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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후계 구도 베일 벗다

김정일의 후계 구도 베일 벗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번 주 열리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3남 김정은을 주축으로 하는 후계 구도를 공식화할 전망이다. 김정은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외부에는 생김새조차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숨어 있다. 김정일의 후계 문제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는 실력자 장성택(64)을 말한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당분간 김정은보다 장성택을 더 주목해야 할 듯하다.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은 지난 2년 동안 김정일의 오른팔 역할을 해왔으며,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후 섭정에 나서리라 전망된다. 김정일은 1980년 노동당 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식 발표된 뒤 14년간 아버지의 통치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김정은의 권력 승계 계획은 그보다 훨씬 급하게 진행됐다. 스위스에서 교육 받은 김정은은 권력기반이나 카리스마 측면에서 아버지 김정일과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영향력이 막강한 북한 군부에서 어떤 역할도 맡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집권 초기엔 명목상의 우두머리에 불과한 존재가 될 듯하다.

그 공백을 메워줄 인물이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지난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해 북한의 제2 권력자가 됐다. 북한의 중간 직급 공무원 출신인 탈북자 김광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국방위원회와 노동당은 북한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통치기관이다. 장성택은 양쪽 기관 모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역시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에 따르면 장성택은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세 명의 측근 중 한 사람이다(나머지 두 사람은 김정은과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다). 장성택과 김경희는 지난 한 해 동안 김정일을 누구보다 자주 수행했다. 장성택은 올 1~6월 김정일의 현지시찰 77회 중 44회를 수행했다. 그는 또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술친구라는 소문이 있다.

서방에는 안 좋은 소식이다. 대다수 안보 분석가가 장성택이 서방과 대립하고 국민을 억압하며 경제 경영이 부실한 김정일의 정책을 유지하리라고 내다본다. 저명한 북한학자 안드레이 란코프는 “지금까지와 유사한 상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약간의 긴장완화는 있을지 모르지만 전면적인 개혁은 없을 것이다.” 북한 보수파의 기둥인 장성택은 중국식 경제개혁이 당 고위간부들이나 자신에게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현재 북한 정부가 ‘영명한 동지’로 선전하는 김정은과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지난 3월 46명의 한국 해군을 희생시킨 천안함 폭침 사건을 주도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북한의 정치 상황에 전혀 변화가 없지는 않을 듯하다. 국영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 상류층까지도 사설 장마당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남기가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정치권의 권력다툼도 한층 더 치열해졌다.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하기 바로 며칠 전 그의 라이벌이었던 이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장성택의 부위원장 승진을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회의가 특별회의 형식으로 느닷없이 진행됐다는 점 역시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그만큼 치열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과 오극렬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몇몇 장성이 장성택의 승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알려졌다.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비밀경찰을 포함해 국내 보안병력을 공식적으로 통솔한다. 최근 사설 장마당과 밀수 단속을 위해 강화된 세관 관리와 국경경비도 그의 소관이다. 하지만 실제 그의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 그는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을 일으킨 후 국정이 불안했던 시기에 최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인물로 추측됐다. 그리고 현재 북한 정권의 계획대로라면 그는 김정은이 당 간부들을 제어할 힘을 기를 때까지 막후 통치자 역할을 하게 된다.

장성택은 대학 시절 연인인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1972년 결혼한 이후 노동당에서 고속 승진을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은 두 사람의 관계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김정일은 장성택을 좋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극동문제 분석가로 일하던 헬렌-루이스 헌터에 따르면 장성택은 1970~80년대 북한 정부 차원의 마피아 공작을 구상했다. 외교관들을 통해 가짜 담배와 마약 등 불법 상품과 위조 달러화를 밀수하는 공작이었다. 보스턴의 서퍽대에서 북한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마이클 매든은 북한 정권이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당 간부 특혜사업(이 사업계획 역시 장성택이 완성했다)에 썼다고 말했다.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당 최고간부들에게 명품 자동차와 수입 주류, 호화 아파트를 상으로 내렸다.

하지만 북한 정치인의 운명은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 장성택은 2004년 초 김정일 위원장의 눈 밖에 난 적이 있다. 일각에선 그 이유로 낭비벽이 심한 개인지출을 꼽았다. 장성택의 높아진 위상이 김정일의 위상을 능가할 위험성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장성택은 18개월간 공직생활에서 물러났다가 당의 중간 직급으로 다시 정치무대에 복귀했다. 그 후 장성택은 김정일 권력 세습 계획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 68세인 김정일은 당뇨병과 뇌졸중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따라서 조만간 그의 3남 김정은이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공격적인 국가인 북한의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장성택이 배후에서 김정은을 조종한다면 북한이 좋은 쪽으로 변화하리란 기대는 접어야 할 듯하다.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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