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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새 옷을 입히자

소주에 새 옷을 입히자

“생강, 다양한 과일, 허브의 향기가 가득하다.” 한 주류 비평가가 격찬했다. 공식 판촉 웹사이트에는 랩가수 제이지, 록스타 존 메이어 같은 유명인사들이 그 술이 든 유려한 용기를 높이 쳐들고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올라 있다.

게다가 그 술병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발하는 병”이다. 가격 30달러. 도대체 무슨 술이냐고? 다름아닌 ‘소주’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 소주가 아니다.

한국을 가장 잘 상징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술-. 단 몇 잔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어주고 모든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최고의 명약-. 바로 그 소주가 미국 등 해외에서는 명품 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판매된다.

그 문제의 브랜드 ‘다이쿠(Ty Ku)’가 창조해내려는 이미지는 소주에 가장 잘 어울리는 포장마차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에서 소주를 한 병에 1000원 조금 넘게 주고 사서 마시는 사람이 해외 여행을 하면서 사실상 똑같은 술을 마시려고 그 30배가 넘는 값을 치를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그러나 어찌 보면 소주는 보드카의 내력과 흡사한 면이 있다. 보드카도 소주처럼 여전히 러시아의 ‘국민주’이지만 마케팅 천재 군단의 개입 덕분으로 지금은 잘나가는 금융가, 연예인 패리스 힐튼의 아류, 인기 랩가수들이 즐기는 ‘명품 화주’로도 이름 높다.


보드카에게 배워라 ‘그레이 구스(Grey Goose)’ 같은 명품 보드카는 지금 브랜드 가치가 수십 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소주를 여피족이 좋아하는 수익성 높은 명품 술로 격상시키는 일은 보드카를 고급 브랜드로 끌어올리는 데 들어간 노력보다 쉬울지 모른다. 물론 소주라면 대충 이런 그림이 떠올려진다.

어젯밤 양복을 입은 채로 전철에서 세 자리나 차지하고 곯아떨어진 샐러리맨, 노래방에서 스스로 타고난 가수라 확신하면서 마이크를 독차지하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젊은 여성… 사실 ‘명품’ 이미지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드카에 절은 러시아인의 모습에 비하면 훨씬 애교스럽다.

한마디로 보드카는 과거나 지금이나 러시아 사회의 재앙이다. 자동소총 칼라슈니코프(AK-47)처럼 유명한 동시에 그에 못지 않게 위험한 러시아의 상징이다. 크렘린의 자문위원회에 따르면 보드카(문자 그대로는 ‘물(voda)’에다 축소형 어미 ‘k’가 붙어 ‘작은 형태의 물’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발생하는 인명 피해가 연간 50만 명에 이른다.

CIA 월드 팩트북에 따르면 러시아의 알코올 중독은 적어도 남성의 평균 수명을 59년(아이티와 같은 수준이다)으로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다른 문제는 가격이다. 러시아에선 0.5L 캔이 2달러 정도다. 하지만 파리, 도쿄, 몬트리올에선 숨이 막힐 정도로 호화로운 술집에서 프라다를 입고 돈을 물쓰듯하는 단골들이 포장은 훨씬 멋지지만 내용은 사실상 똑같은 보드카 한 병에 500달러 이상을 기꺼이 지불한다.

정의하기 어렵고 구현하기도 어려운 상류층 라이프스타일의 허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어떻게 그처럼 가장 수수하면서도 가장 파괴적이며, 무색·무미·무취한 보드카가 세계 최고의 브랜드화 성공 신화의 하나가 됐을까? 그 공로의 대부분은 광고회사 TBWA에 돌려져야 마땅하다.

TBWA는 보드카 브랜드 ‘압솔루트(Absolut)’의 상징이 된 병 모양을 디자인하고,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마저 감탄한 광고를 제작했으며, 한 병에 20달러짜리인 압솔루트의 매출을 1만4000% 끌어올렸다. 압솔루트의 브랜드화 전에 보드카는 상표 없는 제품으로 팔렸고 경쟁은 가격을 바탕으로 했다. 압솔루트가 그런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러면서 부잣집 2세들과 파티를 좋아하는 투자은행가들을 겨냥해 비싸게 가격이 매겨진 2세대 보드카 ‘수퍼 프리미엄’이 생겨났다.

그레이 구스는 수퍼 프리미엄 보드카의 최고 성공 사례다. 1997년 기업가 시드니 프랭크가 세운 지 바로 7년 뒤 20억 달러의 가격으로 바카르디(럼주로 유명한 주류 대기업)에 팔렸다. 단일 브랜드 거래 중 최고 기록이었다. ‘케텔 원(Ketel One)’ ‘벨베데레(Belvedere)’ 같은 다른 보드카 브랜드도 그 뒤를 이어 성공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무색·무미·무취’라는 보드카의 가장 큰 약점을 최고의 강점으로 바꿔놓았다.

