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유능한 관리자 없소?
어디 유능한 관리자 없소?
세계를 휩쓴 대불황 속에 숨겨진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면 헤드헌팅(인재 스카우트)이 아닐까 싶다. 경제위기로 세계 전역의 산업과 서비스가 초토화되고 미국에서만 8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지금 주변에 일없이 노는 전직 관리자와 고위직 임원들이 숱하다.
값싸게 고용할 인재를 찾는 문제라면 정리해고의 돌풍이 지나간 자리보다 좋은 곳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런 횡재는 결코 흔치 않다. 세계 전역의 기업체들이 끔찍했던 지난 2년을 넘기고 이제 서서히 회복세로 들어서면서 능력 있는 임원과 관리자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다.
이직률이 높고, 경쟁사들이 스카우트 경쟁에 나서면서 임금이 치솟는다. 그런데도 임원실은 여전히 비어 있다. 헤드헌팅 전문업체 ‘맨파워’의 제프 조레스 대표는 올해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세계 전체 기업의 30%가 임원과 관리자 자리를 채우려고 안간힘”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인력 수요의 많은 부분은 경기침체에서 비롯됐다. 미국에선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감원을 실시한 기업들은 이제 성장의 재시동을 거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에 들어가는 시점이라 문제가 더 크다.
교육 붕괴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갈수록 저조해지는 수학·읽기·쓰기 성적, 수학에 근거한 과학 교육의 쇠퇴로 학위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래의 전문직 종사자들의 입지가 약화된다. 기업들은 그동안 불황으로 가려졌던 또 다른 현실에도 부딪힌다. 조직을 정비하고 부를 창출하고 세계에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상전벽해 같은 국제경제 지형의 변화 말이다.
미국에선 주택담보대출 회사에서 일했던 중간관리자 다수가 지금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직종보다 웹과 첨단기술에 기초한 물류, 생물공학, 의료, 정보기술이 떠오른다. 따라서 일류 과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전문가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그런 사람들을 구하기가 갑자기 힘들어졌고 돈도 많이 든다.
게다가 신흥시장이 약진하면서 과거에는 이력서의 겉치레로 간주됐던 소프트 스킬(적응력, 외국어 능력, 다문화 포용력 등 의사소통, 설득, 교감에 관련된 능력)이 이제는 관리자가 갖춰야 할 핵심 직무 능력이 됐다. 고용주들은 이력서가 해일처럼 밀려들긴 하지만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춘 관리자를 찾기는 무척 힘들다고 말한다.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중동, 심지어 아프리카의 신흥국가에서 이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 급속한 성장으로 인재 수요가 급증한 곳들이다. 중국의 경우 2020년까지 약 7만5000명의 관리자가 필요하리라 예상된다. 현재 중국 국내 인력시장에서 가용한 관리자는 고작 5000명이다.
인재 부족현상이 너무도 심각해 종말을 예측하는 도서의 터무니없는 하위 장르[예를 들면 ‘기로에 선 기업들(Companies at a Crossroads)’ ‘세계 인재확보 전쟁에서 이기는 법(Winning the Global War for Talent)’]가 서점의 비즈니스 섹션에 등장했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인재를 찾는 주요 기업들이 구인 광고만 내면 능력 있고 열정을 가진 지원자들이 꾸준히 몰려들었다.
국내에서가 아니라면 해외에서 인재를 구하면 됐다. 개도국의 뛰어난 전문직 종사자들은 부유한 선진국으로 진출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제 부와 권력이 이동하면서 제1세계의 매력이 빛을 잃어간다. 게다가 선진국의 국내 인재들은 다국적 기업이 요구하는 소프트 스킬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제는 관리자가 오라클이나 자바 같은 비즈니스 도구를 익히는 수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세계 각지의 경험과 다문화 팀을 이끌 능력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인재가 많지 않다”고 조레스가 말했다. 인재 부족 현상은 신흥시장에서 가장 심각하다. 중국에는 매년 약 5만 개의 다국적기업이 지점을 연다.
그들이 고급 인재 대다수를 흡수한다. 인도에서도 기업체가 연간 30%씩 늘어난다(경제성장률의 3배 이상). 미국의 대기업들이 감량 경영과 구조조정을 하는 한편 개도국의 대기업들은 몸집을 불린다. 인도의 타타 그룹, 중국의 컴퓨터 제조업체 레보노, 브라질의 철강회사 발레가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에 따르면 2015년 시점을 기준으로 세계 GDP에서 각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시아ㆍ태평양이 45%, 미국이 20%, 서유럽이 17% 순이다. 따라서 신흥시장의 인재 고갈 현상이 더심해질 전망이다. 임원이나 관리자 채용에 무조건 돈을 많이 쏟아붓는다고 반드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석유회사들이 뼈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훈이다. 10년 전 세계의 에너지 수요가 크게 떨어지자 석유회사들은 감원을 하고, 연구개발과 탐사 계획을 대폭 줄였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석유업계 전체가 엔지니어와 지질전문가를 구하려고 허둥댄다.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만이 예외였다.
페트로브라스는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원 훈련과 채용에 투자하며 버텼다. 페트로브라스의 인사 책임자 마리앙헬라 문딤은 이렇게 말했다.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 음료캔과 낡아빠진 부츠가 걸려나온다. 하지만 바닷가재도 잡힌다. 다행히도 바다에는 아직도 가재가 많다.”
그 그물을 가득 채우려면 궁극적으로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컨설팅 전문업체 매킨지 앤 컴퍼니에 따르면 중국에는 젊은 엔지니어가 130만 명이 있지만 그 중 다국적기업이 채용할 만한 기술을 갖춘 인원은 16만 명에 불과하다.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의 비제이 고빈다라잔은 “인도의 경우 ‘속을 채운 오리 요리’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했다.
“갖가지 사실과 기술적인 세부 사항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데는 뛰어나다. 하지만 추리, 협상, 정치적 수완, 팀으로 함께 일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아직 그런 마무리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일부 대기업은 그런 마무리 단계를 완성하려고 인재를 직접 양성하려 한다. 인도의 아웃소싱 선구 기업 인포시스는 2009년 대학 졸업반 학생 약 2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화물운송 전문업체 DHL에서 브라질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은 직접 대학을 설립해 다듬어지지 않은 인재들을 기업 지도자로 길러낸다. 동시에 인재 부족 현상은 제1세계의 기업문화도 바꿔놓는다. 다국적기업들은 과거에도 개도국에 진출했지만 주로 조립공장을 세우고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는 데 그쳤다.
고빈다라잔은 “과거엔 현지 인재가 필요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계화된 경제가 판을 바꿔놓았다. “지금은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이 혁신의 원천으로 자리 잡아가며, 연구개발도 선진국에서 해외로 이전되는 중이다.” 관리자들이 통역사를 데리고 외국에 세워진 지점에 투입되던 시대는 끝났다.
임원 채용 중개업체 하이드릭 앤 스트러글스의 존 우드 부회장은 “요즘은 기업 임원이 외교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갖게 하지 않으면서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 줄 알아야 한다.” 요즘 기업들은 이상적인 관리자는 동서의 완벽한 조화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곳에서 사업을 하든 인재가 필수적인 세계에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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