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메이징 캐서린 키너
뉴욕의 한 아일랜드식 선술집에 앉아 여배우 캐서린 키너와 이야기를 나눴다. 블러디 메리(보드카에 토마토 주스를 섞어 만든 칵테일)를 두 잔째 홀짝거리는 나에게 그녀가 묻는다. “집까지 바래다 주실래요?” 누가 마다하겠는가? 밖을 나서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건물 그늘을 따라 걷는다. 어느새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6년 전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 사연부터 시원찮은 연애담까지. 그녀는 가볍게 내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내게 소개해줄 여자가 없을까 궁리한다. 그녀가 연신 소리 내어 웃는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녀 특유의 거리낌 없는 웃음이다.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신기하다. 우리는 매디슨 스퀘어 공원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연자주색과 연녹색의 나뭇잎들이 하늘거린다. 이제 사진 찍을 시간이다. 그녀가 블랙베리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사진이 잘 나왔다고 흐뭇해 한다. 사진 속엔 내 얼굴만 나왔다. 캐서린 키너는 할리우드의 다작(多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2005년 이후 14작품(‘카포티’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인투 더 와일드’ 등)에 출연했고, 곧 발표될 작품도 5편이나 된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유명인사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떤 일들은 지극히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난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은 좀처럼 입밖에 내지 않는다.” 솔직한 말이다. 많은 배우가 자신의 자녀나 데이트 상대에 관해 얘기할 때 유난히 말을 아낀다.
하지만 키너는 친구 이야기를 할 때도 이름을 거론하는 법이 없다(이해할 만하지만 그녀가 브래드 피트나 제니퍼 애니스턴 같은 유명인사와 친분이 두텁기 때문에 기자로서는 매우 안타깝다). 시상식 같은 행사에 참석할 때도 좀처럼 데이트 상대나 여자 친구를 대동하는 일이 없다.
“혼자서는 빨리 움직일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몸을 피하기가 더 쉽다.” 요즘은 많은 사람이 트위터를 수시로 업데이트해 개인의 신상을 시시콜콜 공개한다. 이런 문화에서 스타로서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태도가 불이익을 초래하진 않을까? 메릴 스트립을 예로 들어보자.
스트립이 1983년 이후 아카데미상을 한번도 받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개인적인 면모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녀는 맡는 역할마다 철저히 몰입해 마치 그 인물이 된 듯 연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의 실제 모습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변신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덜한 듯하다.
키너는 할리우드 여배우로서는 최후의 성격배우이자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지막 스타일지 모른다. 감독 니콜 홀로프세너는 “만약 키너가 하퍼스 바자나 레이디스 홈 저널 같은 잡지에 나온다면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배역 제의도 더 많이 들어올 테지만 그녀는 그럴 맘이 없는 듯하다. 지금 이 길이 그녀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오늘도 키너는 색다른 길을 택했다. 맨해튼 이스트 사이드의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출발해 주변 건축물들을 감상하면서 걷는다. 캐나다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감독과 ‘카포티’를 촬영할 당시 기차를 타고 북극곰을 보러 갔던 이야기를 한다. 몇 블록을 걸으니 그녀가 ‘인터프리터’를 촬영했던 유엔 본부가 나온다.
그녀는 건물 내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게 보여주고 싶다며 안 쪽으로 향한다. 보안 검색대에 이르자 운전면허증을 찾으려고 핸드백 속을 뒤지지만 쉬 찾질 못한다. 그녀가 핸드백 속을 한참 뒤져 운전면허증을 찾아낸 다음에야 우리는 마치 진공상태인 듯 느껴지는 거대한 입구로 걸어 들어간다.
한 무리의 어린 학생들이 둘러서서 재잘거리고 깔깔댄다. 다시 밖으로 나온 뒤 키너는 신호등 파란 불을 놓치지 않으려고 뛰어간다. “저 술집까지 뛰어가요.”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간간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갑자기 말을 멈춘다.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그녀가 소리 내 웃으면서 내게 도움을 청한다.
