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로큰롤 전성시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로큰롤 전성시대
비틀스는 오랫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적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의 뮤지컬 종사자들은 지난 반 세기 동안 뮤지컬 음악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음반 판매가 급감한 이유를 로큰롤(비틀즈의 음악 포함) 탓으로 여겨 록을 적대시했다.
그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아름답고 건전한 뮤지컬 음악의 시대가 가고 환각제 체험과 섹스 이야기가 난무하는 저속한 음악의 시대가 왔다고 개탄했다. 1960년대 히피의 반(反)문화 정서를 반영한 록 뮤지컬 ‘헤어’와 록 오페라 ‘렌트’ 등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지긴 했지만 이런 작품들은 예외에 불과하다고 생각됐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팝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몇 시즌 동안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오늘 밤이라도 당장 브로드웨이에 나가 아무 극장에나 들어가 보라. 펠라 쿠티의 아프로비트(아프리카 음악의 리듬을 따서 만든 음악), 아바의 유로팝, 프랭키 발리나 포시즌스의 두왑(리듬 앤 블루스 코러스의 일종), 존 캐시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창기 록, 포리너·저니·화이트스네이크 등 록 밴드의 히트곡들이 들려온다.
그 밖에 뮤지컬용으로 특별히 쓰여진 음악도 있다. 뮤지컬 ‘멤피스’의 소울, 토니상을 받은 ‘인 더 하이츠’의 힙합과 살사, 퓰리처 상을 받은’넥스트 투 노멀’의 록 음악 등이다. 요즘은 브로드웨이에서 한때 금기시됐던 온갖 스타일의 팝 음악이 브로드웨이의 전통적인 뮤지컬 음악과 공존한다.
과거 어느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최근 이 대열에 합류한 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펑크 록 밴드 그린데이가 2004년 발표한 동명의 록 오페라 앨범을 바탕으로 했다. 조지 W 부시 시대의 미국에서 살아가는 불만에 찬 세 젊은이가 섹스와 마약, 낡은 기타에 의존해 제 정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쏟는 이야기다.
감독을 맡은 마이클 메이어가 그린데이의 리더 빌리 조 암스트롱과 함께 대본을 썼다. 귀에 거슬릴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관객의 눈을 현혹하는 볼거리가 많은 뮤지컬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많은 전작과는 달리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하다(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소재가 너무 새롭고 어둡다).
또 음악을 맡은 톰 키트는 귀에 거슬리는 그린데이의 오리지널 음악을 브로드웨이 스타일로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뮤지컬은 사람들이 평상시에 듣는 음악과 브로드웨이에서 듣는 음악을 차별화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브로드웨이는 그린데이와 그들의 펑크 팝 오페라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지난 반 세기 동안 잃어버렸던 동시대 문화와의 공감대 형성에 한 발짝 다가섰다.
저속한 가사와 거친 사운드의 록 밴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어울린다는 사실은 뮤지컬이 예나 지금이나 저속한 예술 형태라는 점을 일깨운다. 요즘 뮤지컬의 엄청난 티켓 가격이 이 작품들의 저속한 본성을 감춰줄진 몰라도 완전히 지워 없애진 못한다. 뮤지컬은 원래 풍자극에서 유래했다.
또 늘씬한 각선미의 금발 무용수들이 일렬로 서서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킥라인 댄스와 저급한 희가극의 영향을 받았다. 뮤지컬은 사회 곳곳에서 시시각각으로 분출되는 다양한 에너지를 반영해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교만해졌다. 스티븐 손다임의 작품처럼 어두우면서도 재치로 빛나는 뮤지컬은 가뭄에 콩 나듯했다. 브로드웨이는 최근에 와서야 마침내 지난 50년 동안 유행했던 다양한 음악을 반영하게 됐다. 그 요인으로 두 가지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세대교체다.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는 쪽이나 티켓을 사고 관람하는 쪽 모두 록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다. (사실 새로운 관객의 등장을 실감케 한 분야는 록 뮤지컬이 아니었다. 어린이 TV 프로 ‘세서미 스트리트’를 바탕으로 만든 외설스러운 내용의 성인용 뮤지컬 인형극 ‘애비뉴 큐’가 브로드웨이에서 6년 동안 장기 공연됐다는 사실은 뮤지컬 문화의 중대한 변화를 시사한다.)
팝 뮤지컬이 번성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소재에 적합한 제작 방식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린데이의 음악을 이용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들렸을지 생각해 보면 그 동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사실 그다지 자연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 이디엇’이 최고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무대 디자이너 크리스틴 존스는 로큰롤 포스터로 도배된 높은 벽들에 수많은 TV 스크린을 설치했다. 마치 미디어로 건축된 정신병원 같다. “거짓말의 대폭풍” 같은 시대를 한탄하는 한 등장인물의 대사와 딱 들어맞는다.
조명 디자이너 케빈 애덤스(존스와 마찬가지로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작업에도 참여했다)는 색채의 폭발과도 같은 빛의 향연을 벌인다. 이 뮤지컬은 다른 작품들과 단지 달라 보일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만 해서 보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배우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니(존 갤러거 2세)는 대도시의 모험을 꿈꾸며 답답한 교외의 집을 떠난다. 그때 그는 그린데이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부르면서 어쿠스틱 기타로 반주를 한다. 교외에 그냥 남아 있는 조니의 친구 윌(마이클 에스퍼)과 전쟁에 나가는 터니(스타크 샌즈)도 스스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 부른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 덕분에 이 뮤지컬에서는 록 콘서트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절망과 소외감, 분노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대담한 볼거리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든다. 우선 노래 가사에 대사가 거의 들어있지 않아 감동이 덜하다.
또 ‘교외의 예수’로 자처하는 조니에게 좀처럼 애정이 가지 않는다. 그의 마약 문제나 여자 친구(레베카 네이오미 존스) 또한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가 왠지 익숙하게 들린다면 21세기 팝 뮤지컬 대다수가 ‘줄거리가 빈약하다’는 비난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 팝송이 어떤 캐릭터를 뒷받침하거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전통적인 뮤지컬 음악만큼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스테핀 메리트 등의 경우를 보라).
사실 팝 뮤지컬의 고충은 ‘쇼보트’(1927년 개막된 최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이래 모든 뮤지컬이 겪어온 어려움과 별로 다르지 않다.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가사와 곡조를 조화시키는 문제다.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같은 기막힌 작사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린데이의 브로드웨이 진출과 그로 인한 브로드웨이 음악의 영역 확장으로 기대되는 가장 반가운 소식은 제2의 젊은 해머스타인을 찾기가 좀 더 쉬워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타난 브로드웨이의 ‘바깥으로 눈 돌리기’ 경향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을 맺게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둔화될 기미가 전혀 없다.
뮤지컬에 문화의 다양한 면을 반영하고자 하는 최근의 브로드웨이는 어수선하고 시끌시끌하지만 흥미진진하다. 아니 바로 그 어수선함 때문에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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