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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딥은 없다’

‘더블딥은 없다’

지난달 여러 가지 불행한 의미를 가진 표현들이 영어 어휘에 추가됐다. ‘톱킬(top kill: 높은 압력으로 시멘트와 진흙의 혼합물을 유정에 주입하고 이를 굳혀서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을 차단하는 방식이지만 실패했다)’ ‘고어 이혼(Gore divorce: 세상에, 그 믿음직한 앨 고어 부부가 이혼을 하다니!)’ ‘더블딥(double-dip: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 등이다.

경제전문 채널 CNBC의 5월 21일 ‘투데이’ 쇼에서 펀드매니저 출신의 변덕스러운 진행자 제임스 크레이머는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 확률을 25%에서 35%로 올렸다. 투자운용사 리서치 어필리에이츠의 로버트 아노트 회장은 “미국 경제의 두 번째 하강이 일어날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예측했다.

구글에서도 ‘더블딥’ 검색 횟수가 치솟았다. 그럴 만도 하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9년 4분기의 5.6%에서 올해 1분기엔 3%로 거의 절반이나 떨어졌다. 경제 조사기관 컨퍼런스 보드의 경기선행지수(LEI: 미국 경기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도 지난 4월 0.1% 하락했다.

2009년 3월 이래 첫 하강이다. 설상가상 그리스에서 시작된 국가부채 위기가 유로존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태세다. 하지만 올여름 더블딥을 원한다면 아이스크림 가게에나 가야한다(두 주걱을 떠서 올려주는 아이스크림 말이다). “더블딥 시나리오는 상당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세인트 루이스 소재 컨설팅 회사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의 공동설립자 조엘 프라켄이 말했다.

“극단적인 신뢰위기가 없다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물론 2008년 여름에 시작된 신뢰 위기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바로 그 점이 더블딥 우려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미국인들은 단 몇 가지 좋지 않은 수치만 보면 습관적으로 큰일이 났다고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엔 자동차에서 엔진역화로 나는 폭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9·11 후에는 맨해튼 남단을 지나가면서 자동차에서 그런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또 테러가 난 줄 알고 놀란다. 그처럼 경험의 여운은 무섭다. 주택시장에서 불길한 통계 수치가 나오거나, 유럽의 한 정부가 휘청거리거나, 다우지수가 갑자기 1000포인트 빠지면 미국인들의 마음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던 2008년 9월로 되돌아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다.

그러나 GDP 성장의 점진적 하락은 경기회복이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인들은 아주 긴 경기팽창의 시대에 산다. 지난 두 차례의 경기팽창은 각각 120개월, 92개월 동안 지속됐다.

그러나 분기별 GDP 성장률 도표는 톱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순환은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1마일(1.6km)에 6분의 속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전문 마라토너가 아니라 필자처럼 첫 절반은 마일당 7분의 속도로 달리다가 브롱크스 정도에서 힘이 빠져 느릿느릿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다시 속도를 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뉴욕 소재 경기순환연구소(ECRI)의 락슈만 애추탄 대표는 “언제나 경기침체 직후에는 성장률이 급속히 올랐다가 다시 줄어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ECRI의 장기 선행지표는 성장률의 하락세를 보여준다고 애추탄이 말했다. “하지만 경기침체 위험을 거론하려면 선행지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명확하고 지속적인 하락세가 나타나야 한다.”

컨퍼런스 보드의 켄 골드스타인도 이에 동의한다. 실업수당 신청 건수, 건축 허가 건수, 주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아우르는 LEI 지수가 지난 4월 분명히 하락했다. 하지만 3월의 1.2% 상승에서 하락한 비율이다. 골드스타인은 비교적 느린 성장 속도를 경기상승의 조짐으로 본다.

LEI 지수 내부를 들여다보면 경기회복이 산업 부문에서 서비스 부문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결국 사소한 악재에 민감하게 출렁이는 금융시장보다는 일자리와 소비자 지출에 주목해야 한다. “더블딥이 일어나려면 노동시장과 소비자시장에서 최소한 3개월은 꾸준한 하락세가 나타나야 한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예상치 않았던 충격파로 경제가 마비된다는 교훈을 주었다.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의 프라켄은 유럽의 금융과 국가부채 위기가 수출 감소와 달러 강세의 형태로 미국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다음해의 성장이 약간 타격을 받을 뿐 미국 경제가 완전히 탈선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더블딥의 우려는 주로 하락세를 예측한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미련 때문이다. 2007년의 과도한 낙관론에 크게 덴 경제전문가들은 지금도 반사적으로 몸을 사린다. 실제로 경기회복은 2009년 봄에 시작됐지만 그들은 고집스럽게 믿지 않았다. 하지만 더블딥이 올지 모른다는 조바심은 현 상황보다는 2년 전의 추억 때문에 생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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