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 삶이 너무 덧없습니다”…나는 이렇게 답했다
‘고통의 바다’를 행복으로 바꾸는 방법
시작은 ‘소확행’…‘원영적 사고’ 필요해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선생님은 왜 삶을 살아가시는지요? 사는 게 덧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일을 확인하던 어느 아침, 유달리 눈에 밟히는 메일 제목이 보였다. 수년간 내담하면서 우울증을 이겨내려 분투해 온 A씨의 질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담을 이어가다가도 끝내 세상을 등졌던 어느 젊은이가 생각난 탓일까. 삶 자체에 소위 ‘존재론’적인 의미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당황한 탓일까.
그럼에도 답장을 쓰는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A씨가 메일을 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슬픔, 아픔, 피곤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 당장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쳐서 고통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있다. 퇴근하다가 황당한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칠 수도, 부모님이 아프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인생의 기본값이 ‘고통’이라는 누군가의 말도, 심지어 인생 자체가 ‘고통의 바다’라는 모 종교의 가르침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고통의 바다가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물에 뜨는 법을 안다면 심연에 가라앉기보다 물 위로 솟구쳐 오를 수 있고, 수영하는 법을 안다면 신나게 바닷물을 가르고 나아갈 수 있다. 고통을 두려워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원영적 사고=긍정 마인드의 ‘끝판왕’
고통의 바다를 감당할 방법으로 두 가지가 생각났다. 우선 5년 전쯤 유행했던 ‘소확행’ 신드롬, 즉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드럼 스틱을 쥐면 가슴이 뻥 뚫려요’, ‘코인 노래방에 들르면 머리가 맑아져요’ 등 현실에서 고통을 느낄지라도 소박하게나마 자신만의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다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만 19세에 불과한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에게서도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필살기인 ‘원영적 사고’다. 요즘 젊은 세대들엔 원영적 사고가 새로운 ‘밈’(meme)이 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영적 사고는 장원영이 한 유명 베이커리에서 오랜 시간 빵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생긴 일이다. 대기줄 바로 앞 순서에서 기존에 만들어놨던 빵이 모두 팔렸다. 범인(凡人)이라면 빵을 쓸어간 앞 사람에게 눈을 흘기거나, 빵집에 늦게 도착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장원영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행운의 여신은 역시 내 편이야. 앞사람이 빵을 다 사서, 운 좋게도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야? 이거 완전 럭키 비키(장원영의 영어 이름)잖아!”라고 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의 결정판이자 최종판이다.
개인이 평정심을 찾기 위해 위협적 불안 앞에서 욕망을 왜곡, 수정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방어기제라 한다. 하버드의대의 조지 E. 베일런트 정신과 교수는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눴다.
먼저, 원시적 단계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성숙한 단계를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승화’(충동적으로 생겨난 감정을 생산적 형태로 변형), ‘동일시’(존경하는 인물의 태도와 행동을 따라 하며 닮아감), ‘유머’(불쾌한 감정을 익살스럽게 웃음 등으로 받아냄) 등은 성숙한 수준의 방어기제로 꼽힌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소확행이나 원영적 사고는 성숙한 방식에 해당한다. 소확행은 현실이 고통스럽고 어렵다는 점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그 안에서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원영적 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로 일컫는 ‘승화’를 닮아있다. 보통 사람은 물이 반쯤 차 있는 병을 보면서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장원영은 “연습 끝나고 물을 먹으려 했는데 다 먹기엔 많고 덜 먹기엔 적고... 딱 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럭키잖아!”라고 했다. 부정적일 수 있는 감정을 단순히 변형하는 데서 나아가 아예 긍정적인 방향으로 뒤집었다.
현실 속 스트레스, 이렇게 극복해 보자
소확행과 원영적 사고는 한국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7~2021년까지 지난 5년간, 우울증 환자가 68만명에서 91만명으로 34% 증가했다.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의 우울증 환자 수는 같은 기간 15만9000명에서 31만명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실제로 최근 내담자 가운데 학생, 사회초년생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 상담에서 토로하는 증상도 ▲무기력(우울) ▲무섭고 불안 ▲불면증 ▲집중이 안 되는 문제 등이다. 사람마다 증상이 나타나게 된 내력은 상이하지만, 증상을 만들어낸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현실 속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원영적 사고는 소확행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방어기제다. 소확행이 고통을 납득하는 데 그친다면, 원영적 사고는 현실 인식 자체를 바꿀 수 있어서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원영적 사고를 발휘한다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나쁜 상황으로 인해 다가올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베일런트 교수의 입장에서 원영적 사고는 가장 ‘생산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삶이 고통과도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의사인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나는 소확행으로 시작해 원영적 사고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나가고, 나아가서는 ‘고통의 바다’ 자체가 어쩌면 살 만한 곳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일의 답은 아래와 같았다.