꾸민 행동이 아니다. 주의가 약간 산만한 탓도 있지만(유엔 본부에서의 일을 생각해 보라. 혹시 그녀가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보거들랑 그녀에게 전화해 알려주라) 워낙 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니(평균 1년에 4편) 깜빡깜빡 할 만도 하다. 키너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때 캐스팅 감독의 조수로 일했다.
그리고 그 감독의 권유로 오디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1991년 출연했던 ‘자니 스웨이드’를 자신의 연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다. 당시 무명배우였던 브래드 피트와 공연한 기이한 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았던 톰 디칠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오디션을 받으러 나를 찾아왔다. 당시 우리는 싸구려 호텔에 묵고 있었다.”
키너는 피트를 상대로 대사를 읽었다. 그녀의 연기는 매끄럽지 않아 보였다. 디칠로는 “그녀의 연기는 마치 콘크리트 벽돌로 된 조그만 방 안에서 골프공을 치는 듯했다”고 말했다. “어디로 공이 튈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진 않았다.” 디칠로는 그 역을 다른 배우에게 맡겼다. 하지만 한밤중에 잠에서 깬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너에게는 자못 엉뚱한 듯하면서도 현실성이 느껴지는 색다른 구석이 있다”고 디칠로는 말했다. “사람들은 그런 점에 끌린다. 그들은 ‘저 여자도 나와 비슷하구나’라고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기준으로 보면 키너는 정말 보통 사람에 가깝다. 그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한다.
그녀 친구들은 그녀가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아나갈 만큼 돈벌이를 하는지 걱정하지만 자신은 이 일에 더없이 만족하노라고. 키너는 되도록이면 자신이 익히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려고 애쓴다. 스파이크 존즈, 찰리 카우프만, 그리고 1996년 ‘워킹 앤 토킹’을 시작으로 만드는 영화마다 키너를 캐스팅해온 홀로프세너가 그런 부류다.
홀로프세너는 “키너는 매번 성격이 다른 역할을 기막히게 소화해낸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세 딸의 이야기를 다룬 ‘러블리 앤 어메이징’에서는 그녀에게 그 네 사람의 역할을 다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화면을 너무 많이 쪼개서 편집해야 하고 이상하게 보일 듯해서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키너와 홀로프세너가 함께 만든 최근작 ‘플리즈 기브’는 두 사람의 합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부(富)와 노화, 아름다움을 성찰하는 이 작품에서 키너는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어머니이자 아내 역할을 맡았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친척으로부터 그들의 가구를 사들여서 되파는 일이 그녀의 직업이다.
“난 니콜(홀로프세너 감독)을 이해하고, 그녀는 날 이해하죠.” 키너가 말한다. 그때 마침 홀로프세너가 키너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온다. “재미있지 않아요?” 키너가 홀로프세너에게 말한다. “지금 인터뷰 중인데 당신 얘기 말고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 그녀의 태도가 싫증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행동마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럴까? 정식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녀는 이야기의 절반 정도를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녹음기에 녹음이 되지 않도록. “이 기계에 대고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녀는 마치 병원에서 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가능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겁 많은 환자와도 같다. 그녀는 버려진 뉴욕 타임스 한 장을 집어 들더니 내게 낱말 맞히기 게임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또 음식점의 메뉴를 훑어보더니 내가 전채요리를 주문한다면 웨이터에게 어떤 질문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중에 한가지 요리를 고르더니 자신이 그 요리를 주문할 경우엔 이렇게 묻겠다면서 시범을 보인다. “난 ‘이 요리를 베이컨 빼고 해줄 수 있나요? 아니면 미리 만들어놓았나요?’라고 묻겠어요.” 시간이 좀 흐른 뒤 그녀는 내 메모장을 보더니 아무 글씨도 써있지 않은 걸 보고 반색을 한다.
그녀는 그중 한 페이지에 사인을 한 뒤 ‘행운을 빌어요’라고 쓴다. 그러곤 스틱 피겨(사람의 머리는 원으로, 사지는 직선으로 간략하게 그리는 그림)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엔 행맨 게임(상대방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 단어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시작한다. “이건 2초면 맞힐 거예요.” 그녀가 말한다. 그보다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때쯤 난 인터뷰를 완전히 포기했다. 캐서린 키너는 자신의 사생활을 지킬 자격이 있다. 그녀가 애써 얻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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