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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50년 영화 인생 15년 이젠 내 속을 채워야죠

술과 50년 영화 인생 15년 이젠 내 속을 채워야죠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다음 달 7일 개막한다. 올해 부산 영화제의 빅 뉴스는 단연 김동호(73) 집행위원장의 퇴임이다. 그는 15년간 자타 공인 부산영화제의 ‘얼굴’이자 상징이었다. 문화체육부 차관, 영화진흥공사 사장, 공연윤리위원장을 지낸 그는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전양준 부위원장, 김지석 프로그래머 등 열혈 영화인들과 뜻을 함께해 ‘문화의 불모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큰일을 저질렀다.

‘아시아 신인감독을 발굴해 세계에 소개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부산영화제는 1996년 첫 회에 18만 명이 관람하는‘대박’을 터뜨렸고, 남포동 일대를 젊은 관객들이 가득 메우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15년 만에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 잡았고,경제효과는 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문화상품 중 하나로 꼽히는 부산영화제의 고속성장 뒤에 ‘김동호 파워’가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도 영화인들 술자리에서 회자되는 김 위원장과 관련된‘전설’과 같은 일화는 여럿이다. 대표적인 게 술 실력. 칸·베를린·베니스 등 세계 정상급 영화제 고위인사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킹을 빠르게 다지며 무명의 부산영화제를 홍보하는 데 어마어마한 주량이 한몫했다. 오죽하면 ‘타이거 클럽’이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로테르담 영화제의 상징인 호랑이와, 그의 이름 끝 자인 호(虎)자를 따서 지은 술 모임이다. 사이먼 필드 전 로테르담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대만감독 허우샤오셴 등이 멤버다. 모임의 별명이 ‘드렁큰(술 취한) 타이거 클럽’일 정도로 멤버들의 술 실력이 세기로 유명했다. 김위원장은 건강상 2006년 술을 끊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 그가 먼저 취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드물었다.

해운대 앞길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술을 마실 정도로 소탈하고 겸손한 성품도 그가 두루 존경 받는 이유다. 그는 영화제 사무국 막내 직원에게도 존댓말을 쓴다. 그가 언성을 높이는 광경을 본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 영화제 초창기엔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퀵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 영화제 출장이 1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항공기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탄다. 오랜 공직 경력에서 밴 엄격한 자기관리도 소문이 자자하다. 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7급 주사보로 출발, 문화체육부 차관까지 오른 그는 공무원 시절 아파트 경비원에게 “우리 집은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미리 일러놓았다고 한다. 영화인들 중에도 명절 때 그의 집에 선물을 들고 갔다가 얼굴을 붉힌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퇴임을 앞둔 그를 최근 만났다. 그는 인터뷰 전날 폭우가 내림에도 배우 안성기씨가 나오는 영화 ‘제7광구’ 촬영장을 다녀왔다

고 했다. 안씨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는 해외영화제에서 국내 배우들 사진을 찍어 사진을 선물하는 습관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그동안 촬영한 배우·감독들의 사진을 모아‘열정-김동호와 Friends’를 여는데, “평소 절친한 안성기씨 사진이 없어 서운해 할까 봐” 일부러 다녀왔다고 했다. 자상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는 사진전과 더불어 그동안 다녀왔던 해외영화제 40여 군데 탐방기를 모은 책의 출판기념회도 연다.



15년을 정리하는 소감이 어떤가.“시원함이 60%, 섭섭함이 40% 정도? 섭섭한 건 사실 별로 없다.(웃음) 그동안 져야 했던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지 시원하기만 하다. 영화제가 10년이 될 때까지는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부담이 엄청났다. 6회 때는 정부에서 아예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영화제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결국 10억원을 받아 내긴 했지만. 정부와 부산시를 설득하는 일, 기업 스폰서 받는 일, 그러면서 영화제가 내실을 기하고 큰 사고 없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하는 일 등 신경 쓰이는 일이 정말 많았다.”



15년 전 부산에서 영화제 한다고 했을 때 반응이 차가웠겠다.“다들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도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안 한다. 부산영화제가 시민들에게 엄청난 긍지를 심어줬다. 대외적으로 부산의 브랜드 이미지도 높였고. 경제효과가 500억원을 훨씬 넘는다고 본다. 처음부터 서울보다 부산이 국제영화제 하기에 더 적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입지조건, 서울보다 영화인들의 의견을 단일화하기 쉬운 환경, 부산 시민 특유의 화끈한 기질 때문이었다. 사실 90년대 초반에 서울에서 국제영화제 하자는 움직임이 몇 차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부산영화제가 고속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목표와 전략이 좋았다. 물론 시민 참여도도 높았고 전국 영화팬들과 영화인들의 성원도 뜨거웠다. 아시아 신인감독의 신작을 발굴해서 발견의 기쁨을 준다는 전략을 양질의 프로그래밍이 뒷받침했다. 3회부터 시작한 부산프로모션플랜(PPP)으로 재능은 있지만 돈 없는 감독을 제작자와 만나게 해준 것도 주효했다. 2005년 시작한 아시아필름아카데미로 영화인력을 길렀다.”



