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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정치 이은 인생 3막은 ‘사회 공헌’

사업·정치 이은 인생 3막은 ‘사회 공헌’

  

김병태 1937년 진주 출생

 성균관대 약대

 1973년 선경제약 설립

 1996~2000년 국회의원(15대)

 1985년~ 한올바이오파마 회장

 사회복지법인 한올 생명의 집 이사장

소설가 최인호가 쓰고, 하길종 감독이 영화로 만든 ‘바보들의 행진’(1975)과 ‘병태와 영자’(1979)는 동시대를 산 청춘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작품이다. ‘바보들의 행진의 주인공’이기도 한 병태와 영자는 요즘 말로 하면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김병태 한올바이오파마(구 한올제약) 회장에게 ‘병태와 영자’는 더 남다르다. 그와 평생을 같이한 부인의 휘자(諱字)는 배영자다. 김 회장은 지난 5월 부인을 먼저 보냈다. 사람의 생이 연극이라면 김병태 회장은 3막에 서 있다. 나이로 따진 게 아니라 삶의 궤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의 1막은 사업가, 2막은 정치인, 3막은 사회복지 사업가다.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그는 1961년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동시에 그는 외국계 제품에만 국민 건강을 의존하는 현실을 봤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다. 1973년 그는 선경제약(현 한올바이오파마)을 설립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김 회장은 “우수한 의약품을 개뱔해 한국 제약의 기술 수준이 다국적 기업의 속국 위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들려줬다.

물론 처음부터 당장 신약을 개발할 여건은 아니었다. 그는 효능이 뛰어나고 가격 부담이 적은 의약품을 찾아 일본과 유럽 등을 오가며 수많은 파트너를 찾아 다녔다. 김 회장은 “돈을 벌고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 기업인의 본분에 앞서 나는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한올바이오파마는 현재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3건의 임상을 진행 중이고 바이오시밀러와 기능성 복합신약 등을 개발해 판권을 해외에 판다. 김 회장은 2008년 5월 차남인 김성욱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겼다(장남은 김성수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다).

사업가의 길을 걷던 김병태 회장은 1996년 인생 2막을 연다. 정치인의 길이다. 그는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평소 서민 복지에 관심이 많았던 김 회장은 국회 보건복지 분과에서 주로 활동하며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병태 의원은 15대 국회 회기 중 139건의 법안을 대표 또는 공동 발의했다.

이 중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한 법안을 제외한 72건이 법률 제·개정에 적용됐다. 요즘은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가 ‘남발’ 소리를 들을 만큼 빈번하지만 당시만 해도 달랐다. 17대 국회 때 7300건의 의원 법안이 발의된 반면 김 회장이 활동하던 15대 때는 1140건이었다.

그가 낸 대표적 법안은 ‘무갹출 노령법안’. 이 법안은 국민연금제도 도입 당시 이미 고령이 돼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매월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밖에 그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법안,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안, 노인보건법안, 노인복지중계법 개정안, 아동복지법 개정안,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법 개정안 등을 대표 또는 공동 발의했다.

의원 시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했다”는 김 회장은 15대 국회 4년 연속 입법 발의 최다 의원,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의정활동 최우수 의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법률 제조기’로 불렸다.

사업가로, 정치인으로 열정을 바쳐 살던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인생 3막을 연다. 사회공헌 활동이다. 2002년 김병태 회장은 사재를 털고 회사 기부금을 출연 받아 경상남도 고성에 ‘한올생명의 집’을 설립한다. 부양해줄 자녀가 없거나 생활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과 장애우를 위한 요양시설이다. 그는 방치된 폐교를 구입해 최신 건물로 새로 짓고 운동장에 잔디를 깔았다. 그는 그곳에서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며 사회복지 사업에 더욱 빠져들었다.

“병세가 위중한 노인 분이 계셨어요. 아들이 조그마한 철공소를 다니며 인천에 살았는데 임종이라도 하게 해야 할 것 같아 연락했죠. 그랬더니 고성까지 갈 차비도 없고 회사를 빠질 수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그 말에 너무 화가 나 우리 직원을 보내 설득해 데려왔어요. 아들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손을 꼭 붙들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누워 계시던 아버지도 조용히 눈물을 흘리더군요.”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회장은 이후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쳤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마천동에서 매주 하는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과 사랑의 도시락 배달 봉사가 대표적이다. 사랑의 도시락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밑반찬과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활동이다. 대부분 그 밑반찬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극빈 독거노인들에게 배달된다. 김 회장은 “빈 반찬통을 회수할 때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일주일 잘 먹었다’는 쪽지를 보면 보람도 느끼지만 더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오히려 미안할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이 활동은 마천동 지역 주민이 자원봉사로 반찬을 만들고 한올바이오파마 임직원이 매주 2명씩 자원봉사로 배달을 한다. 김 회장은 요즘 새로운 일을 준비한다. 새 재단법인 설립이다. 김 회장은 “다문화가정과 새터민(탈북자)을 위한 장학사업, 무료급식, 의료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이라고 설명했다. 재단 이름은 사연을 모르면 재미있고 알면 애절하다. ‘영자와 병태 바보들의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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