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원 ‘잭팟’ 대~한민국 마케팅
21조원 ‘잭팟’ 대~한민국 마케팅
2010년 6월 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 ‘삼바축구’ 브라질과 ‘무적함대’ 스페인이 숨 막히는 결승전(가상)을 치른다.
페르난도 토레스·다비드 비야·이케르 카시야스(이하 스페인), 카카·호비뉴·아마루이(이하 브라질) 등 이름만으로 상대를 벌벌 떨게 하는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수놓는다.
두 팀의 몸값만 해도 1조7256억원. 별들의 잔치다. 녹색 경기장은 어느새 격전장으로 돌변한다. 선수들의 몸짓에 10만 관중의 시선이 꽂힌다. 전 세계 400억 명의 시청자도 이들의 발걸음을 이리저리 쫓는다. 선수뿐이랴. 손익계산을 따지기 바쁜 FIFA는 연일 계산기를 두드리고 세계 각국은 국가 홍보 효과를 분석하기 바쁘다.
현대기아차·코카콜라·소니·비자카드·아디다스 등 월드컵 공식 후원사는 마케팅 전쟁을 펼친다. 월드컵 전(戰)쟁 속엔 전(錢)쟁이 숨어 있다. 스포츠는 강력하다. 만국 공통어다. 사회적·문화적·언어적·이념적 장벽을 몸짓 하나로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관중과 시청자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스포츠를 통해 국가 역시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스포츠 스타 한 명이 국가 브랜드를 끌어올린다’는 명제는 이제 낯설지 않다. 박지성이 보여줬고, 김연아가 이뤘다.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 하나만으로 통째로 바꾼 예도 있다. 스페인은 12회 월드컵을 통해 독재국가 이미지를 벗었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남아공 월드컵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곳곳에서 울린다. 예선을 통과한 32개국 축구대표팀은 예비 명단을 속속 발표한다. 한국도 그렇다. 바야흐로 월드컵 체제가 갖춰지는 거다.
기업도 서서히 월드컵 마케팅에 돌입한다. 한·일 월드컵 영웅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가 나오고 2002년 광화문의 추억을 교묘하게 되살리는 기업도 있다. 한국의 유일한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기아차는 월드컵용 아반떼를 출시한 지 오래다. 월드컵 특수에 단단히 대비하는 모양새다.
물론 이들 기업의 열띤 마케팅이 알찬 열매를 맺을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약에 달려 있다. 태극전사가 펄펄 날면 국가 브랜드가 덩달아 향상된다. 그러면 기업 이미지가 개선되고 내수와 수출이 늘어난다. 태극전사의 위대한 도전을 지켜보는 국민의 사기 또한 한껏 올라간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코노미스트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의 월드컵 우승이 유인하는 사기진작 효과를 3조6434억원’이라고 추정했다. “사고 칠 준비가 끝났다”는 허정무 감독의 호언장담처럼 태극전사가 축구 강국을 연일 무너뜨리면 온 나라에 붉은 물결이 일 게다. 곳곳에 태극기가 나부끼고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함성 ‘대~한민국’이 거리를 덮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 물결에 흠뻑 취할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지 않을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매듭이 풀리지 않은 현안 또한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월드컵 기간 중엔 캐나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숱한 쟁점 법안이 처리되는 6월 임시국회가 개최된다.
7·7 디도스 사이버 테러 대란이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날도 월드컵 기간 중이다. 천안함 특위도 그때 종료된다. 월드컵 축제에 취해 관심을 채 쏟지 못한 2002년 효순·미선양의 끔찍한 사망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다.
아침이 오지 않는 저녁은 없고 몇 날 며칠 장대비가 때려도 해는 어김없이 뜬다. 축제는 곧 막을 내리지만 대한민국 시계는 오늘도 돌아간다. 이를 간과한다면? 월드컵 축제의 뒤끝엔 부끄러운 자화상이 남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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