순수함 그 자체라는 개념을 집중 홍보하고, 3중, 4중 심지어 100중 증류 방식을 도입해 일궈낸 성공이다. 실제로 ‘보드카 벨트(러시아를 포함해 핀란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비웃음도 명품 브랜드의 성공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들은 비싼 보드카 브랜드를 마시는 사람을 딜레탕트(호사가)라고 조롱한다.

핀란드의 한 열광적인 보드카 팬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브랜드 중 일부는 품질이 형편 없다. 싱크대에 부어 버려야 마땅하지만 상상도 못할 가격에 판매된다.” 그렇다고 미국 소비자들이 비싼 보드카를 마다할까? 그렇지 않다.

미국의 보드카 시장 규모는 연간 40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러니 유명인사 기업가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은 술을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독자적인 명품 보드카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다.


소주의 강점다이쿠나 경쟁사 ‘카이 TZR’ 같은 회사가 소주의 명품 브랜드화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소주도 보드카처럼 투명하며 거의 ‘무미’하다. 따라서 ‘순수함’의 관점에서 판촉하기가 쉽다. 그 외에 다른 이점도 있다. 다른 강한 술보다 도수가 낮다. 따라서 건강에 크게 해롭지 않다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릴 듯하다.

물론 한국의 베테랑 소주 애호가들은 그런 주장이 웃긴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도수가 낮으니 열량도 적다. 그래도 한잔에 70Cal 정도는 되기 때문에 소주도 많이 마시면 체중이 는다. 하지만 보드카와는 비교가 안 된다. 보드카는 한 잔에 100Cal가 훨씬 넘는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가장 흔한 샐러리맨의 위안품인 소주가 건강에 신경 쓰는 여성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팔릴 여지가 크다.

영국인 할머니 메리 행크스는 제주도 여행 중에 처음 소주를 마셔본 뒤로 늘 소주를 찬양한다. “첫 모금부터 즐겼다. 요즘은 종종 토닉 워터와 섞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글라스를 마신다.” 물론 행크스가 새로운 유행의 창시자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소주의 가장 좋은 점은 “숙취도 없다”는 점이라고 행크스는 덧붙였다. 아울러 소주의 역사도 재미있다. 중동 페르시아 지방의 아락주(쌀·야자 즙으로 만든 강한 술)에서 유래했다. 전통이 오랜 그 혼합주를 몽골족이 가져다가 700여 년 전 한반도로 들여왔다. 지금은 단순한 화학주로 알려진 소주가 실은 오랜 역사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요즘은 서양인들이 동양의 모든 면에 호기심을 갖는다. 한국인 해외 거주자도 많다. 따라서 그런 역사와 고대 아시아의 신비로움에 호소하는 소주 브랜드가 북미 시장에서 먹혀들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소주 역시 제조 비용이 매우 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보드카처럼 많은 이윤이 가능하다.

순수하게 전통적인 방법이 사용되지 않는다면(예를 들어 증류주인 ‘안동소주’처럼 말이다) 제조 비용은 최종 소비자가격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맑은 술이 미래다이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버드와이저 맥주를 생산하는 안호이저 부시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다이쿠 소주를 39개 시험 시장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한국 소주가 오래전에 미국에 먼저 진출했지만 일본 소주(쇼추)가 이미 고급화의 선수를 쳐 더 높은 가격을 매겼다.

다른 기업들도 이국적인 먼 세계에서 온 맑고 열량이 적은 술의 고급 브랜드화가 잠재력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 업체들이 보드카의 그레이 구스에 해당하는 수준의 명품 소주 개발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진로는 용량으로 따져볼 때 세계 최대의 독주 판매업체 중 하나다(2008년 소주 7600만 상자가 팔렸다).

현재 전통적인 ‘진로 소주’를 좀 더 친숙한 ‘참이슬’과 함께 미국의 한인 사회에 판매한다. 진로는 소주가 독주보다는 맥주·와인에 더 가깝게 법적으로 분류되도록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주의 식당들은 독주 판매 허가증이 없어도 소주 판매가 가능하다. 1998년 통과된 이 법으로 미국 시장에서 소주 판매가 크게 늘었다.

아울러 식당 주인들이 허가증이 필요 없는 한국식 모히토(쿠바의 럼주 칵테일)를 제조하면서 소주 칵테일도 인기다. 소주 칵테일 시장 구축에 크게 기여한 진로 같은 한국 회사들이 독주 발전의 다음 단계를 최대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과거의 보드카처럼 이제 소주도 대중의 술에서 수익성 높은 명품 술로 도약할 기회가 왔다. 일부 기업이 소주로 떼돈을 벌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회사가 그중 하나가 될까?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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