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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품에서 호텔리어를 꿈꾸다

알프스의 품에서 호텔리어를 꿈꾸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스위스에는 50여 년 전통의 글리옹 호텔경영학교가 있다. 세계 3대 호텔학교 중 하나다. 졸업생은 90%의 취업률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도시 스위스의 몽트뢰. 제네바 공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리면 커다란 호수를 끼고 호텔과 별장이 늘어선 몽트뢰에 도착한다. 햇빛에 반사돼 온통 반짝이는 호수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레만 호수다. 호수 뒤로는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알프스 산맥이 위용을 자랑한다.

레만호 주변은 기후가 따뜻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부자들이 겨울에 많이 찾는다. 록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7월이면 유럽 최고의 재즈 축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구경하기 위해 전 세계 재즈 매니어들이 몰려든다. 도심을 벗어나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오르면 중세에나 지었을 법한 오래된 성들이 보인다.

이 중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곳도 있다. 현재는 대부분 호텔이나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쓰고 있다. 산 중턱에 이르자 숲 사이로 하얀 건물이 나타났다. 알프스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레만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알프스에서는 활짝 열린 나무 창 사이로 푸른 호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회색 유니폼 차림의 젊은 직원이 예약자 이름을 확인한 후 자리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 다른 직원이 나타나 음식 주문을 받았다. 이윽고 직원은 조심스럽게 물을 따르고 빵을 서빙했다. 능숙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게로 바게트 빵을 집을 때마다 빵이 미끄러졌다. 직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직원을 유심히 쳐다보던 중년의 신사가 다가와 집게 집는 방법을 고쳐줬다. 레스토랑 안을 돌아보니 유달리 서빙하는 젊은이가 많았다. 중년의 신사는 식당 안을 돌아다니며 직원들의 얼굴 표정,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며 노트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알프스는 일반 레스토랑이 아니다.

바로 글리옹 호텔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다. 흥미로운 것은 음식을 주문 받고, 요리하는 이도 학생이라는 점이다. 회색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은 새내기들이다. 아직 배우는 단계라 서빙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 중년의 신사는 교수였다. 교수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을 하고 실습을 돕는다.

실습과정은 모두 학점에 반영된다. 1학기와 3학기 재학생들은 의무적으로 4주간 실습과정을 거친다. 서빙과 요리뿐 아니라 식당 예약자 확인, 음악 선정, 설거지, 화장실 청소 등도 학생들이 다 한다. 레스토랑 운영에 필요한 세부 과정을 몸으로 익히는 수업이다. 이론과 실무를 함께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게 글리옹 호텔학교의 특징이다.

▎글리옹 학생들은 학교 안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한다. 사진은 주문 받는 모습.

▎글리옹 학생들은 학교 안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한다. 사진은 주문 받는 모습.



호텔 현장 감각 익히는 캠퍼스글리옹 호스피탤러티 경영대학교는 스위스의 레 로쉬 국제호텔경영대학, 로잔 호텔학교와 함께 세계 3대 호텔경영대학이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업 TNS가 200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글리옹은 최상위 1그룹에 속한다.

이 설문은 세계 호텔 업계 인사 담당 매니저 1400여 명이 순위를 매겼다. 순위에서는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코넬대학이 2그룹에 속했다.

1962년 문을 연 글리옹은 미국 교육인증기관인 뉴잉글랜드학교연합(NEASC)의 정회원이고, 스위스 정부뿐 아니라 미국 교육부에서도 정규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육 철학도 깊이가 있다. 글리옹의 교육 분야는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호스피탤러티(Hospitality)다. 호스피탤러티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글리옹은 호텔뿐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산업에 관심을 갖고 교육을 한다.

크리스티안 벡(Christian Beek) 글리옹 대학 CEO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늘게 마련”이라며 “글리옹은 호텔이나 관광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금융겱뵈胎?의료산업 등에서 필요로 하는 경쟁력 있는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고 들려줬다.

스위스는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발전한 나라다.
▎(왼쪽)글리옹에는 세계 80개국 학생들이 모여 지낸다, 6학기 전공을 정한 뒤에는 실제 비즈니스 현장처럼 프로젝트를 세우고 진행한다.

▎(왼쪽)글리옹에는 세계 80개국 학생들이 모여 지낸다, 6학기 전공을 정한 뒤에는 실제 비즈니스 현장처럼 프로젝트를 세우고 진행한다.

19세기 접어들면서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호텔이 늘어났다. 필요한 인력 수요도 급증했다. 스위스 호텔연합은 인력 조달을 목적으로 호텔 전문인을 양성하는 직업학교를 세웠다. 오랜 역사와 수많은 경험이 쌓인 스위스 호텔학교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다.

7학기제인 글리옹 학생들은 두 개의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는다. 1~3학기를 배우는 곳은 현장 중심의 교육을 하는 글리옹 캠퍼스이고, 4~7학기는 뷸 캠퍼스에서 호텔 경영 수업을 받는다. 몽트뢰에 있는 글리옹 캠퍼스는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학교가 산 중턱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있다. 학교 입구에 들어서자 호숫가를 따라 집들이 늘어선 몽트뢰 시내 전경이 보였다.

