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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단과의 ‘풍자 전투’
fight fire with funny불은 더 큰 불이 아니라 물에 무릎 꿇어
밤이면 늘 소파에 앉아 알카에다가 웹에 올린 새 비디오가 있는지 검색한다. 이전엔 웨스트포인트의 테러대응센터 조사국장으로서, 지금은 학자 겸 안보 자문가로서 꼭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재미없는 일을 하며 미소를 머금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2008년 11월 어느 날 알카에다의 최고 이념가 아이만 알 자와히리의 인터뷰가 떴다. 늘 그렇듯 하얀 터번과 진회색의 수염이 돋보였다. 자와히리는 이스라엘, 조지 W 부시, 톰 프리드먼(뉴욕타임스의 중동 전문 칼럼니스트)을 차례로 비판했다. 그러다가 나, 아니 그 동안 내가 한 일을 도마에 올렸다.
알카에다의 공식 비디오는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웨스트포인트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언급했다(알카에다의 전략과 이념을 다룬 우리 보고서는 대중에 공개된다). 하지만 배꼽을 잡게 만든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자와히리는 시침을 뚝 떼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네는 예산을 물 쓰듯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내가 나서서 공짜로 오류를 바로잡아줘야 하나?” 카메라 뒤에서 누군가 사례를 묻자 오탈자도 있고 이름도 종종 틀리고 자신의 이력도 틀리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토록 잘났고 정보도 많지만 그들은 허점투성이다.” 그의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도 빈정댐은 안다. 자와히리는 인터넷에서 우리를 조롱하면 알카에다 운동이 명분을 얻는다고 믿는 게 분명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유머를 사용한다면 미국도 그러면 되지 않을까? 자와히리의 비디오가 웹에 뜨기 두어 달 전 내가 웨스트포인트를 떠났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개인 블로그에서 바로 그 전략을 시험해 봤다. 알카에다의 인터넷 나팔수들을 ‘지호비스트[jihobbyists: 성전(jihad)+취미가(hobbyists)]’ 또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전쟁광 ‘오르크족’이라고 놀려댔다. 성전을 외치는 여러 잡지에 등장하는 아부 압둘라 아사이프(필명)가 아직도 자립을 못해 어머니 집의 지하 방에 사는 마마보이일지 모른다고도 했다. 곧바로 반응이 나왔다. “난 혼자서 아주 잘 살아간다”는 항변이었다. 어느 알카에다 동조자는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화면에 자신의 미친 듯한 웃음 소리를 입혀 내게 살해 위협을 가하는 3분짜리 비디오를 올렸다. 올커니! 알카에다의 막강한 명성에 흠집을 내려면 그들을 놀려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전략이 최고다.
요즘 미국 정부는 곧잘 테러 음모를 사전에 차단하고 테러 세포를 색출한다. 하지만 기발한 발상과 영상을 멋지게 버무려 성전에 젊은 피를 수혈하는 알카에다의 이념을 약화시키는 문제에선 제대로 힘을 못쓴다. 이제 역발상이 필요하다. 알카에다 스스로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면돌파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알카에다의 선전에 솔깃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어설픈지 진실을 알려주면 그들의 이념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알카에다와 그들의 동조 세력을 위협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다. 이미지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알카에다이니 만큼 그들의 실상을 말해주는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라는 뜻이다. 이미 알려진 그들의 면모를 보라. 미 전함 콜호를 표적으로 한 자살폭탄 공격의 첫 시도는 그들의 보트가 좌초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2차 시도는 성공했지만 카메라맨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영상으로 담지 못했다. ‘신발 폭탄테러범’ ‘속옷 폭탄테러범’ ‘맨해튼 타임스 스퀘어 폭탄테러범’은 진짜 어설프고 멍청한 테러리스트였다. 그런 사실을 홍보하는 편이 지역 주민의 ‘민심’을 사려는 노력보다 성전주의를 더 쉽게, 더 싸게, 더 효과적으로 망가뜨릴 확률이 높다.
유머가 증오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일조한 유명한 전례가 있다. ‘괴짜 경제학(Freakonomics)’의 저자들에 따르면 KKK(백인극우결사단체)는 1940년대 라디오 드라마 ‘수퍼맨의 모험’ 시리즈로 방송된 ‘불타는 십자가의 결사단’ 때문에 급속히 무너졌다. 수퍼맨은 KKK와 풍자 전투를 벌여 그들의 ‘복면’을 벗겨낸다. 그로써 단원들의 사기가 떨어졌고 신규 가입자가 줄어들면서 KKK는 유명무실한 단체로 몰락했다. 알카에다에도 그런 전략을 쓰면 어떨까? 속담에도 있듯이 적이 자신의 발을 겨냥하면 방아쇠를 당기도록 놔두라.
[필자는 2004~08년 웨스트포인트 테러대응센터 조사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노스다코타 주립대 교수 겸 크로너스 글로벌사의 상무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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