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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_애그플레이션 비상…밀 자급률 높여야

양재찬의 프리즘_애그플레이션 비상…밀 자급률 높여야

▎양재찬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언론학박사) jayang@joongang.co.kr

▎양재찬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언론학박사) jayang@joongang.co.kr



요즘 손님이 늘어도 그리 반갑지 않은 음식점이 있다. 쌈밥집이다. 푸짐하게 한 접시 내놓아야 하는 쌈의 주종인 상추 값이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서울 시내 대형 마트에서 100g에 790원 하던 것이 1370원(8월 4일)으로 올랐다. 가격 상승률이 자그마치 73.4%다. 그래서 쌈밥집 주인도, 손님도 상추를 ‘금추’로 부른다.

상추만 그렇게 불리는 게 아니다. 무와 마늘 값도 크게 올라 ‘금무’ ‘금마늘’로 불린다. 채소를 중심으로 한 신선식품 물가는 이미 지난 7월 16.1% 올랐는데 금추와 금무, 금마늘 값이 반영된 8월에는 상승률이 훨씬 높아질 게다. 이미 올 6월 한국의 식품물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셋째로 높았는데, 이러다간 달갑지 않은 순위가 더 올라갈 것 같다.

치솟는 식품물가에 뒤질세라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발 물가상승)이 나타날 조짐이다. 국제 밀 가격은 2008년 8월 이후 2년 중 최고치로 치솟았다. 대두와 옥수수 가격 상승률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곡물 외에 코코아와 원당 가격도 들먹거린다.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는 것은 대표적 곡물 생산 지역의 이상기후로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다. 중국과 캐나다에는 폭우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는 가뭄이 심각하다. 130년 만의 지독한 가뭄에 큰 산불까지 난 러시아는 밀 수출 전면 금지령을 내렸다.

세계 3위 밀 수출국 러시아가 움직이자 인접 우크라이나도 뒤따를 태세다. 여기에 또 다른 밀 생산대국 카자흐스탄까지 옛 소련 이외 지역으로 밀 수출을 제한하는 도미노 조치에 동조하면 2007~2008년 방글라데시와 아이티에서 터진 식량 폭동이 재연될 수도 있다.

게다가 글로벌 투자 자금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곡물시장은 원유나 다른 원자재보다 거래 규모가 작아 자금이 조금만 몰려도 요동치는 속성이 있어 하반기 국제 곡물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국내 자급률이 높으면 견뎌내겠지만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지난해 26.7%로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곡물의 4분의 1 정도만 겨우 우리 땅에서 생산하는 실정으로 국제 곡물 가격의 급등세는 고스란히 수입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경제위기 극복 우등생 한국이 식량자급 열등생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밀(0.9%)을 필두로 옥수수(4.0%), 콩(32.5%)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이 워낙 낮기 때문이다. 예부터 쌀과 함께 주된 양식이었던 보리의 자급률도 40%대에 머문다. 쌀만 남아돌아 묵은쌀을 사료로 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정도다.

식품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판에 하반기에 국제 곡물 가격까지 뛰면 장바구니 물가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물가 불안은 MB정부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기치로 내건 ‘친서민’과 맞지 않는다.

처서가 코앞인데도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 무더위에서 보듯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는 일상이 되었고, 그만큼 곡물 생산에 차질이 생길 확률도 커진다. 이에 따라 곡물 수출국들은 수출세를 도입하거나 자국민에게 우선 공급하기 위해 수출 자체를 제한하기 마련이다.

2년 만에 데자뷰로 다가오는 애그플레이션.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식량안보를 잊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격이다. 세계 5위 곡물 수입국인 한국으로선 에너지 위기 못지않게 식량 위기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식생활 서구화에 따라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밀의 자급률을 높이고 해외 농업자원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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