캠퍼스 1층 카페에서는 화이트 셔츠에 검은색 슈트를 잘 차려입은 학생들이 음료수를 마시거나 친구들과 얘기하고 있었다. 흔히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캐주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글리옹 학생들은 정장만 입는다. 복장 단속이 까다로운 편이다. 1층 로비 게시판에는 바른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을 사진액자로 만들어 걸어둘 정도다.

크리스티안 벡 CEO는 “옷차림도 교육과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옷차림도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깔끔하고 세련되게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생김새도 눈에 띄었다. 미국인, 유럽인,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낸다.

글리옹에는 세계 80개국 학생들이 모인다. 전체 1500여 명 가운데 스위스 국적 학생은 6%에 불과하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쪽 학생이 26%에 달한다. 학생에겐 자연스럽게 다양한 국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문화교류를 위해 다른 국적의 학생과 더블룸을 쓰도록 하고 있다.

캠퍼스 안에는 강의실, 도서관, TV라운지 바, 컴퓨터실, 게임장, 피트니스센터, 체육관 등 학교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기숙사는 매일 룸 서비스로 관리되고 피트니스센터, 게임장 등 편의시설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식당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스낵바를 비롯해 예약이 필요한 고급 레스토랑도 있다.

교수진도 탄탄하다. 상당수가 호텔경영학교에서 10년 이상 강의를 했고, 세계 유수의 호텔에서 지배인 등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 전체 교수는 약 85명. 1인당 약 17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신입생들은 한 학기 동안 현장 분위기를 익힌다.

글리옹 캠퍼스에서 만난 한국 학생 손나원씨는 “책으로만 익히는 게 아니라 현장 실습을 통해 배우기 때문에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고 들려줬다. “과목 중에 호텔 욕실 청소하는 방법이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청소를 해야 빠르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지 배우는 거죠. 이때 손님이 놔둔 물품의 위치는 정확히 기억해둬야 해요. 손님이 물건을 찾지 않도록 제자리에 놔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청소 외에도 침대 시트 가는 방법, 룸 서빙 등을 배운다. 데보라 프린스(Deborah Prince) 글리옹 대학 총장은 “훌륭한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서는 바닥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텔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사람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을 제대로 시키려면 본인부터 정확히 업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또 호텔의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하고 있어야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1년간 호텔 인턴십 과정 거쳐야1학기 동안 배운 내용은 2학기 인턴십 때 바로 써먹는다. 7학기 가운데 2학기와 5학기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 않는다.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호텔 인턴직원으로 일한다. 그동안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해 보고, 또 현장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수업이다. 6개월간 인턴으로 활동한 과정은 호텔 측이 채점해서 학교로 보낸다.

학교 관계자는 “2학기 인턴십 과정을 마치면 학생들 눈빛이 달라진다”고 들려줬다. “글리옹은 워낙 비싼 학비 때문에 유럽의 부잣집 자녀들이 많이 옵니다. 중동에서는 귀족 자제가 호텔리어가 되기 위해 찾아오기도 하죠. 다들 호텔리어의 화려한 모습을 기대하고 옵니다. 실제로 호텔에서 설거지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혹독한 현실을 배우게 되죠. 처음에 콧대 높던 학생들도 조금은 성숙해져서 학교로 돌아옵니다.”

글리옹의 한 학기 수업료는 한국 돈으로 2300만원. 여기에 기숙사비와 식사비, 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3600만원에 달한다. 인턴십 과정을 떠나는 2학기, 5학기를 제외하고도 졸업 때까지 필요한 돈은 약 2억5000만원이다.



포시즌그룹 등 75개 기업 채용 박람회글리옹에서 자동차로 30분을 달리면 뷸 캠퍼스가 나온다. 제2 캠퍼스가 있는 뷸(Bulle)은 목축업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세계적인 치즈 브랜드를 갖고 있다. 3학기 동안 호텔산업의 현장을 익혔다면 4학기부터는 경영학에 기초한 호스피탤러티 산업에 대해 체계적인 수업이 이뤄진다. 5학기에 다시 인턴십 과정을 다녀와야 한다.

이번에는 주방보조나 벨맨이 아닌 호텔 매니저 과정을 거친다. 학교 측은 세계 각국 호텔에 대한 보수, 숙소, 식사 제공 여부만 알려 준다. 호텔 지원서를 작성하고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도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한다. 6학기부터는 전공을 정해서 진로 준비를 한다. 전공 분야는 호텔, 마케팅, 인사, 금융 등 다양하다.

전공을 정한 뒤에는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을 한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뤄지는 호텔 입지 선정부터 오픈할 때까지 필요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수행하는 과제다. 철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을 익힌 글리옹 졸업생들은 취업률이 높다.

2008년 졸업생 중 94%가 취업에 성공했다. 졸업생들은 포시즌호텔, 인터콘티넨털호텔 등 세계적인 특급 호텔뿐 아니라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금융기관에 취업하고 있다. 학교 측에서는 취업알선센터(GPS)를 두고 학생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취업을 상담해 주고 채용박람회를 연다. 포시즌그룹, 인터콘티넨털그룹, 페어몬트그룹 등 전 세계 75개 기업이 글리옹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매년 글리옹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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