부산영화제는 ‘관(官)은 지원하되 민(民)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관·민 공존의 성공사례로 꼽힌다.“공무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전문가들이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들한테 맡겼더니 잘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줘야 공무원들도 알아서 하게 맡겨줄 것 아닌가.”



김 위원장 하면 ‘예산 따기의 달인’으로 통한다. 비법이 있는가.“사실대로, 진솔하게 필요성을 얘기하면 된다. 무조건 높은 사람을 통하면 잘 될 거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실무 책임자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야 된다.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을 8년 할 때(그는 역대 최장수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이다) 주 업무가 기획예산처에서 예산 따는 일이었다. 그때도 과장부터 시작해 국장, 실장, 차관 이렇게 만났다. 예산이 결정될 땐 실무자 의견이 80% 이상 반영된다. 가령 10억원이 필요하면 실무자 선에서 5억원 정도 양해를 얻어놓은 뒤 고위급에 다시 얘기해 5억원을 얹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처음부터 위에 얘기했는데 실무자들이 반대하면 10억원은커녕 5억원도 어렵다. 아무래도 예산 따는 일을 해봤으니 언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맥을 아는 장점은 있다.”



영화계 주름잡는 ‘김동호 패밀리’

부산영화제는 개·폐막식 때 부산시장이나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가 축사를 하지 않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제는 순수 문화행사여야지 외부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김 위원장의 소신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서운해했지만 결국은 다들 이해해 줬다”고 말했다.

“1회 땐 김영삼 대통령 영상메시지를 받았다. 문화부 장관에겐 ‘행정부 수반이 한 말씀 하셨는데 어떻게 장관이 이중으로 축사를 하겠느냐’고 설득했다. 부산시장에겐 개막선언만 부탁했다. ‘올림픽 개막식도 대통령이 개막선언만 하지 않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3회부턴 청와대 영상 메시지도 없앴다. 참여정부 때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개막파티 때 한 말씀 하겠다는 것도 막았다. 이 감독은 영화인 출신인데도 못하게 했다.”




해외 네트워킹을 열심히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영화인은?“지금은 물러난 베를린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모리츠 데 하델른과 포룸 부문 책임자 울리히 그레고르다. 둘은 앙숙이었는데 그레고르와 내가 먼저 친하게 됐다. 1회 부산영화제 한국영화공로상도 주고 유명 평론가인 부인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했다. 하델른이 그걸 알고 화가 많이 나서 한동안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가 한 편도 못 갔다.(웃음)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하델른에게도 한국영화공로상을 주는 등 친해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엔 그레고르가 토라져서 그거 푸는 데 3년 걸렸다. 밥 먹고 술 마시고. 그런 식으로 하나둘씩 친구를 만들어갔다.”



‘타이거 클럽’은 술로 맺어진 우정으로 유명하다.“타이거클럽 멤버인 사이먼 필드는 93년 처음 만났다. 영국 현대예술원 소속이었는데 한국영화주간 행사를 기획하면서 서울에 왔다. 그때 술자리에서 위스키를 각자 한 병씩 마시고 절친한 사이가 됐다.(웃음) 부산영화제가 96년 생겼는데 나를 바로 다음해 로테르담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초청했다. 심사위원도 아니고 심사위원장으로. 국내영화제 심사도 한 번 안 해봤던 터라 너무 걱정이 돼서 교보문고에 가서 ‘회의진행법’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회의 용어도 영어로 다 메모해갔다. 결국은 별로 쓸모가 없었지만.(웃음)”

그는 2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인생 1기, 부산영화제와의 15년을 인생 2기라고 말했다. 이제 인생 3기의 막이 오른다. “내실을 기하고 싶다. 50년 넘게 술과 함께 살았으니 이제 내 속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붓글씨를 중심으로 문인화와 한학으

로 영역을 넓히고 싶다. 영화 한두 편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사진 찍는 걸 워낙 좋아해 많이 찍었는데 이제 동영상 쪽으로도 시도해 보고 싶다.”

사진기자가 촬영하는 동안 사무실 한쪽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보게 됐다. 그의 한 달 일정이 기록돼 있었다. 점심, 저녁이 비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인맥 두텁기로 이름난 그답게 모임도 많았다. 그의 ‘사조직’ 중 가장 잘 알려진 건 연극배우 박정자·윤석화, 가수 노영심, 임권택 감독, 배우 안성기·강수연 등 이른바 ‘김동호 패밀리’로 불리는 문화인들과의 모임이다. 무용가 최현의 ‘허행초’ 공연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이 만나는 ‘허행초 모임’도 있다. 한용외 전 삼성문화재단 사장, 김수용 영화감독, 최만린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만익 화백, 박인자 발레협회장 등이 멤버다.

그는 사단법인 최승희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런가 하면 ‘86회’ 같은 재미난 모임도 있다. 58년 논산훈련소 8중대 6소대 내무반 동기들과 52년째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사서삼경 공부와 영화 만들기 외에도 이런저런 만남이 끊이지 않을 그의 인생 3기는 1기, 2기 못지않게 분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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