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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명품 브랜드 ‘중국 앞으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 ‘중국 앞으로’

구미인이 과시적 소비를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명품 시장이 호황을 구가하며 중국 부자들의 안목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중국인 소비자는 이제 뉴욕이나 파리에서 판매되는 루이뷔통 가방이나 펜디 보석으로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의 취향에 맞춰 특별 제작된 명품을 요구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대형 명품업체 에르메스는 최근 상하이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중국 브랜드 샹 샤이를 판매하는 부티크를 열었다. 이곳에 진열된 제품은 그 브랜드의 상징인 화려한 실크 스카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명조시대 스타일의 의자, 얇은 도자기 그릇, 찻주전자 같은 중국의 독특한 기념품에서 영감을 얻은 주얼리 등이 판매된다.

이들 제품은 지탄 목재, 래커, 몽골산 캐시미어 등 고급스러운 현지 소재를 사용했다. 이 부티크는 개점 이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다른 서방 브랜드의 주목을 받는다.

코카콜라로부터 프록터&갬블에 이르는 구미의 여러 다국적 기업이 지난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시장을 개척하려 애써 왔다. 그러나 상당수 일류 브랜드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고전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중국의 저축률이 높으며 아직도 비교적 빈국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많은 대형 브랜드가 제품 포장 글씨를 바꾸는 것 말고는 현지 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할 생각 없이 기존 제품을 중국 시장에 쏟아붓기에만 골몰한 탓도 적지 않다. “최근까지도 ‘서방에서 개발해 중국으로 수출하자’는 태도가 일반적이었다”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선임 파트너이자 중국 내 소비자 관행 연구 책임자인 휴버트 쉬가 말했다. “그런 방법은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마침내 중국의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서방의 명품시장에 불황이 닥치자 판매업체들이 중국에 초점을 맞춘다. 컨설팅 업체 매킨지에 따르면 중국이 2025년에는 2조3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3대 소비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시장에선 이미 자동차와 TV 판매가 세계 최고이며 PC는 세계 2위다. 주얼리(1년에 25% 상승)로부터 화장품(20% 상승), 고급 자동차(50% 상승) 등에 이르는 다른 시장도 다수 호황을 누린다. “금융위기 이후 일어난 세계 경제성장의 재분배가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더 극적이었다”고 매킨지의 유발 애츠먼이 말했다. “지금은 많은 외국기업 사이에 중국을 자국 시장처럼 대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

중국시장을 개척하려고 에르메스처럼 중국인들의 미학을 모방할 필요까진 없지만 중국 소비자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 더 주도면밀하게 분석할 필요는 분명 있다. 그에 따라 최근 몇 달 새 여러 기업이 중국인의 취향에 맞춘 제품을 선보였다. BMW는 힘 좋은 M3 모델의 중국 내 한정판 타이거를 출시했다. 호랑이 해인 2010년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불타는 듯한 오렌지색과 검은색을 입혔다. 프랑스 패션하우스 클로에는 마르시 핸드백의 빨간색 중국 모델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빨간색은 중국에선 행운의 색깔이다. 그리고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내놓은 청바지 브랜드 데니즌은 더 날씬한 디자인과 현지화된 스타일로 아시아의 신흥 중산층에 어필한다.

기업들은 자신이 중국 고객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알리려 기를 쓴다. 애플의 상하이 매장에는 ‘중국 고객은 항상 옳다’는 메시지가 새로 큼지막하게 내걸렸다. 직원들이 입은 빨간 셔츠(검정 셔츠가 아니다)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설계하고 중국을 위해 만들었다’는 구호가 중국어로 적혀 있다. 아이폰 뒷면에 적힌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됐다’는 문구에 말재주를 부렸음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기업이 중국시장의 수요에 맞춰 특별제작한 제품을 생산할 뿐 아니라 그 제품들을 다른 나라에까지 수출하기 시작했다. 휼렛-패커드(HP)는 최근 충칭(重慶)에 공장을 세우고 비와 극심한 먼지에도 끄떡없게 디자인한 저가의 ‘야외용’ 노트북 같은 제품을 생산한다. 이 제품은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며 HP는 다른 신흥시장으로도 수출할 계획이다. 한편 포르셰는 신형 세단을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물론 ‘중국을 겨냥한’ 신제품이 모두 성공하기는 어렵다. 현지 시장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간과한 탓에 중국시장에서 쓴잔을 들이켠 대기업이 많다. 일례로 중국에서 가격을 앞세운 브랜드가 설 땅이 분명 없지는 않지만 신분과시 목적으로 서방 제품을 구입하는 중국인이 많기 때문에 월마트가 자신들의 표준인 ‘매일 낮은 가격’ 슬로건을 중국에 적용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매장입지도 외국기업들이 빈번히 빠지는 함정이다. 의식이 세계화된 다수의 중국인 부자는 해외여행 중 명품을 구입한다. 따라서 이들을 겨냥해 해안지역 대도시에 중국 1호 매장을 냈던 랄프 로렌이나 LVMH 같은 외국 브랜드는 충칭이나 다롄(大連) 같은 이삼류 도시가 종종 더 나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령 홍콩과는 달리 서방 문물을 그렇게 많이 접하지 못하는 도시들 말이다.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이 마침내 기대에 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듯하다. 소비지출은 지난 2년 새 연간 15%씩 증가했으며 저축보다 소비에 익숙한 새로운 ‘소황제’ 세대가 성년에 이름에 따라 성장이 계속되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예컨대 건강과 웰니스 제품시장의 잠재력은 엄청나다. 비용을 줄이려고 편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서방 브랜드 제품에는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는 중국인 중산층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취향’에 맞춘 외국의 고급 식품과 미용·건강 제품의 시장성이 크다”고 보스턴 컨설팅의 쉬가 말했다. 에스티 로더나 랑콤 등 중국시장의 특성에 맞춘 화장품 브랜드를 개발하거나 인수하려는 회사들의 움직임이 좋은 예다.

비결은 예나 다름없이 소비자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중국의 부자들은 명조 스타일의 의자와 현지 제작된 도자기를 원하지만 또한 피자헛에서 하는 외식에도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중국에선 피자헛이 고급 식기도구, 하얀 테이블보, 근사한 예술품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레스토랑이다. “우리 팀이 프로젝트를 하나 끝낼 때마다 언제나 예컨대 포시즌이나 리츠 등 일류 음식점에서 외식하는 선택권을 준다”고 CMR 컨설팅의 숀 레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피자헛을 선택한다.” 명품은 가격보다 인식이 더 중요한 모양이다.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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