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시스템 매매가 주식시장을 쥐락펴락

시스템 매매가 주식시장을 쥐락펴락

▎5월 첫주,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 지수는 6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5월 첫주,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 지수는 6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4월 26일,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가 1만1205포인트에 달했다. 2009년 3월 이후 70% 가까운 상승폭이었다. 난관은 있었지만 6500에서 1만1205포인트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순조롭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곧 평온한 시장에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그리스의 재정난이 유럽 전체의 국가부채 위기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4월 27일, 다우 지수는 214포인트 하락했고 그 뒤 17 거래일 중 세 자릿수 등락을 기록한 날이 13일이나 됐다. 절정은 5월 6일의 ‘반짝폭락(Flash Crash)’이었다. 다수 지수가 몇 분 사이 998포인트나 미끄러졌다가 600포인트 이상 반등해 35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선에서 마감됐다.

2009년 봄, 경기회복이 시작된 이래 내내 잠잠했던 주가가 다시 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S&P 500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VIX는 ‘공포 지수’라고도 불린다. 5월 21일, 이 지수는 25% 급등했다. 무엇 때문일까? 시스템 거래자(HFT, 자동화 거래 시스템을 이용해 대량으로 빠르게 거래하는 사람들)를 지목하는 애널리스트들이 많다.

초고속 컴퓨터에 복잡한 매매 알고리즘을 설치해 시장을 샅샅이 훑으며 작은 가격편차를 찾는 컴퓨터 전문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눈깜짝할 새에 대량으로, 많게는 하루에 10억 주씩, 주식을 거래하는 방법으로 이들은 한 번 거래에 몇분의 1센트씩 수익을 남긴다. 시장 변동성이 클수록 거래소 전체에서 주식을 사고팔며 수익을 올릴 기회가 많아진다.

유동성이 바닥날 때, 다시 말해 사람들이 원하는 시점에 적당한 가격으로 주식을 거래할 수 없을 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다. “시스템 거래자들은 변동성을 먹고 산다. 유동성이 부족할 때 그것을 공급하는 거래의 수익성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트레이드웍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노즈 나랑이 말했다.

뉴저지주 레드 뱅크에 소재한 헤지 펀드이자 HFT 거래 업체인 이 회사는 하루 평균 어림잡아 8000만 주를 매매한다. “세 자릿수를 넘어설 정도로 변동성이 큰 날에는 돈을 많이 번다.”대외활동을 기피해 온 HTF 거래자들은 자신들의 빈번한 거래가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에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며 따라서 모든 투자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빠른 매매속도,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른 자동매매, 그리고 전무하다시피 한 규제환경이 맞물려 이 음성적 시장이 변동성을 부채질하고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HTF 거래자들은 오히려 변동성을 억제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정치인과 규제당국의 불안감은 커져간다.

“다음 금융위기의 씨를 뿌리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라고 테드 카우프만 상원의원(델라웨어주, 민주당)이 말했다. 워싱턴 DC에서 그만큼 HFT를 가장 목청 높여 비판하는 사람도 없다. 워튼 스쿨 출신의 MBA이자 조 바이든의 오랜 측근이었던 카우프만은 2009년 초 바이든의 의원직을 물려받자 몇 주도 안 돼 곧바로 엄격한 금융개혁을 추진했다.

2009년 8월, 그는 HFT에 초점을 맞췄다. 전자시장구조 전체를 ‘처음부터 철저히’ 검토하라고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촉구했다. 그는 “HFT는 고도로 복잡하고 규제가 전무하다”고 지난 3월 뉴스위크에 말했다. “지난번 비슷한 상황에서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우리를 믿어달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끝났다.” HFT 거래자들이 금융계의 새로운 악역으로 지목 받을지는 모르지만 현재 미국 전체 주식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그들의 시스템 매매 방식은 앞으로도 건재할 전망이다. 기본적인 투자전략, 다시 말해 회사의 실적에 기초해 주식을 사고파는 방식은 시장의 비효율성을 빠르게 찾아내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밀려났다.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아래 왼쪽 사진)는 최근의 주가 변동성을 촉발한 시스템 매매 알고리즘을 훔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아래 왼쪽 사진)는 최근의 주가 변동성을 촉발한 시스템 매매 알고리즘을 훔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이런 투자관행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새로운 지역(유럽·캐나다·브라질·인도 등)과 자산군(채권·선물·통화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금융규제개혁 법안에 따라 파생상품이 제도권 주식시장에서 매매된다고 가정할 때 HFT 거래자들은 물어보나 마나 파생상품도 매매하게 된다.

