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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치매가 와인에 취해 도망갈까?

혹시 치매가 와인에 취해 도망갈까?

와인이 심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의학 전문가들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러 차례 확인됐다. 그렇다면 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허영만 화백이 국내 치매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한설희 건국대 교수를 만나 술과 치매에 얽힌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월 말 허 화백이 한설희 교수를 만난 곳은 서울 강남역 인근 삼성타운 뒤편에 자리 잡은 ‘잡어와 묵은지’에서다. 이곳은 이름처럼 싱싱한 잡어회를 묵은지에 싸먹는 별미를 맛볼 수 있는 허 화백의 단골집이다. 허 화백은 이 집의 조종덕 사장을 “생선회의 달인”이라고 치켜세운다.

조 사장은 “놀래미, 도다리 등 잡어는 충남 태안 신진도에서 직접 공수한 자연산이고 묵은지는 진부령에서 직접 재배한 고랭지 배추로 담근다”고 설명했다. 남도를 연상시키는 메뉴들이 즐비하지만 분위기는 여느 고급 일식집 못지않게 세련된 것이 이채롭다. 허 화백 단골집답게 회와 함께 다양한 와인도 즐길 수 있다.

식당에선 이미 한설희 교수가 치매 예방에 좋은 음식으로 추천한 해삼, 전복, 대합 등 각종 해산물과 함께 고등어회, 과메기 등과 같은 등푸른생선을 한 상 가득 차려놓았다. 한 교수는 “등푸른생선은 불포화지방산과 DHA가 풍부해 치매 예방에 좋다”며 “특히 회와 함께 먹는 당근의 경우 딱딱한 질감으로 씹을 때마다 두뇌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설명했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원장을 맡고 있는 한 교수는 치매 연구와 치료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노인복지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 교수에 따르면 현재 국내엔 38만~40만 명의 치매 환자가 있다. 이 가운데 한 번이라도 병원이나 치매상담소를 방문한 사람만 3분의 1에 달한다.

그러나 꾸준히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 중 3분의 1에 불과하다. 전체 치매 환자의 10~15%만이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은 노화다. 치매는 60세 이후 나이를 5세 더 먹을 때마다 2배씩 증가한다. 60세 노인의 약 1~2%가 치매인 데 비해 85세에 이르면 약 47%에 이른다.

한 교수는 “한국의 경우 빠르게 노령화 사회로 가고 있기 때문에 치매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노화와 함께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게 잘못된 생활습관이다. 한 교수는 “사람이 나이 40세를 넘어서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치매도 마찬가지”라며 “치매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60대에 발병했다면 이미 40대 중반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매가 가정을 넘어 국가적인 손실을 초래한 사례도 있다. 1945년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얄타 회담이 대표적이다. 한 교수는 “당시 회담에 참석했던 영국의 처칠 총리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혈관성 치매 초기 증상이었다”며 “지도자가 치매에 걸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가 말하는 치매의 1차 진단 근거는 기억력 상실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에게 주로 두 가지를 묻습니다. ‘오늘 아침 어떤 국을 먹었는지’와 ‘오늘 무엇을 타고 오셨느냐’입니다. 치매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치매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기억력 감퇴는 최근 기억들에 해당된다.

한 교수는 “새롭게 일어나고 인지하는 활동은 뇌의 해마 부위가 담당하는데 치매에 걸리면 이 부분이 손상된다”며 “치매 환자들이 옛날 일은 비교적 잘 기억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집에 80병짜리 와인 셀러를 두 개나 둔 와인 애호가다. 그는 “사무실에 하나 더 있는데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활짝 웃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세미나가 열릴 때면 세미나 전후 시간을 내 근처 와인 산지를 둘러본다.

그는 “예전 취미는 오디오였는데 와인이 오디오보다 돈이 훨씬 더 든다”며 “오디오는 듣고 난 후에 기기라도 남지만 와인은 마셔 버리면 끝”이라고 말했다. 와인이 치매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적당한 양의 와인은 좁아진 뇌혈관을 확장시켜 기억력 감퇴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뇌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설희 교수는 적당한 와인은 치매 예방에 좋다고 말한다.

▎한설희 교수는 적당한 와인은 치매 예방에 좋다고 말한다.

그는 “와인 잔을 3분의 1가량 채운 정도로 하루에 두 잔이면 좋다”고 덧붙였다. 와인 중에선 레드 와인이 항산화와 혈청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성분이 많아 뇌세포 파괴를 막아주고 기억력을 늘려준다고 한다.

그는 “적당량의 알코올은 생명 연장을 돕는데 레드 와인의 효과가 가장 큰 편”이라고 조언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술이 흥분제가 아니라 억제제라는 점이다.

