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명품 될 수 있나
하루아침에 명품 될 수 있나
스웨덴 대표 기업 볼보가 결국 중국 지리자동차에 인수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볼보 하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고급 세단 메이커 중 하나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이름도 낯선 중국 기업 손에 넘어가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지리자동차는 1986년 설립된 신생 기업이다.
설립 당시 냉장고 부품을 만드는 조그만 공장에서 출발한 지리는 1994년 오토바이 생산에 이어 3년 후에는 자동차 생산에 뛰어든다. 1998년 지리 브랜드의 차량이 첫선을 보였다. 2001년 중국 민영기업 중 최초로 네 가지 승용차 모델의 생산허가를 받는다. 지리자동차는 저가 소형 자동차를 중심으로 대형 국유기업과 외자기업이 군웅할거하던 시장을 파고들었다.
리슈푸 지리자동차 회장은 서민도 살 수 있는 값싼 자동차를 판매해 기존 업계에 대항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초기에는 도요타의 샤리 자동차 플랫폼을 복사해 외관만 약간 변형한 제품을 개발했다. 복사판 차량이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모으면서 지리는 저가 소형차 그룹에서 단숨에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하지만 자동차 핵심기술의 부족과 품질관리 미흡, 조직력 부족 등으로 후속 신제품 개발이 정체됐다. 리슈푸 회장은 이때 많은 외국인 기술자 수혈로 돌파구를 모색한다. 지리자동차 연구소에는 한국 출신 기술자를 비롯, 일본인과 독일인 기술자 등이 고용됐다. 그러나 외국인 기술자를 통한 기술이전과 핵심기술 개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부품조달에 있어서도 부품메이커를 지도하고 관리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일방적으로 부품업체를 교체하기에 급급했다. 차체금형을 자체 제조하지 못했고 현장 기술관리력도 미흡한 상황이었다. 차체금형은 주로 대만계 기업으로부터 조달하고 있으나 정밀도가 낮아 자동차의 문을 조립할 경우 문이 차체에 잘 들어맞지 않아 망치로 일일이 두드려 맞추는 경우도 발생했다.
또한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요 부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범용부품을 저장성 소재 향진기업(농촌소재 기업)에서 조달 받다 보니 납품 단가가 아주 낮은 대신 품질이 불안했다. 지리차는 값은 싸지만 내구성과 품질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시장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지리차를 한 번 택시로 쓴 회사는 두 번 다시 지리를 선택하지 않았고, 엔진 내구성이 부족하고 잔고장이 많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지리는 중국 내 자동차 판매순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내수경기 부양책과 주민 소득 증대로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지리는 판매신장률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이다.
리 회장은 급기야 저가차라고 굳어진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문제를 시급히 제고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에 따라 3년 전 런던 명물택시 블랙캡을 생산하는 망가니스 브론즈와 제휴해 택시를 조립 수출한다. 그러나 블랙캡의 수출만으로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없었고, 결국 해외의 고급 브랜드 인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때마침 볼보가 매물로 시장에 나왔고, 볼보 인수전에 사활을 건 것이다.
망치로 문 두드리던 회사지리자동차 입장에서 이번 딜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동안 지리 하면 생각났던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는 전환점으로 삼는다는 방안이다. 또한 볼보의 해외 판매망을 이용하거나 고급 기술을 활용해 프리미엄 세단을 지리 브랜드로 생산·판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례를 보면 중국 자동차 기업의 해외기업 M&A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독과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온실 속에서 커온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M&A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리의 볼보 인수계약은 이제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리 회장이 말했듯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우선 핵심기술의 확보가 당면 과제다.
볼보 인수와 함께 관련 핵심기술까지 제대로 손에 쥘 수 있다면 지리가 원하는 최상의 조합이다. 그러나 1999년 볼보 승용차 부문이 포드에 넘어갈 당시 핵심기술까지 모두 귀속된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언론을 통해서는 핵심기술 확보와 관련해 명확하게 나오는 내용이 없다. 만약 지리가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번 인수건은 그 의미가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볼보 내부의 기술이전에 대한 반발도 문제다. 이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기술력을 제대로 체화하거나 후속 발전시킬 능력이 있느냐 하는 점도 문제다.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채 단순히 해외 M&A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역량이 부족한 인수자의 입장에서 인수대상 기업을 컨트롤하기가 어렵고, 기술인력 이탈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국적 기업의 경영에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지리는 아직 이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리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경영 관리자 층이 30~40대가 주류이며 해외근무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국에서 볼보의 생산기반은 시급하다.
위기에 처한 볼보를 구할 구원투수는 리슈푸 회장이라기보다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이다. 2009년 볼보는 승용차 부문에서 6억53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10% 감소했지만 중국 시장에서만은 판매가 80% 급증하는 호조를 보였다.
볼보 브랜드 이미지 추락할 수도다음으로 브랜드 가치가 낮은 기업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유명 기업을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정의 효과가 발생하기는커녕 오히려 유명 브랜드 가치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5년 레노보가 IBM PC 부문을 인수한 이후 외국 고객들이 대거 등을 돌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1+1 > 2’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중국 소비자는 중국의 민족브랜드가 외국 회사를 인수하면 외국 브랜드가 아니라 중국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바뀌어 급속히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 발생해 구입을 꺼린다. 기대했던 상승효과 대신 지리의 저가 이미지로 인해 오히려 볼보의 평판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앞으로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소비자의 심리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글로벌 M&A건에는 자금부담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금부담은 향후 경영에 있어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며 마케팅이 여의치 않을 경우 자칫 모기업의 경영난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글로벌 경영관리 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볼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15억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리 회장은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2009년 지리의 전체 매출액이 50억 위안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융통의 지속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오사카시립대학 박태훈 교수는 “지리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브랜드 기업이고 정부의 강력한 지지가 뒷받침되겠지만 만약 볼보 인수가 실패로 끝날 경우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지리자동차는 그토록 갈망하던 볼보를 마침내 손에 넣었지만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더욱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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