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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 피부에 좋은 거, 아시죠?”

“콩이 피부에 좋은 거, 아시죠?”



잘나가는 연구원 가운데 상당수는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미쳤다’는 말을 듣는다. 박준성(35) 아모레퍼시픽 한방과학연구팀 연구원은 콩에 미쳤다. 박 연구원은 연구소 내에서 ‘콩 서방’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얼마 전 휴가를 가서도 산을 헤집고 다녔다. 가족에게는 하이킹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은 콩을 채집했다. 그는 “연구의 시작은 원료를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이 ‘날콩’에만 관심을 두는 건 아니다. 그는 발효된 콩을 더 열심히 찾아다닌다. 지난 3년 동안 전국을 누볐다. 같은 콩이라도 발효된 기간에 따라 효능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효 기간별로 콩 샘플이 필요했다. 그런데 발효해 5년 이상 숙성한 콩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강원도 정선 산자락 마을에서 10년 묵은 된장을 찾을 수 있었다. “산삼을 발견한 심정이 그런 것인지 싶었다”고 그는 당시 기분을 들려줬다.

그는 콩에 빠진 이유에 대해 “콩이 여자에게 좋으니”라고 말한다. 콩이 몸에 좋고 미용에도 좋다는 점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콩이 미용에 어떻게 좋은지 제대로 연구한 사람은 드물었다. 콩과 암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뤄진 것과 대조적이다. 게다가 한국의 콩은 연구 가치가 더 높았다. 서구와 달리 발효해 먹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콩과 발효를 연구과제로 선택해 경희대 한의학과 박사과정도 밟기 시작했다.



‘콩 연구’ 성과 설화수와 한율에 적용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박 연구원은 2008년 전통 콩 발효 식품에서 생리활성 성분을 발굴했다. 콩에서 피부 재생이 빨리 이뤄질 수 있는 성분을 찾아낸 것이다. 지난해에는 한방 포제법을 개발했다. 한방 포제법은 어떤 성분을 한약 달이듯 가공해 효능을 높이는 방법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인기 브랜드 설화수와 한율에 그가 개발에 참여한 기술이 쓰였다.

박 연구원은 여러 차례 외부 기관에서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주는 보건산업기술대전 우수상만 2회 이상 받았다. 얼마 전엔 세계적 인명기관인 미국 마르퀴즈의 ‘후즈 후 인 더 월드(Who’s Who in the World)’ 2011년판 등재가 확정됐다.

아모레퍼시픽은 그간 인삼, 녹차 등을 꾸준히 연구해 왔고 최근엔 콩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서는 연구원 340여 명이 여러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박 연구원을 인터뷰한 것은 결과에 따라 콩 또한 인삼, 녹차 등과 같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의 또 다른 핵심 소재로 부각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음은 박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화장품 분야에서 원료 성분 연구는 얼마나 중요한가?“지금까지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는 자연이었다. 개발의 초점도 여기에 맞춰졌다. 먼저 효능이 있는 자연 물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료를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지까지 연구해야 한다. 이것이 제품의 기술력을 좌우하게 된다.”

박 연구원은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약초원을 조성했다. 강원대 내 3300㎡ 규모의 약초원에서 200여 종의 국내산 한방 약재를 재배한다.



-그중에서도 왜 전통 원료를 강조하는가?“현대 기술이 첨단을 달리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가장 잠재력 높은 전통 원료 기술은 천연 발효 기술, 한의학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1000여 년 전에도 이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아모레퍼시픽이 소명이라 말하는 ‘아시안 뷰티’와도 부합한다.”



-아시아 기업이기 때문에 관심이 아시아에 치우친 것은 아닐까?“그렇지 않다. 서구의 유명 화장품 회사들도 우리의 연구 성과를 보고 전통 원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의 전통 원료는 차별화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연구 가치도 높다. 또 기본적으로 서양은 메이크업 위주로, 동양은 스킨케어 위주로 화장문화가 발달해 왔다. 기초제품의 경우 동양인이 세계적 수준이다.”





-콩을 전통 원료로 볼 수 있을까?“콩을 발효해 즐겨 먹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희소성이 있다. 된장 먹고 체하는 사람 없다. 상처 나고 덧난 곳에는 된장을 발랐다. 증명되진 않았지만 우리가 체험으로 알고 있는 콩의 좋은 성분을 미용에 집중적으로 활용을 방안을 찾는다면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 마르퀴즈 후즈 후 등에 등재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연구 성과 때문이다.”



-비슷한 제품이 이름만 바꿔 가격만 비싸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연구자 입장에서 화장품 기술은 얼마나 발달하고 있는가?“화장품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원료다. 화장품 회사는 또 효능 유지를 위한 특수 용기 개발, 특정 피부 증상 개선을 위한 연구, 유효 성분의 안정화 등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화장품 기술이 좋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피부 상태에 맞는 제품을 골랐는지가 문제다. 20대의 매끄럽고 환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100만원짜리 고기능성 안티에이징 크림을 사용했을 때 그 기능을 충분히 느끼긴 힘들다.”



-앞으로 화장품 연구 트렌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최근에는 화학, 생명공학 등 인접 분야의 기술뿐 아니라 물리학 등 이종 분야의 첨단기술 융합도 시도하고 있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웨이츠 교수와 공동 연구 끝에 피부세포 모사체 화장품 원료도 개발한 바 있다. 물리학 기술을 사용해 피부세포와 유사한 성분을 개발하는 데 물리학 기술이 사용됐다. 이처럼 화장품 연구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어떻게 자신이 연구 성과를 낼 것인지가 문제다. 화장품 분야도 ‘가장 먼저’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 때 화장품 연구원으로서 미래가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길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 연구원들끼리 잘 하는 얘기가 있다. ‘고전이 신상(신상품)’이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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