거래 속도도 나날이 빨라진다. 4년 전만 해도 1000분의 1초당 한 건이 거래되면 빠르다고 간주됐지만 요즘 앞서가는 회사들은 100만분의 1초에 거래를 해치운다. 지난 몇 주 동안은 HFT 업체들에 2008년 말과 2009년 초의 주가 폭락 이후 최대의 횡재였다. 당시 다우 지수는 2009년 3월 9일 6500선까지 주저앉았다.

2008년의 대공황 동안 대다수 장기 투자자는 큰 돈을 잃었지만 HFT 거래자들은 큰 이익을 챙겼다. “그때는 노다지를 캐던 시절이었다”고 나랑이 말했다. 2009년 3월 출범한 그의 HFT 업체는 올 4월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HFT 업체들의 태도도 그들의 대외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피해망상에 빠져 대외활동을 기피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블랙 박스’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비밀주의로 감쌌다.

블랙 박스는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자동 주식거래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은 언론을 거의 상대하지 않으며 사업방식도 최대한 숨긴다. 그러니 공매도자들이나 탐욕스러운 벌처(Vulture) 투자자들과 함께 시장에서 악당의 전당에 오를 만도 하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비밀주의에 치우쳐 제 무덤을 판 격이 됐다”고 나랑은 말했다.

HFT 업체들의 이미지가 크게 악화되자 나랑은 업계의 얼굴로 나서 CNBC와 PBS 방송에 출연하고 기자들을 초청해 사무실을 공개했다(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청바지 차림의 20대 물리학 박사들이 전부였다). “일반 대중은 우리를 의심한다”고 나랑은 말한다. “비밀주의는 뭔가 나쁜 짓을 한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해 여름 러시아 태생의 골드먼삭스 컴퓨터 프로그래머 세르게이 알레이니코프가 미국 연방수사국에 체포될 때까지 HFT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FBI 요원들은 뉴와크 공항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를 체포해 골드먼삭스의 주식거래 알고리즘을 훔치려 한 혐의로 기소했다. 언론은 이 뉴스를 잇따라 대문짝만하게 취급했다.

알레이니코프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근년 들어 새로 생긴 전자거래 기법을 이용해 HFT 거래자들이 거래 주문을 내기 전에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주문을 훔쳐보는지를 1면 기사로 소개했다. 금융 관련 블로그 세계에서 알레이니코프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열혈 추종자까지 생겨났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은행의 재산을 빼돌리는 사이버 시대의 로빈 후드로 그를 떠받들었다.

HFT가 이 사건의 후폭풍을 맞았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했다. 영국의 증권감독당국인 금융서비스청도 그 뒤를 따랐다. 뉴욕주 척 슈머 상원의원은 규제를 하지 않으면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콜로라도주의 에드 펄머터와 오리건주의 피터 드파지오 등 민주당 하원의원 두 명은 모든 주식거래에 0.25%의 거래세를 물리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그런 세금을 신설하면 고성능 컴퓨터가 없는 2류 투자자들의 부담만 커질 뿐이라고 비판했다. HFT 거래자들은 자신들이 시장을 더 기능적이고 공평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변명한다. 이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0년 전인 2000년 9월 HFT의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달, 아서 레빗 당시 SEC 위원장은 시장의 디지털화를 추진할 목적으로 증시의 ‘소수점화’ 시행을 지시했다. 주식과 옵션을 12.5센트 대신 1센트 단위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소수점화 이전에는 IBM 주식을 117~118달러에 매수하려면 117⅛달러, 117¼달러, 117½달러 등 여덟 가지 대안밖에 없었다.

매수주문과 매도주문을 일치시키는 일은 거래소의 역할이다. 양자간의 가격차는 스프레드(spread)라고 불린다. 소수점화 전에는 가장 작은 스프레드가 12.5센트인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1센트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스프레드의 감소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시장 조성자들, 즉 매수와 매도 호가를 모두 정해 거래를 촉진하는 개인이나 기업들, 그리고 그 스프레드를 이익으로 챙기는 쪽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소수점화 전에는 비교적 쉽게 이익을 챙겼다. 12.5센트의 이익을 챙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소수점화, 그리고 매도자와 매수자가 직접 매매하는 새로운 전자거래의 도입이 맞물려 시장조성자들의 여건이 불리해졌다. 일부 전통적인 월스트리트 기업은 시장조성 사업을 접은 반면 살아남은 기업들은 기술과 속도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결과적으로 거래량이 폭증했다. 미국의 하루 평균 주식 거래량은 1999년 9억7000만 주 선에서 2005년에는 41억 주 그리고 2009년에는 98억 주로 치솟았다.

