 임직원이 똘똘 뭉쳐 수협 살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 19건의 비업무용 고정자산을 매각해 자체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장기 계획도 세웠다. 우선 수협중앙회에서 분리해 신용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중앙회가 대주주가 되고 공적자금을 지원한 정부가 일부 지분을 갖는 구조다. 자회사 독립은 기업공개를 위한 과정이다. 협동조합은 투자자를 모을 수 없는 등 제약이 많기 때문에 아예 분리해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상장은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정부에도 유리합니다. 주식을 팔면 공적자금을 회수하고도 돈이 남기 때문이죠.”신규 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특히 수협은행은 대한체육회의 공식 후원사로 각종 올림픽대회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혁신 경영은 회사 분위기를 확 바꿨다.

그동안 수협은행이 경영정상화 과정을 거치며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이 행장 취임 후 공적자금 상환 목표가 가시화되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자 직원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의 스킨십 경영도 한몫했다. 그는 수시로 직원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취임 후 한 달 동안은 부서별로 돌아가며 팀 미팅을 했고, 요즘엔 일부러 직원들과 점심과 저녁 약속을 잡는다.

연초 이후에는 임직원과 강화도 마니산으로 등산을 다녀왔다. “CEO 혼자서는 회사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조직이 잘되려면 직원과 함께해야죠. 조직을 재결집하고 임직원의 열정을 하나로 모은다면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30년간 관료 출신으로 지내온 그가 은행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데는 예금보험공사에서 은행 실무를 익혔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전 금융기관의 부실화에 대비해 예금자를 보호하는 기관이에요. 그렇다 보니 은행들의 건전성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튼튼한 은행의 전제 조건은 뭘까. 이 행장은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을 꼽았다. “IMF 때나 금융위기 속에서 국내외 수많은 은행이 도산한 것은 눈앞의 이익만 좇아 무리하게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수협은행처럼 규모가 작은 기업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선 2013년까지 자산 30조원, 연간 순익 3000억원을 버는 작지만 강한 은행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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