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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울지만…

주먹이 울지만…

▎판문점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남·북한 병사(왼쪽) . 수면 위로 인양된 천안함의 함미에서

▎판문점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남·북한 병사(왼쪽) . 수면 위로 인양된 천안함의 함미에서

4월 26일로 천안함 침몰 한 달을 맞았다. 선체 인양을 계기로 원인규명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남북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천안함 사건 직후 남북은 공히 무력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축포 발언 3일 후인 23일 “지금의 정세는 금강산 관광은 고사하고 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의 위기일발의 최극단에 와있다”고 강조했다.

남한 또한 군사적 응징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막상 가용한 군사적 수단이 별로 없다는 데 좌절감을 느낀다. 정부는 유엔 회원국이 무력공격을 받으면 개별적 또는 집단적으로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는 유엔헌장 제51조에 천안함 사건이 해당하는지를 검토해 왔다. 대청해전, 연평해전처럼 즉각적인 자위권은 인정되지만, 천안함 사건처럼 시일이 지난 공격에 발동하는 사후 자위권 행사가 인정되지 않을 여지가 많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유엔총회는 ‘자위권 행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을 경우 행사하되 과도한 무력행사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위급한 상황이 이미 종료된 마당에 자위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자위권을 발동한다 해도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1994년 평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되돌려 받으면서 ▶작전계획 수립 ▶연합작전주관 ▶연합정보관리 ▶연합위기관리 ▶C4I 상호운용성 ▶연합합동 교리 발전 등 6개 핵심사항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위임했다. 자위권 행사는 연합위기관리와 같은 6개 핵심사항에 해당된다고 학계에서는 본다.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은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한다. 미국이 반대하면 대북 군사조치는 불가능하다. 물론 객관적 조건과 무관하게 한국 내부의 정서는 이런 국제사회의 룰을 뛰어넘어 격렬하게 분출될 여지가 크다.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데 따른 앙갚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 같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방연구원 부원장 김태우 박사도 “한국의 군사적 대응은 선택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며 대응 타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앞서의 제약을 무시하고 남한이 북한에 군사적 대응을 하면 북한에 심각한 군사적 피해를 입힐 순 있다.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도 “우리도 쥐도 새도 모르게 하려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우리를 공격한 주체를 찾아 타격을 주거나 우리가 입은 만큼의 피해를 되돌려 줄 능력이 있다”고 했다. 이 경우 한국 정부가 겪은 당혹감과 충격을 몇 배로 되돌려 주게 된다. 당국의 입장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대응방식이 북한을 겁주고 국가안보를 지키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여줬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런데 이를 누가 알아 줄까? 김장수 의원에 따르면 “군사적 타격은 쌍방이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사항”에 해당한다. 해놓고도 했다고 못한다는 말이다. 김 의원은 “천안함 침몰에 따른 우리 측의 응징을 국민이 알고, 주변 국가도 알아야 소기의 효과를 보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말해 막연한 추측만 하게 할 뿐 우리의 선택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군사적 대응의 효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군사적 맞대응의 유불리를 따져도 당장 불안한 쪽은 한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분야의 한 전문가는 “천안함에서 북한의 지문을 발견했을 때 그 다음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북한 사후 대응 조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소행이라면 당시 서해에 합동군사훈련 중이던 한국과 미국의 군함의 눈을 피해가며 북한의 무엇인가가 천안함에 접근했다는 말이다. 또 어떤 수단을 가지고 초계함을 두 동강 냈다. “해군의 관심은 이런 데 더 쏠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 전문가는 말했다.

“군인들 입장에서는 북한이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더 중요하게는 나에게 그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북한이 천안함 공격과 같은 불장난을 한 번 더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천안함을 피격한 물체와 수량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 그렇게 되면 ‘일격필살’ 무기의 소행이라는 얘기다. 선체 밑바닥 또는 최근접 거리에서 폭발한 ‘수중비접촉 타격’이든, ‘버블제트’의 충격이든 일정한 거리에 떨어진 잠수함(정)에서 쏜 물체가 최고 시속 32노트(시속 57.6㎞)로 달리는 천안함의 바로 밑에 도달해 선체를 두 동강 낼 위치에서 터졌다는 말이 된다.

