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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 ⑥ -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

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 ⑥ -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



패션 디자이너로 ‘한국의 샤넬 여사’라는 평가를 받는 지춘희씨는 늘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인상파 화가처럼 빛의 변화에 따른 색감의 조화에 민감하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다채로운 색채, 단정하면서도 정제된 실루엣 속에서 여성미를 살린 선이 고운 옷을 만들어 대중과 스타가 함께 사랑하는 디자이너로도 꼽힌다.

국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했고,2007년 삼성 래미안 인테리어 디자인에 참여했다. 특히 ‘시상식에서 지춘희 옷을 입은 여배우는 반드시 상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연예계에서도 인기가 높다. 심은하와 이영애가 지춘희 의상을 입고 드라마에 출연해 ‘옷 잘 입는 스타’로 이름을 높인 대표적인 배우다. 강수연·황신혜·김하늘·송윤아·김아중도 그의 팬이다.

지춘희씨는 대개 6개월마다 열리는 컬렉션과 패션쇼 사이에 틈나는 대로 여행하러 다니고 골프도 친다. 그러면서 머리를 비운다. 그는 “생각을 없애려면 딴 생각을 해야 한다”며 “환경을 바꿔야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그때그때 받은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작품에 쏟아 놓는다.

“패션은 생활이고 자연이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그에게 골프는 자연 속에서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다. 골프가 생활의 활력소를 넘

어 구원에 이르는 이유다.

그는 국내외 어디로 여행을 가든 골프를 빼놓지 않는다. 지나친 인공미가 거슬릴 때도 있지만 골프장에서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름 모를 들꽃에 절로 눈길이 간다. 그러다 보니 숙소나 여행지가 골프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를 미리 따진다. 특히 해외 골프장 가이드북을 거의 다 갖고 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세계 각지의 골프장을 경험했다. 스페인의 발데라마, 아일랜드의 발리부니언, 모나코·모로코의 골프장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는 1990년 무렵 친구가 골프 연습장을 열어 가끔 부르는 통에 골프를 시작했다. 구력은 꽤 되지만 스코어는 들쑥날쑥한다.

베스트 스코어는 77이지만 가끔 90대를 기록하기도 한다. 라운드는 바빠서 한 달에 한 번꼴이다. 그나마 컬렉션과 패션쇼를 준비하는 기간에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자연의 일부로 골프장을 즐겨 찾는 그는 제주 나인브릿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나인브릿지의 풍광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치켜세운다.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회원이기도 하다.

나인브릿지 초기 멤버로 자부심이 강한 그는 해슬리 나인브릿지의 캐디·직원 유니폼을 직접 디자인했다.

정통 프라이빗 클럽을 지향하는 해슬리 나인브릿지는 미국 오거스타골프장의 시설과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캐디 유니폼도 마찬가지. 오거스타의 캐디 복장은 상의와 하의가 붙어 있어 일체형 작업복처럼 보이는 스즈키다. 단, 오거스타에는 남자 캐디만 있기 때문에 여자 캐디가 많은 한국형으로 개량할 필요가 있었다.

지춘희씨는 이런 고민을 단번에 해결했다. 오거스타의 캐디복처럼 실용적이면서도 허리선에 약간 잘록하게 포인트를 주는 식으로 여성스러운 멋도 냈다. 디자인 비용은 한 푼도 받지않았다. 회원으로서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재능 기부’다.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일하는 캐디를 보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신경도 쓰인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편안하게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라운드를 하다가 캐디에게 불편한게 없는지 물어볼 때가 많다.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골프복도 직접 만들어 입는다. 그는 “제발 남이 만든 옷을 입고 싶다”고 농담을 하지만 자신의 옷맵시나 색감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잘 맞출 사람이 있을까.

“공부한다고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다”고 말하는 그는“자연스럽게 좋아하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설명했다. 디자인이란 감상하는 작품이 아니라 실용적인 제품이란 지론이다. 그는 오감(五感)이 발달해야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똑같은 된장찌개라도 누가 끓이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감성과 느낌도 강조했다. 그가 여행을 많이 다니는 이유다.

“사람들이 많이 입어야 좋은 옷”이라고 말하는 그는 사회 현상이나 트렌드에도 눈과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어떤 시대와문화적 흐름에 따라 가장 예뻐 보이는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틈 나는 대로 신문과 방송을 보고,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한다. 후학들에게는 열심히 생각하고 많이 만들어 보라고 강조한다.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자기 세계에 빠지진 말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저력을 믿는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판을 치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나 굴곡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명품 브랜드의 저변이 확대되면 될수록 인기가 시들해질 것으로 본다. “힘겹게 버티고 있다”고 말하지만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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