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야, 형님들 나가신다
막걸리야, 형님들 나가신다
막걸리 바람을 타고 한국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나 막걸리만으로 우리 전통주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막걸리가 단기간에 요란하게 빚어낸 속성주라면, 명주는 세월의 침묵을 견뎌낸 장기 저장주다.
백일주의 칭호를 듣는 발효주나 오래 숙성시킬수록 맛이 좋아지는 증류주들이 그런 술들이다. 이들 술 속에 한국 술의 장점이 잘 스며있다. 우리 술의 전통 계통을 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진도 홍주, 한산 소곡주, 안동소주, 청주 대추술, 김천 과하주가 있고, 집안의 가양주로 전승되어 오는 경주 교동법주, 문경 호산춘, 함양 솔송주가 있다. 집안의 술이라 하더라도 동족촌을 이루고 있는 마을에 두루 퍼져있던 술이 많아 두 가지의 특성이 혼재된 술도 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적긴 하지만 사찰술과 궁중술의 계보를 잇는 술도 있다.
하동 정씨 집안에 전해오는 함양 솔송주
이 마을에 사는 일두 선생의 16대손인 정천상씨 집에서 문중에서 전승되어 오는 솔송주를 빚고 있다. 정천상씨의 부인인 박흥선씨는 시어머니 이효의씨의 뒤를 이어 솔송주를 가양주로 빚어오다가 1996년에 상품화했다.
2005년에는 박흥선씨가 농림부로부터 명인 지정을 받았다. 개평마을의 하동정씨 문중에 전해오던 술은 본래 송순주(松荀酒)였다. 그런데 먼저 이름을 얻은 김제 송순주, 대전 송순주가 있어서 솔송주로 이름 짓게 되었다. 솔송주는 찹쌀, 엿기름, 송순 또는 솔잎, 엿기름을 재료로 빚는다.
술을 두 번 담금해 빚는다. 먼저 찹쌀 2㎏을 씻어 물에 불린 뒤 물그스름하게 죽을 쑨다. 찹쌀죽이 식은 뒤에 누룩을 500g 정도를 섞어 항아리에 넣고 4일가량 발효해 밑술을 완성한다. 덧술은 찹쌀고두밥을 8㎏ 정도 쪄서 식힌 뒤에 담근다. 이때 그늘에 말린 송순과 엿기름을 함께 넣고 비빈다.
송순을 딸 수 없을 때에는 솔잎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송순이나 솔잎을 고두밥을 찔 때 함께 쪘으나 지금은 따로 넣고 있다. 송순이나 솔잎이 적게 들어가면 향이 떨어지고, 많이 들어가면 맛이 떫고 역겹다. 덧술할 때 물을 따로 넣지 않고 밑술로 반죽한다. 덧술한 지 10일이나 15일이 지나면 완성된다.
완성된 술은 용수를 박아 떠낸 뒤에 창호지로 2차 여과를 한다. 여과한 술을 후숙하면 맛이 더욱 좋다. 술맛은 솔잎에서 오는 쓴맛이 느껴지는데 13% 알코올 도수치고는 맛이 진하고 묵직하다.
솔송주를 증류한 알코올 40% 증류식 소주 담솔은 송홧가루향이 그윽해 마치 송화다식을 먹었을 때의 맛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송순을 넣은 술을 개평마을에서 두루 빚었으나, 지금은 정천상씨 댁 말고 달리 술 빚는 집이 없다. 솔송주 제조장은 개평마을 입구에 있다.
상당산성을 지키던 청주 대추술
상당산성은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둘레가 4.2㎞인데 복원 상태가 좋다. 492m로 해발 고도는 높지 않으나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청주 시가지와 무심천, 멀리 미호천과 증평평야의 전경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조선시대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던 청주 읍성의 보루이자 청주 주민의 피신처였다. 산성마을에서는 언제부터 대추술을 빚었다는 특별한 기록도, 구전되는 얘기도 없다.
산성마을 대추술이 맛 좋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산성마을이 청주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가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다가 1991년 동네 사람 22명이 조합을 결성해 대추술 제조 허가를 받아 술도가를 차렸다. 지금은 조합원 중 한 명인 서정만씨가 도맡아 성 밖에서 대추술을 빚고 있다. 대추가 많이 들어 있어서 부드럽고 향긋한 단맛이 강하게 돈다. 16도 약주로 진하고 묵직한데, 맛은 깔끔하다.