“삶 자체에 의미나 목적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이더라도 일상에서 작게나마 즐거움을 찾아 느끼며 살아보려 합니다. 제 생각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핵심 같군요. 함께 찬찬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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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일을 확인하던 어느 아침, 유달리 눈에 밟히는 메일 제목이 보였다. 수년간 내담하면서 우울증을 이겨내려 분투해 온 A씨의 질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상담을 이어가다가도 끝내 세상을 등졌던 어느 젊은이가 생각난 탓일까. 삶 자체에 소위 ‘존재론’적인 의미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당황한 탓일까.
그럼에도 답장을 쓰는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A씨가 메일을 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슬픔, 아픔, 피곤함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 당장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지쳐서 고통을 느끼게 될 가능성도 있다. 퇴근하다가 황당한 사고를 당해 허리를 다칠 수도, 부모님이 아프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인생의 기본값이 ‘고통’이라는 누군가의 말도, 심지어 인생 자체가 ‘고통의 바다’라는 모 종교의 가르침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고통의 바다가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물에 뜨는 법을 안다면 심연에 가라앉기보다 물 위로 솟구쳐 오를 수 있고, 수영하는 법을 안다면 신나게 바닷물을 가르고 나아갈 수 있다. 고통을 두려워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원영적 사고=긍정 마인드의 ‘끝판왕’
고통의 바다를 감당할 방법으로 두 가지가 생각났다. 우선 5년 전쯤 유행했던 ‘소확행’ 신드롬, 즉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드럼 스틱을 쥐면 가슴이 뻥 뚫려요’, ‘코인 노래방에 들르면 머리가 맑아져요’ 등 현실에서 고통을 느낄지라도 소박하게나마 자신만의 확실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다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만 19세에 불과한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에게서도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반전시킬 수 있는 필살기인 ‘원영적 사고’다. 요즘 젊은 세대들엔 원영적 사고가 새로운 ‘밈’(meme)이 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원영적 사고는 장원영이 한 유명 베이커리에서 오랜 시간 빵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생긴 일이다. 대기줄 바로 앞 순서에서 기존에 만들어놨던 빵이 모두 팔렸다. 범인(凡人)이라면 빵을 쓸어간 앞 사람에게 눈을 흘기거나, 빵집에 늦게 도착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숨을 쉴 것이다.
하지만 장원영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행운의 여신은 역시 내 편이야. 앞사람이 빵을 다 사서, 운 좋게도 갓 나온 빵을 받게 됐지 뭐야? 이거 완전 럭키 비키(장원영의 영어 이름)잖아!”라고 했다. ‘오히려 좋아’라는 마인드의 결정판이자 최종판이다.
개인이 평정심을 찾기 위해 위협적 불안 앞에서 욕망을 왜곡, 수정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을 방어기제라 한다. 하버드의대의 조지 E. 베일런트 정신과 교수는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눴다.
먼저, 원시적 단계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성숙한 단계를 사용하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승화’(충동적으로 생겨난 감정을 생산적 형태로 변형), ‘동일시’(존경하는 인물의 태도와 행동을 따라 하며 닮아감), ‘유머’(불쾌한 감정을 익살스럽게 웃음 등으로 받아냄) 등은 성숙한 수준의 방어기제로 꼽힌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소확행이나 원영적 사고는 성숙한 방식에 해당한다. 소확행은 현실이 고통스럽고 어렵다는 점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그 안에서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다.
원영적 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로 일컫는 ‘승화’를 닮아있다. 보통 사람은 물이 반쯤 차 있는 병을 보면서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장원영은 “연습 끝나고 물을 먹으려 했는데 다 먹기엔 많고 덜 먹기엔 적고... 딱 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럭키잖아!”라고 했다. 부정적일 수 있는 감정을 단순히 변형하는 데서 나아가 아예 긍정적인 방향으로 뒤집었다.
현실 속 스트레스, 이렇게 극복해 보자
소확행과 원영적 사고는 한국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7~2021년까지 지난 5년간, 우울증 환자가 68만명에서 91만명으로 34% 증가했다.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의 우울증 환자 수는 같은 기간 15만9000명에서 31만명으로 두 배가량 급증했다.
실제로 최근 내담자 가운데 학생, 사회초년생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 상담에서 토로하는 증상도 ▲무기력(우울) ▲무섭고 불안 ▲불면증 ▲집중이 안 되는 문제 등이다. 사람마다 증상이 나타나게 된 내력은 상이하지만, 증상을 만들어낸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현실 속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원영적 사고는 소확행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방어기제다. 소확행이 고통을 납득하는 데 그친다면, 원영적 사고는 현실 인식 자체를 바꿀 수 있어서다.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원영적 사고를 발휘한다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나쁜 상황으로 인해 다가올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베일런트 교수의 입장에서 원영적 사고는 가장 ‘생산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삶이 고통과도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마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의사인 나조차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나는 소확행으로 시작해 원영적 사고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나가고, 나아가서는 ‘고통의 바다’ 자체가 어쩌면 살 만한 곳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일의 답은 아래와 같았다.
“삶 자체에 의미나 목적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삶이더라도 일상에서 작게나마 즐거움을 찾아 느끼며 살아보려 합니다. 제 생각에는 소소한 즐거움이 핵심 같군요. 함께 찬찬히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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