쉽게 말해 이런 거래량 덕분에 미국 주식시장의 유동성이 세계 최대가 됐다. 투자자들은 즉시 적정가에 주식을 매수 또는 매도할 수 있다. 상당 부분 HFT 덕분이다. 이런 특성은 어느 때보다 2008년과 2009년의 주가폭락 때 가장 뚜렷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기 투자자들이 앞다퉈 주식 수백만 주를 매도할 때 HFT 업체들이 쏟아지는 주식을 받아냈다.

자기 자본의 손실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 과정에서 아주 작은 이익, 그야말로 주당 1센트의 몇분의 1을 남겼다. 문제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시장조성자들과는 달리 대다수 HFT 거래자는 시장의 질서유지를 도와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반짝 폭락’ 중 나랑을 포함한 상당수 HFT 거래자는 시스템을 꺼버렸다.

시장의 광란 속을 헤쳐나가며 주가하락을 다른 종목으로 확산시키는 대신 시스템을 꺼버리고 거래를 중단했다. “우리는 주가에 뭔가 착오가 발생했구나 직감했고 그래서 우리 거래의 미체결을 원치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장이 마감될 때까지 NYSE의 미체결 거래 건수는 1만9000건에 달했다).

쏟아지는 매도 주문을 받아주려는 사람이 없자 주가가 폭락했다. NYSE가 컴퓨터 거래를 1분가량 중단하고 거래소의 담당자들 손에 맡겼을 때(옛 시스템의 흔적이다) 그동안 이용자가 적었던 다른 전자거래 시스템으로 주문이 밀려들기도 했다. 주가가 일정 수준까지 떨어지자 손절매 주문이 발생하고 대형 기관투자가 다수가 주식을 무더기로 쏟아내면서 투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유동성이 고갈되자 변동성이 확대됐다. 거래를 중단하지 않은 HFT 거래자들은 기록적인 이익을 남겼다. “계속 거래를 했다면 큰돈을 벌었다”고 나랑은 아쉬워했다. 바로 이처럼 이익을 챙기고 주가폭락을 확산시키는 능력에 규제당국이 주목했다. 많은 사람이 HFT 거래자를 디지털 피라냐에 불과하다고 보게 됐다.

롤러코스터 장세를 조성해 이익을 챙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짝 폭락’ 이후 첫 규제의 대상은 HFT 거래자가 아니라 거래소였다. 거래소는 전자 시스템으로 전환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조각천을 기워 맞춘 듯이 어설프다.

지금껏 HFT 거래자들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벤 밴 블리엣 일리노이 공대 교수 같은 전문가는 GETCO나 트레이드봇 같은 대형 컴퓨터 거래업체들이 언젠가는 전력회사와 비슷해진다고 내다본다.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업계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아 시장을 거의 독점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력회사와 마찬가지로 HFT도 곧 규제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이런 전망이 확대되면서 HFT 업체들은 월스트리트 중견기업들을 본받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나랑은 SEC 당국자들과 모임을 갖고 HFT의 필요성을 알리는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규제 당국자들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두어 달 전보다 커졌다”고 그가 말했다. 진짜 걱정거리는 시장 그리고 갈수록 시장 지배력이 커지는 컴퓨터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엔데믹 1년…기업회의·포상관광 시장 되살아난다

2잠자는 보험금만 7000억원…혹시 나도 찾을 수 있을까

3해리스 vs 트럼프, 끝나지 않은 美 대선…투자 전략은

4동남아시아 유니콘의 현재와 미래

5성심당 대전역점 운영 계속한다…월세 4.4억→1.3억 타결

6 美 8월 PCE 물가 전년대비 2.2%↑…3년 6개월만에 최저

7NHN “페이코, 티몬·위메프 사태로 1300억원 피해”

8‘8억 차익 예상’ 이수 푸르지오 무순위청약에 14만명 몰렸다

9의협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현실감 없어”

실시간 뉴스

1엔데믹 1년…기업회의·포상관광 시장 되살아난다

2잠자는 보험금만 7000억원…혹시 나도 찾을 수 있을까

3해리스 vs 트럼프, 끝나지 않은 美 대선…투자 전략은

4동남아시아 유니콘의 현재와 미래

5성심당 대전역점 운영 계속한다…월세 4.4억→1.3억 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