황희 정승 집안에 전해오는 문경 호산춘문경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갓집에서 빚는다. 종손인 황규익씨는 황희 정승의 22대손이다. 황규익씨의 고조부 때 집안은 6촌 안에 진사가 8명이었고 모두 천석지기여서 8진사 8000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자였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접대 술도 끊이지 않았고, 차츰 가세도 기울어 호산춘을 두고 ‘망주(妄酒)’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신선들이 탐할 만한 술이라 해서 ‘호선주(好仙酒)’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상주 목사는 이 집에 놀러와 호산춘에 취해 잠들었다가 밤에 요강을 들이켰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종가 며느리인 권숙자씨는 1991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호산춘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권씨는 술을 한 번에 한 재 정도씩 빚었다.
한 재는 밑술에 쌀 8되, 덧술에 쌀 16되 들어가는 분량이다. 물은 쌀의 분량과 똑같이 넣는다. 누룩은 밑술할 때 2되, 덧술할 때도 2되가 들어간다. 밑술할 때는 멥쌀로 고두밥을 찌고, 덧술할 때는 찹쌀로 백설기를 찐다. 밑술이 완성되는 데는 7일에서 10일 걸리고, 덧술이 완성되기까지는 20일이 더 걸린다.
1차 여과는 자루에 넣고 눌러서 3일이 걸리고 2차 여과는 공기압력을 넣어서 종이필터로 한다. 그리고 술을 30~60일 동안 숙성한 뒤 병에 담아 내놓는다. 호산춘에 들어가는 유일한 약재이자 방향재가 솔잎이다. 솔잎은 덧술할 때 백설기를 찌면서 함께 들어간다. 호산춘은 달지만 끈적거리는 맛은 없다. 누룩내가 스치지만 코끝에 오래 머물지도 입안에 잔맛이 오래 남지도 않는다. 알코올 18도로 발효주로서는 아주 높은 도수다.
여름을 넘기던 술 김천 과하주과하주(過夏酒)는 옛 문헌에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널리 빚어졌던 술이다. 1702년에 발행된 김천의 지리지 『금릉승람』에서 김천 과하주가 유명했다고 전한다. 1849년에 홍석모가 연중 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의 3월편에는 ‘술집에서 과하주를 빚어서 판다’고 소개하고 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경성 과하주가 좋았다고 했다. 김천시 남산동에는 오래된 우물 과하천(過夏泉)이 있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남산 정상 부근에 주택들로 둘러싸인 과하천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됐다. 우물은 지금 사용하지는 않지만 물은 마르지 않았다. 그 샘을 둘러싸고 있는 담벽에는 ‘金陵酒泉’(금릉주천)이라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1882년에 새긴 것이다. 그 당시 김천을 금릉이라고 부르고 과하천을 술샘(酒泉)이라 불렀다는 얘기다. 그 술샘, 즉 과하천 물로 빚은 술이 바로 김천 과하주다. 과하주는 보관성이 좋아 뜻 그대로 여름을 넘기면서 마시기 좋은 술이다. 과하주는 요즘으로 치면 폭탄주와 흡사한 술이다. 소주와 약주를 섞기 때문이다.
균이 살아 있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탁주나 약주는 여름에 쉽게 상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살균 보관해야 한다. 예전에는 살균 기술이 떨어져 보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탁주나 약주에 소주를 부어 보관하게 됐다. 알코올 도수가 23도를 넘으면 균이 살 수 없어 술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천 과하주는 김천문화원장을 지낸 송재성씨에 의해 재현되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 송강호씨가 대를 이어 빚고 있다. 송강호씨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이고, 농림부 지정 명인이다.
대밭 많은 담양 추성주담양의 옛 지명인 추성을 붙인 추성주가 있다. 담양 지방에서 전해오는 팔선주(八仙酒)의 다른 이름이다. 추성주 기능보유자인 양대수씨의 증조부가 명명했다. 약재가 많이 들어가는 술들은 사찰과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다. 추성주도 사찰 술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추성주 제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연동사가 있다.
살쾡이가 그곳에서 빚은 술을 훔쳐 먹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사찰술이 마을로 퍼졌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추성주를 증류하기 전 단계에서 갈래를 친 술로 댓잎술이 있다. 멥쌀 고두밥과 재래누룩을 8대2로 섞어 빚는데, 10여 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계수나무 껍질, 구기자, 오미자, 칡뿌리, 마뿌리, 솔잎, 인삼, 당귀, 대추에 댓잎이 들어간다.
대나무 숲이 울창한 담양에서 빚기 편한 술이다. 댓잎술은 댓잎을 엷게 우려낸 듯이 투명한 연초록색을 띤다. 댓잎술은 알코올 도수 12도와 15도의 발효주이고 댓잎 색깔이 스민 술이다. 추성주는 알코올 도수 25도로 증류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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