교양, 체면, 사회적 규약 등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전두엽의 역할인데 술이 이 전두엽의 억제 기능을 높인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술 마시고 속에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사실은 개인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라며 “난 술 마시고 실수한 사람들의 이름을 꼭 수첩에 적어둔다”며 웃었다. 치매를 예방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공부다.

허 화백이 “손을 많이 쓰는 만화를 그리기 때문에 두뇌 건강에 좋지 않으냐”고 묻자 한 교수는 “허 화백은 손을 쓸 뿐만 아니라 머리를 쓰는 것이라 치매 걸릴 걱정은 없다”고 답했다. 일상에서 치매를 예방하는 생활습관으로는 뇌와 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퀼트, 뜨개질, 악기 연주, 서예, 사교 댄스 등을 추천했다.

정기적인 운동도 세포의 퇴행을 늦춰 노화를 방지한다. 하지만 운동할 때는 무엇보다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특히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을 탈 때 헬멧을 쓰지 않는 것에 우려를 보였다. 한 교수는 “치매는 완치되지 않기 때문에 뇌 손상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어릴 때부터 머리를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산물과 향이 풍부한 샴페인바다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해삼은 대표적인 치매 예방 음식으로 꼽힌다. 기억을 관장하는 물질인 크렙이 함유돼 있고, 쫄깃한 해삼을 꼭꼭 씹는 것만으로도 뇌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 결과 씹는 동작을 충분히 할 경우 뇌의 혈류가 7배나 증가한다고 밝혀졌다. 꼭꼭 씹는 동작이 마사지 기능을 해 기억력과 집중력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조개류의 황제로 불리는 전복과 대합도 마찬가지다. 특히 대합은 비교적 많은 양의 핵산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성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뇌세포가 감소하면 뇌에 리포피스틴이라는 물질이 쌓이게 되고 이것은 기억력 감퇴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핵산이 뇌세포를 회복시켜 리포피스틴의 증가를 방지한다.

해삼, 전복, 대합은 신선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찰떡 궁합이다. 하지만 과일향이 풍부한 샴페인도 이들 못지않게 조화를 이룬다. 샴페인의 풍부하고 숙성된 과일향은 해삼의 바다향, 전복과 대합이 가진 각종 해초향 등과 훌륭하게 어울린다. 각종 꽃향과 짙게 느껴지는 과일향이 특징인 ‘들라모트 브륏’은 해산물의 신선함을 배가시키고 이들의 씹히는 맛과도 잘 어우러진다.



등푸른생선과 오크풍 화이트 와인

꽁치, 고등어, 삼치를 비롯해 청어, 방어, 정어리 등 등푸른생선은 뇌세포 생성에 도움을 준다. 아이들의 두뇌와 시각, 운동신경 발달에 좋다. 노인들은 세포재생효과로 치매 예방에 탁월하다.

고등어는 뇌세포와 망막세포 기능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인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청어에 풍부한 아미노산의 일종인 티로신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켜 뇌 건강에 유익하다.

생선회엔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알자스나 독일의 리즐링 등 화이트 와인이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카트눅 에스테이트 샤르도네 같은 호주산 화이트 와인들은 대부분 잘 익은 과일과 오크 발효향으로 생선회 특유의 비린 맛을 최대한 줄여준다.

방어회나 고등어회처럼 기름지고 풍부한 맛을 내는 생선회의 경우엔 레드 와인을 곁들여보는 것도 좋다. 이탈리아 와인 ‘다빈치 키안티 클라시코’의 경우 부드럽게 입안에서 흘러내리는 타닌이 생선회의 맛을 적절히 뒷받침해 좋은 궁합을 자랑한다.



호두와 최고급 레드 와인뇌 운동과 관련해 가장 주목 받는 음식 중 하나가 호두다. 영국 영양 저널 발표에 따르면 나이 먹은 쥐들의 식단에 호두를 첨가하자 감퇴했던 원동력 및 인지능력이 되살아났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호두가 활성산소를 분해하고 신경세포 전달 및 새 세포 성장을 촉진해 뇌를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두는 레드 와인의 가벼운 안주로 손색이 없다. 다소 강한 타닌을 가진 레드 와인을 부드럽게 중화시켜 주고 최고급 와인의 경우 와인 본연의 아로마를 그대로 느끼게 해 준다. 뉴질랜드 실레니의 최고급 와인인 익셉셔널 빈티지 피노누아와 함께 할 경우 블랙베리와 자두향, 오크 숙성에서 묻어난 토스트향 등 등 복합적인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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