물론 여러 발의 무기를 동시다발적으로 발사해 그중 하나만 명중하고 나머지는 빗나갔을 수도 있지만 군함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던 사실은 분명하다. 정황을 종합해볼 때 결국 단 한 발 혹은 몇 발이 목표했던 범위에서 터졌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이 전문가는 “이를 북한의 잠수함이나 어뢰 운용 능력으로 간주한다면 재래식 무기중에서 적어도 잠수함이나 어뢰 분야에서의 균형을 흔드는 심각한 사태 일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능력을 갖춘 북한의 잠수함이 한국의 영해에 들어오는 걸 막을 방도도 별로 없어 보인다. 남측 해역에 들어온 북한 잠수함을 탐지할 능력은 50%미만이라는 사실이 국회에서 밝혀진 바 있다. 실제로 군함을 건조, 군에 납품하는 국내 유력 조선사의 관계자들도 자체 기술력에 견줘봤을 때 탐지율이 20~30%에 그친다고 말한다.

단순하게 봐서 북한이 맘만 먹으면 둘 중에 한 척은 한국의 바닷속을 휘젓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당국도 이번 사건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반도 군사 전략분야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중대한 도발과 위기에는 징후가 따르게 마련인데 이를 전혀 예측 못할 정도로 기습적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통상 군은 북한 동향과 관련한 상세한 리스트를 만들어 매 순간 기록한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의 징후를 예측하지 못함으로써 위기관리에 큰 구멍이 생겼으며,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 기자가 만난 국방, 외교안보 관련 취재원 중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가정할 때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인 홍정욱 의원은 “만약 북한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한반도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으며, 재발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같은 상임위의 송영선 의원의 경우 “북한 정권 창건일이 있는 9월, 노동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10월이면 북한이 또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도 경고했다.

북한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보는 전문가일수록 이런 우려를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책당국이나 관련 정치인들도 답답하기만 하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북한에 도발에 따른 효과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렇게 비합리적으로 도발하면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이번 사건에도 한국 경제는 이렇다 할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회복되는 등 건강성을 유지했다. 이종구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투자자들은 남북 분단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둔다. 과격한 보복조치로 긴장관계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면 미치는 파급효과가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생각하는 실행 가능한 효율적인 대응조치가 외교적 압박인 듯하다. 특히 중국을 통한 제재가 관심을 끈다.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도 “이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외교적 경로를 통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초기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대두되자 미국·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킨 전례가 있다.

“이 대통령은 외국과의 공조에 만전을 기하면서 북한에 외교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이번 상황은 중국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북한에 지렛대를 가진 거의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는 “중국의 대북한 입장 변화가 북한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 방법이자 군사적 도발을 막는 확실한 메시지”라고 했다.

하지만 게는 가재 편이라고 중국은 북한과 가깝다. 중국이 한국의 요구와 국제사회의 여론을 마냥 외면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 희망대로 북한을 다그쳐줄지는 미지수다. 외교안보연구원 김흥규 교수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는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한반도 안정, 북한 정권의 유지, 비핵화의 순으로 대북 정책 우선순위를 재확인했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에 남은 남한의 빈자리를 야금야금 차지하는 반사이익을 누린다.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북한의 체제보장과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10년 한반도 정세 보고서’는 2008년 북·중간 총 교역액이 27억 달러로 북한 총 무역액의 60%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중국은 기존의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만으론 늘어나는 교역을 감당하지 못해 올해 말까지 신압록강 대교를 건설키로 했다. 중국이 2003년 이래 1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북한에 쏟아부었다는 분석도 있다.

많은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밀월에 들어간 북·중관계를 소원해진 남북관계와 대비시켰다. 특히 송영선 의원은 “북한이 과연 한반도의 북쪽으로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내의 많은 사람은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남한이 북한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송 의원은 “지금 중국이 북한에서 왜 설치겠나? 바로 북한땅을 중국화하려고 들어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중도 실용 정책을 표방했는데 지금이라도 북한에 진정한 실용정치를 해야 한다”고 송 의원은 덧붙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30일 세계 엑스포 개막식이 열리는 중국 상하이를 방문, 후진타오 중국 국가구석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천안함 침몰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공조 방안이나 중국의 협조 방안이 모색되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설령 북한의 연루사실이 드러나더라도 한국이 바라는 만큼 중국이 단호한 대응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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